리아호나 >> 2006년 >> 11월

우리의 신권 의무에 충실함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
제일회장단 제 1보좌

 

삶에 축복을 가져다주고,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단지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몇 주 전 저희 와드의 금식 간증 모임에서 저는 뒷줄에 앉아 있던 한 어린 소년이 간증을 전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서너 번 정도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습니다. 그는 어깨를 펴고 회중석 통로를 용감히 지나 단상으로 나아갔고, 두 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 연단에 올라 두 손을 연단 위에 올리고 회중을 바라보며 미소지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돌아서서 두 개의 계단을 다시 내려가 어머니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오늘밤 이 커다란 컨퍼런스 센터에서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며 그 어린 소년의 행동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 저녁 여러분에게 말씀할 특권을 갖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도서에 나와 있는, 제가 좋아하는 한 구절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저는 의무(본분)라는 고상한 말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로버트 이 리 장군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의무는 우리 언어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단어입니다. … 여러분은 그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 이하를 행하기를 원해서는 안 됩니다.” (in John Bartlett, Familiar Quotations [1968년], 620쪽)

우리 각 사람은 우리가 지닌 신성한 신권과 관련된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아론 신권을 지니고 있든, 멜기세덱 신권을 지니고 있든, 많은 것이 우리 각 사람에게 기대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신권에 관한 계시에서 “그런즉 이제 모든 사람은 자기 의무를 배우고 자신이 임명된 그 직분을 부지런히 행하기를 배울지어다.”(교리와 성약 107:99)라고 권고하시면서 우리의 책임을 친히 요약해 주셨습니다.

저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신권을 받는 모든 청남이 그 신권을 존중하고 또 신권이 부여될 때 전해지는 의무에 충실할 것을 소망하는 바입니다.

51년 전에 당시 옥든 남 스테이크 회장이셨고 나중에 십이사도 정원회 보조가 되셨던 윌리엄 제이 크리칠로우 이세 형제님이 연차 대회의 신권 모임에 참석했던 형제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신임과 명예, 그리고 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단순한 교훈은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루퍼트라는 소년이 길가에 서서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이 급히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그는 그들 중에서 친구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이렇게 급히 어디로 가는 거야?”

그 친구가 멈추어 말했습니다. “아직 못 들었니?”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는데.”라고 루퍼트가 대답했습니다.

친구가 이어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임금님께서 왕실의 에메랄드를 잃어버리셨어. 어제 한 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실 때 그 에메랄드를 가느다란 금줄에 달아 목에 걸고 오셨대. 그런데 어쩌다가 그 에메랄드가 금줄에서 풀려 없어진 거야. 임금님께서 그걸 찾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찾고 있는 중이야. 우리도 빨리 가자.”

루퍼트가 우물쭈물하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려면 할머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난 먼저 가야겠다. 가서 그 에메랄드를 찾고 싶어.”

루퍼트는 할머니의 허락을 받기 위해 숲 가장자리에 있는 오두막으로 급히 돌아갔습니다. “제가 그 에메랄드를 찾기만 하면, 이 습기 찬 오두막 집을 떠나 언덕 위에 있는 땅을 살 수가 있어요”라고 말하며 그는 할머니께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양은 어떻게 하고?”라고 반문하며 말했습니다. “양들이 오랫동안 그 좁은 우리에 갇혀 있어서 답답해 하니 풀밭으로 데리고 나가고, 해가 중천에 뜨면 물가에 가서 양에게 물 먹이는 것을 잊지 마렴.”

“루퍼트는 슬픔에 잠긴 채 양을 데리고 풀밭에 갔고, 점심 때는 양을 몰고 숲속의 시냇가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냇가의 커다란 돌 위에 앉았습니다. ‘임금님의 에메랄드를 한번 구경이라도 해 봤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돌려서 냇물의 모래 바닥을 내려다보던 루퍼트는 갑자기 물 속을 응시했습니다. 저게 뭐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라고 생각하며 그는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집게 손가락으로 [끊어진] 눈부신 금줄이 조금 달린 녹색 물체를 집어 들었습니다. ‘임금님의 에메랄드다!’하고 그가 외쳤습니다. ‘임금님이 말을 타고 냇물 위 다리를 급하게 건너던 중에 이 에메랄드가 금줄에서 빠져, 냇물에 실려 여기까지 온 게 틀림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루퍼트는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의 오두막으로 달려와 자신의 엄청난 발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니가 말씀했습니다. “잘했구나, 얘야. 하지만 네가 양을 치는 네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걸 찾지 못했을 거야.” 루퍼트는 이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네] 의무를 다하라. 그것이 최선의 길이니라. [그] 나머지는 주님께 맡길지어다.”라는 격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Henry Wadsworth Longfellow, “The Legend Beautiful,” in The Complete Poetical Works of Longfellow [1893년], 258쪽)

정원회 회장이거나 회장이었던 여러분께, 저는 여러분의 의무가 직분의 기간이 끝난다 해서 종료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정원회 회원과의 관계와 그들에 대한 의무는 여러분의 생애 내내 계속됩니다.

아론 신권의 교사 직분에 있던 기간 동안, 저는 정원회 회장에 부름 받았습니다. 헌신적이고 영감에 찬 정원회 고문의 재촉과 도움으로, 저는 각 청남이 정기적으로 우리 모임에 참석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들 중 두 명이 특별히 어려웠는데, 인내와 사랑으로 인해 그들은 모임에 참석하고 정원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은 학업과 직장을 위해 와드를 떠나게 되었고, 각각 다시 비활동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많은 결혼식과 장례식을 포함하여 여러 행사에서 이 두 명의 사랑하는 친구들을 각각 보아 왔습니다. 제가 볼 때마다,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상기시켜 줍니다. “나는 아직도 너의 정원회 회장이니, 내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지. 넌 나에게 아주 중요하니까. 네가 교회 활동을 통해 오는 축복을 누리게 하고 싶어.” 내가 그들을 좋아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멜기세덱 신권을 지닌 우리에게는 우리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특권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굶주린 양들이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은 생명의 떡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할로윈 축제일 밤에, 잠시 길을 잃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던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저에게 특권이었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제가 솔트레이크시티의 세인트 마크 병원을 지나칠 때, 사업 관계로 알게 된 좋은 친구인 맥스가 바로 그 병원에 입원해 있음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제가 오래 전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을 때, 비록 시기는 달랐지만, 우리가 같은 와드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맥스와 그의 부모님은 그 와드에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할로윈 축제일 밤, 저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안내 창구에 들러 맥스의 병실을 물어보면서 그가 병원에 접수할 때 자신의 종교를 후기 성도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로 적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맥스의 방으로 들어가 그에게 인사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가 그의 친구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제가 그를 얼마나 염려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가 은행에서 일하면서 한편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것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한두 마디의 말로 마음이 상했고 그래서 다른 교회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맥스, 자네는 대제사야. 나는 오늘밤 자네에게 축복을 주고 싶네.” 그는 동의했고,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저에게 그의 아내 버니스도 아파서, 옆 방에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의 권유로, 맥스는 그의 아내에게 축복을 주는 데 함께 했습니다. 주위에 눈물과 포옹이 있었으며, 그 할로윈 축제일 저녁을 결코 잊지 못할 저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 병원을 떠나면서, 저는 안내 창구에 들러 맥스와 그의 아내의 허락으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임을 반영하도록 기록이 변경되어야 한다고 직원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친구인 맥스와 버니스는 지금 모두 장막 저편에 있지만, 생애의 마지막 몇 년을 활동적이고 행복하며, 복음에 대한 간증과 교회 참석에서 오는 축복을 받으면서 보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의 의무는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 영화 쉐난도에는 다음과 같은 영감적인 대사가 나옵니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하지 않는 거야. 우리가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뭐지?”

신권 축복을 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요청이 올 때, 우리가 그렇게 하기에 합당한 삶을 살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영향력의 결과에서 우리가 참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우리는 듣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영향은 긍정적이고 고양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손은 깨끗합니까? 우리의 마음은 순수합니까? 역사의 페이지를 통해 시간을 돌이켜보면, 죽어가는 다리오 왕의 말에서 합당성에 관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적법한 의식을 통해 다리오는 이집트의 합법적인 왕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의 맞수였던 알렉산더 대왕은 암몬의 적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그 또한 파라오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패배한 다리오를 발견하고는 그를 치유하기 위해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일어나 왕의 권위를 되찾으라고 명한 후, 다음과 같이 말을 마쳤습니다. “나는 모든 신들의 이름으로 다리오, 그대에게 맹세하노니 나는 이 모든 것을 참되게 위선 없이 행하노라.”

다리오는 조용히 꾸짖으며 대답했습니다. “젊은 알렉산더여, … 그대는 그대의 그 손으로 하늘을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Hugh Nibley, Abraham in Egypt [1981년]에서 각색, 192쪽.)

의무라는 부름은 신권을 지닌 우리가 받은 임무지명에 응할 때 조용히 올 수 있습니다. 겸손하면서도 유능한 지도자이며 제8대 교회 회장이었던 조지 앨버트 스미스 회장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배우는 것이 모든 것 중에서 여러분의 첫 번째 의무이고, 여러분의 거룩한 신권의 권능과 힘으로써 사람들이 여러분을 기쁘게 따르도록 이웃 앞에서 여러분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 다음 의무입니다.” (Conference Report, 1942년 4월, 14쪽)

어떻게 하면 부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단순히 그와 관련된 봉사를 행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삶에 축복을 가져다주고,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단지 만 꾸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선언했습니다.(야고보서 1:22)

오늘 밤 이 신권 모임에 모인 우리 모두가 우리 생활에서 주의 인도를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밖에는 도움을 호소하고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망한 사람들도 있으며, 돌아가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가장 달콤한 축복은 항상 여기 아래에서 그분께 봉사하는 손을 통하여 온다.”라는 말씀의 참됨을 항상 믿어 왔습니다. (Whitney Montgomery, “Revelation,” in Best-Loved Poems of the LDS People, ed. Jack M. Lyon and others [1996년], 283쪽) 우리의 손을 깨끗하고 기꺼이 행하는 손으로 준비시켜 놓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들이 그분에게서 받기를 바라시는 것들을 베푸는 일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저는 제 인생의 예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저에게는 소중한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심한 인생의 환난과 좌절을 경험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는 결국에는 병들어 입원을 했습니다. 저는 그가 어느 병원에 입원한지 몰랐습니다.

몬슨 자매와 제가 중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을 방문하기 위해 한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병원에서 나와 차를 주차시켜 놓은 곳으로 가고 있을 때, 돌아가서 제 친구 하이럼이 그곳에 입원해 있는지 물어 보라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내 직원에게 확인해 본 결과 몇 주 전부터 하이럼이 실제로 그곳에 입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병실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열었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병실은 풍선으로 가득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쓰여진 포스터가 병실 벽에 돋보이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하이럼은 병실 침대에 앉아 있었으며 가족들이 그 옆에 있었습니다. 우리를 본 하이럼이 “몬슨 형제님, 도대체 어떻게 오늘이 제 생일인 줄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지었습니다.

병실에 있던 멜기세덱 신권 소유자들이 그들에게는 아버지요 제게는 친구인 하이럼을 둘러싸고는 신권 축복을 주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미소를 교환하고 다정한 포옹을 주고 받은 후에 저는 하이럼에게 기대어서 다정하게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이럼, 주의 말씀을 기억하세요. 그 말씀이 형제님에게 힘을 줄 겁니다. 주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형제님께 약속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18)

세월은 흘러갑니다. 그 흐름에 따라 의무도 커집니다. 의무는 희미해지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파멸적인 다툼이 오고 가지만, 인간의 영혼을 위한 전쟁은 완화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팔 소리처럼 주의 말씀이 여러분과 저와 곳곳에 계신 신권 소유자들에게 들려 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반복합니다. “그런즉 이제 모든 사람은 자기 의무를 배우고 자신이 임명된 그 직분을 부지런히 행하기를 배울지어다.”(교리와 성약 107:99)

형제 여러분, 우리의 의무를 배웁시다.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의 발자취를 따릅시다. 의무의 부름이 왔을 때, 그분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영광이 영원토록 당신의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모세서 4:2) 우리도 이와 같이 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