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도를 향상시킴", 조셉 비 워스린, CES모임, BYU, 2003년 1월 21일★]

우리의 기도를 향상시킴
Improving Our Prayers

  여러분이 기도하는 데 쓰는 시간이 여러분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고양시켜 준다고 느끼십니까? 향상의 여지는 없습니까?

   조셉 비 워스린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조셉 비 워스린, 우리의 기도를 향상시킴, 리아호나 2004 8월호, 16)

 현재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때는 하늘의 처소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필멸의 세계로 와 계속해서 진보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겪게 될 헤어짐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장막이 우리 눈을 뒤덮고 우리 삶에 대한 찬란한 기억이 필멸의 세계의 망각 속에 덮이게 된다는 점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가까이 머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분을 찾아서 이야기만이라도 나누겠다는 서약이라도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찾을 때 우리를 향해 오시겠다고 그분이 약속하셨을 때, 그분과 우리의 헤어짐에 따른 슬픔은 의심의 여지없이 누그러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곳에 있습니다. 전세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희미하고 애매합니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우리는 잊어버렸습니다. 불행하고 또 슬프게도 우리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하나님 아버지조차 때때로 잊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그리고 이 필멸의 삶에서 그분께 닿으려는 여러분의 노력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얼마나 가까이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된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이 기도하는 데 쓰는 시간이 여러분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고 고양시켜 준다고 느끼십니까?

 

의미있는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기도에 힘이 부족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는 타성적입니다. 기도의 말이 의사소통이 아니라 단지 열거가 될 정도로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자주 사용했을 때 우리의 기도는 공허해집니다. 이것이 구세주께서 “중언부언”(마태복음 6:7 참조)이라고 묘사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런 기도는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선지자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기도에 따르는 어려움은 마치 우리가 전화기를 들고서 식품을 주문하듯이 기도를 한다는 점입니다. 받아야 할 축복을 쭉 주문하고는 전화를 뚝 끊듯이 기도를 끝냅니다. 우리가 기원하고 또 요청하는 것에 관해 명상하고, 심사숙고한 다음에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처럼 주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1

때때로 우리의 기도가 똑같이 들린다고 느껴집니까? 기도를 기계적으로, 즉 기계에서 잘려져 쏟아져 나오듯이 말을 내뱉으며 기도를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를 하면서 때때로 싫증을 느낍니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주의를 끌 가치가 있을까요? 자신이 상투적인 기도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는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정말로 감사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잠시 동안 명상해 보십시오. 그것들을 찾아 보십시오. 대단하거나 눈부신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비가 올 것 같은 징후, 좋아하는 음식 냄새,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과 같은 작고 간단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치유하는 향유와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시련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의 풍성함으로 우리의 초점을 옮겨줍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에 관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목표와 소망과 꿈을 주님께 가져가 그분 앞에서 그것들을 결정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분에게 다가와 그분의 신성한 도움을 간구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시련을 그분께 설명하십시오. 여러분의 의로운 소망을 그분 앞에서 정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생활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노력에 그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작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면(앨마서 34:24 참조), 우리가 직면하는 다른 중요한 어려움들에 관해서도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기도가 유창할수록 더욱 효과적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기도는 듣는 사람들의 귀에는 그럴지 몰라도 전능하신 분의 귀에는 대부분의 경우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경건하고 겸손하게 그분께 다가가십시오. 여러분의 말이 세련된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그리 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에 관해 신경을 쓰십시오.

 

신앙으로 하는 기도

많은 기도에 그다지 힘이 없는 또다른 이유는 우리에게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부모에게 어떤 것을 요청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 다가섭니다. 신앙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그저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하는 기도는 하늘의 힘과 연결되어 증대된 이해력과 소망과 권세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세상이 신앙으로 창조되었다면, 우리도 우리 마음속의 의로운 소망을 신앙으로 창조하고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은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따르는 것입니다. 그 확신과 철저한 행함이 합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신앙을 갖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하늘에서 축복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문이 결코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의 권세는 행동으로 활성화 됩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노력에 대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사적인 일입니다. 그분과 여러분 모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언제 했는지 압니다. 여러분의 최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의 눈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번영에 따른 어려움

우리 시대에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번영에 따르는 어려움일 것입니다. 브리감 영 회장(1801~1877)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제가 이 백성들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이들이 이 나라에서 부유하게 되어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 이 백성들은 조롱과 약탈, 가난 및 온갖 박해는 이겨 내고 참된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보다 큰 두려움은 그들이 부유함을 이겨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2

번영은 영적인 것에 대해 우리를 무디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힘에 대한 환상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아플 때 우리는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배고플 때 우리는 먹을 수 있습니다. 추울 때는 우리 자신을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도 가운데 많은 것들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습니다.

매일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을 얻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듭니다. 자신들의 교만과 어리석음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우주를 창조하신 권세에 관해 또는 그들이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그분에 관해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리와 성약은 이러한 현대의 우상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들은 주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주를 구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길로, 또 자기 자신의 신의 형상을 따라 걷나니,”(교리와 성약 1:16)

이 세상에 속한 것을 경배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그들의 부에게 소리치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애원할 것입니다. 그날에 그들은 그들 금붙이의 차가움을 배우고 또 그들이 걸었던 길이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필요성

우리의 기도에 힘이 없는 또다른 이유는 도움이 필요한 우리 주변 사람들을 돕지 않기 때문입니다. 몰몬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궁핍한 자와, 헐벗은 자를 물리치며, 병들어 고난당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너희가 가진 것이 있을 때, 곤궁에 처한 자들에게 너희의 재물을 나누어 주지 아니하면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이러한 일 중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면, 보라 너희의 기도는 헛되 ... 니라.”(앨마서 34:28)

우리 주위에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도우려는 우리의 자발적인 노력은 이제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참으로 구세주께서는 우리의 구원이 타인에 대한 우리의 동정심의 수준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복음 25:31~46 참조) 우리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고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보이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궁핍한 사람을 대하는 그대로, 우리가 궁핍할 때에 우리를 대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유형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적극적인 기도와 행동에 대해 영감에 찬 과정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앙을 키우고 기도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따라야 할 유형이 되는 단계별 과정입니다.

“불평(초조해)하지 말며”가 첫번째 단계입니다.(시편37:1 참조;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초조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관해 걱정하면서 골똘히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첫번째 것은 걱정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관해 걱정할 때, 현시점에서 불행을 만듭니다. 의로운 근심은 우리가 적절한 행동을 취하도록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에 관해 걱정하는 것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의기 소침하게 만듭니다.

걱정하는 대신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런 다음 그 걱정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여러분의 마음이 옳다면, 그분께서 걱정과 두려움을 맡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불평(초조해)하지”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입니다.(시편37:3 참조: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왜 우리는 그분을 의뢰해야 합니까? 그분은 우리가 사랑하는 분이고 또 모든 지혜를 지니신 하나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아시고 또 우리가행복하고 성공하고 그분께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하늘에 계십니다. 그분은 완전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제 안전을 위해 여러 차례 하나님 아버지께 의지하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저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이스트 고등학교에서는 쿼터백으로 그리고 유타 대학교에서는 러닝백 선수로 뛰었습니다. 선수로 있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제 안전을 위해 기도를 멈추신 적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분은 시합을 하는 동안 큰 부상으로부터 저를 보호하기 위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의지했습니다. 타박상과 멍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큰 부상을 당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제가 한 시즌 동안 축구장(역주: 미식 축구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고 싶다고 말하기 위해 저의 사랑하는 매리온 지 롬니 감독님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걱정 없던 짧은 시즌이 끝나자 저는 독일-오스트리아 선교부에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지 석 달 후에 선교부 명칭이 스위스-오스트리아 선교부로 바뀌었습니다.

1937년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안슐루스(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합)를 빌미로 오스트리아 침공을 위해 300,000명의 병력을 국경에 집결시키고 있을 때 저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가족을 모아놓고 아침 저녁으로 무릎 꿇고 기도드리며 저의 안전을 기원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영향력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족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저는 믿었습니다. 그분께서 제 생명을 지켜 주실 것임을 제 기도를 통해 믿었습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하기 한 달 전에 저는 스위스로 이동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것이 저의 간증입니다.

경전에서 우리는 이런 성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세 번째 단계는“선을 행하라”(시편37:3 참조: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을 행합니다. 우리는 그분 교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선을 행합니다. 세상에 대해 빛의 역할을 하겠다고 거룩한 성약을 맺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행동이 우리 말에 대해 살아있는 간증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로마서 3:23)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고, 우리 죄를 회개하며,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실수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반복해서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욱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더욱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행동이 우리 신앙의 고백과 모순되면 모순될수록, 그만큼 우리의 기도는 약해집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의 노력을 몇 배로 크게 하십니다.

 

네 번째 단계는“또 여호와를 기뻐”(시편 37:4 참조: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교리입니까! 우리 기도가 응답 받지 못했다고 걱정하거나 투덜거리는 대신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감사합시다. 행복합시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때에, 때로는 우리가 예상한 방법으로, 때로는 도저히 미리 짐작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여러분의 의로운 소망 모두를 성취하실 것입니다. 행복과 평화를 위한 얼마나 멋진 방법입니까!

 

다섯 번째 단계는“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시편 37:5 참조: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걱정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신권을 존중하십시오. 자매 여러분, 빛과 진리의 원리에 충실하십시오.

 

여섯 번째 단계는“여호와앞에 잠잠”(시편 37:7 참조: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기다리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 나름대로의 시간표를 갖고 계시며, 비록 그것이 우리를 실망시키더라도 그분의 타이밍은 항상 완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 때, 우리를 위한 그분의 뜻이 그분의 시간에 그리고 그분의 방법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빛을 가져다주는 기도

겸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평온하게 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빛이니, 빛을 받아들이고 계속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빛을 더욱 받아들이나니,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져 마침내는 대낮이 되리라.”(교리와 성약 50:24)

이런 빛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불신앙으로 버둥거립니다. 그들은 마음에 빛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빛으로 가득 차게 될 때 한때는 어두웠던 것들이 분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거룩한 숲에서 어둠과 빛을 경험했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로렌조 스노우 회장(1814~1901)께서는 자신의 한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침례를 받고 약 2~3주쯤 되었을 때 … 내가 아직 이 사업의 참됨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는 … 매우 불편한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책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집을 나와서 우울하고 절망적인 마음으로 밭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그러는 동안 형용할 수 없는 어둠의 구름이 나를 뒤덮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나는 보통 하루가 끝날 즈음 은밀한 기도를 하기 위해 숙소에서 약간 떨어진 숲 속으로 가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 때는 그렇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기도의 영은 진작 떠났으며 하늘은 머리 위에 덮여진 놋쇠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평소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항상 하던 기도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굳히고는 의례적인 행위로서 하던 습관대로 무릎을 꿇고 평소의 장소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기도를 하려고 막 입을 여는 순간에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명주옷 스치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더니, 곧 이어 하나님의 영이 내게 내려와 완전히 나의 전신을 뒤덮고 내 머리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내가 느낀 기쁨과 행복은 대단했습니다. 정신적 그리고 영적 암흑의 짙은 구름에서 빛과 지식의 광채로 즉시 변하는 것을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거룩한 신권의 회복 그리고 충만한 복음을 완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

“… 그날 밤 내가 쉬기 위해 잠자리에 누웠을 때, 똑같은 기이한 나타나심이 반복되었고 연이어 며칠 밤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광스러운 그런 경험들에 대한 감미로운 기억은 온몸에 퍼지는 영감에 찬 영향력을 내게 전해 주며 그에 관한 지식들을 내 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게 합니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것을 확신할 것입니다.”3

형제 자매 여러분,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 오는 사람은 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필멸의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는 어둠을 멀리 쫓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빛으로 우리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축복

모든 사람은 기도를 통해 우리 생활에 찾아오는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와 마찬가지로 많은 축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영화 배우라고 해서 근로자보다 유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의 왕이 앉는 보좌에 다가서는 능력에 있어서 평등합니다.

구세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다가설 때 우리는 하늘의 문을 열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진리, 빛, 그리고 지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것에 대해 우리의 제자됨을 시작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한,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회원들이 기도라는 면에서 자신들의 생활을 다시 점검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음성을 높이고 우리의 영혼을 찬란한 빛으로 채울 수 있기를 간구드립니다.

(조셉 비 워스린, 우리의 기도를 향상시킴, 리아호나 2004년 8월호, 16)

2003년 1월 21일 프로보의 브리감 영 대학교에서 있었던 영적 모임에서 행한 말씀

1. 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1997), 469쪽.
2. James S. Brown, Life of a Pioneer(1971), 122~123쪽에서 인용.
3. Eliza R. Snow Smith, Biography and Family Record of Lorenzo Snow(1884), 7~9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