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어 놓은 가족 역사", 카를로스 에이 페레스, 리아호나 2005년 8월호★]

내 삶을 바꾸어 놓은 가족 역사
Family History Changed My Life

   카를로스 에이 페레스 장로
   칠십인 지역 관리 역원
   남미 남부 지역

   (내 삶을 바꾸어 놓은 가족 역사, 카를로스 에이 페레스, 리아호나 2005 8월호, 10)

오래 전, 제가 침례 받은 직후에 한 자매가 가족 역사 사업을 행하면서 가졌던 느낌에 대해 성찬식에서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그 자매가 말한 것이 참되고, 또한 제가 가족 역사를 작성하여 저의 조상들을 위해 성전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영을 통해 증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저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기록한 영감에 찬 말씀들이 참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단언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구원에 관련된 것으로서 결코 가벼이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죽은 자와 산 자에 관한 원리들이니라. 이는 그들의 구원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고도 불가결한 것임이니”(교리와 성약 128:15). 우리 조상들이 없이는 우리가 승영에 이를 수도 없거니와 그분들도 우리 없이는 승영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영은 제가 에스터 이모를 방문해야 한다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오랫동안 뵙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유도 모른 채 그분을 찾아갔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교회 회원들이 행하는 가족 역사 사업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일어서서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이모는 모아놓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서류가 담긴 상자를 갖고 오셨습니다. 이모는 상자를 열어 그 곳에 담겨 있는 것들을 제게 보여 주기 시작했는데, 외조부모님, 이모, 외삼촌,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가족들의 이름, 출생 일자, 사망 일자가 적힌 문서들을 보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가족 역사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찾을 수 있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침례를 받고 일 년 후에 아내와 저는 브라질 상파울루 성전에서 인봉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외조부모님을 위해 대리 침례 의식을 집행했고, 성전에서 그분들이 의식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전에서 집행되는 놀라운 사업에 대해 저는 매우 강한 간증을 갖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가족들은 영원히 하나가 되고, 영원한 유대가 강화되고, 가족간의 결합은 더욱더 단단해집니다.

이제는 우루과이에 성전이 있어 우리는 정규적으로 성전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27년 전에 제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던 것과 똑같은 느낌을 다시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바꾸도록 속삭여 주고, 그 다음에는 커다란 행복을 만들어 주는 영적인 경험을 한결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이런 경험들은 우리 앞에 살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권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항상 사용해야 합니다. 오래 전 14세 된 어린 소년에 의해 시작된 이 사업은 지상에서 행해지는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우리의 성전에서 집행되는 사업은 신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우리가 받는 영적인 속삭임에 따라 행할 때 이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내 삶을 바꾸어 놓은 가족 역사, 카를로스 에이 페레스, 리아호나 2005 8월호, 10)

 

이렇게 기록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가족에 관한 정보를 묘지에서 찾든,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든, 또는 색 바랜 오랜 서류에서 찾든, 주님은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1984년에 그레이스 디윌리 모디바와 그녀의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침례를 받은 이후로 그레이스는 가족 역사 사업에 마음이 이끌렸다.

“숙모, 삼촌, 다른 친척들에게서 모을 수 있는 것들을 다 모았다”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 스테이크 애터리지빌 와드 회원인 그레이스는 말한다. “하지만 고조부모님에 관한 정보를 찾을 때는 너무 자주 좌절했습니다. 2001년의 어느 월요일 아침에 어머니께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제 사촌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을 때 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장례식에 참석할 준비를 했고, 장례식은 부모님께서 태어나신 지역에서 있었습니다. 애터리지빌에서 북쪽으로 약 20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보츠와나의 국경 근처였는데, 우리는 그 지역을 방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장례식 전날인 금요일에 어머니, 두 여동생과 함께 떠났습니다. 밤늦게 숙모님 댁에 도착하니 그 집에 식구들과 친구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장례식 준비를 마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지만 잠잘 곳이 없었습니다. 사촌 중의 하나가 오래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면 자기 집에 가서 머물러도 좋다며 우리들을 친절하게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정말 깜깜한 밤이었지만, 길은 조용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드디어 도착하자, 모두가 금세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손님 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는데, 사촌은 이미 일어나 분주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게 씻을 물을 주었으며, 다 씻고 났을 때 저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속삭임을 느꼈습니다.

“집에서 몇 미터를 걸어가자 마당에 두 개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천천히 그 무덤으로 다가갔고, 그 무덤들이 저의 고조부모님들의 것임을 알고는 더욱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그 동안 제가 그토록 절실히 찾았던 이름들과 날짜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흥분한 채로 사촌에게 제가 발견한 것과 이 조상들을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찾아왔는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 사건들을 돌이켜볼 때 모든 것이 어떤 목적을 갖고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가 저의 구세주임을 알고 있으며, 이런 정보를 찾도록 저를 인도해 주신 그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자신들의 가족을 부지런히 찾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멜빈 제이 밸라드 장로(1873~1939)는 이렇게 간증했다. “여러분이 아는 죽은 사람들의 영과 영향력은 그들의 기록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들과 관계된 것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 있든지, 여러분은 그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 … 그러나 여러분은 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1

다음은 필요한 이름, 날짜, 또는 장소가 적힌 기록들을 찾도록 주님께서 사람들을 인도해 주셨던 사례들이다.

 

인터넷에 올라탄 카우보이

캘리포니아 샌터매리아 가족 역사 센터의 책임자인 리앤 코쉬맨은 이렇게 적었다. “대부분의 가족 역사가들처럼 저도 극적인 경험에 관한 이야기와 잃었던 가족을 찾았던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몇 개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가 특별히 생각납니다.

“마을 전시회에서 전시 공간을 마련했었는데, 커다란 현수막에 ‘가족 역사 센터, 가족은 영원합니다’라는 우리의 목적을 적었습니다. 옷차림이 말끔하지 않은 한 카우보이가 전시 탁자에 있는 전시물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조상을 찾는 일을 도와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수줍음과 언어 장애로 대화를 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상들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면서 ‘부모님이 살아 계신지조차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저의 온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십대 때 환경이 좋지 않았던 집을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로데오 경기에 참가해 왔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결혼을 하여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컴퓨터 앞에 앉으라고 권유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찾지는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저는 그의 부친의 사망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그가 미국 사회 보장 사망자 색인부를 찾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의 부친의 이름이 정말로 특이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찾기가 쉬울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그의 부친의 이름을 찾지 못했을 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부친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간 인터넷을 검색한 후에 저는 그 카우보이의 부친의 현주소와 전화 번호를 포함하여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면서 ‘믿을 수가 없어. 우리 아버지야’라는 말을 일곱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저는 부친께 전화를 해보라고 열심히 권유했지만, 그는 ‘할 수 없어요. 아버지는 나와는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는 몰라도 아버지는 안 하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부친에 관한 정보를 인쇄해서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전화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편지를 쓸 수 있다고 그에게 권고했습니다. 그가 집을 떠날 당시의 여건에 관계없이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부모님을 보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의 부모님도 손자녀들에 관해 알고 싶어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는 열심히 그에게 권고했습니다.

“그가 떠나갈 때 저는 그를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드렸습니다.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뒤에 그 카우보이가 같은 장소에 다시 서 있었습니다. 저는 급히 그에게 가서 손을 내밀며 ‘전화드렸지요!’라고 단정을 내리며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두 분이 오늘 새벽 6시에 제 집 문 앞에 오셨어요!

“그는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려 노력했지만 말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손을 내밀며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 손을 잡더니 한사코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껴안고 싶어하는 것 같아 나는 앞으로 몸을 움직여 그를 껴안았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부모를 찾는 데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라기 4:6)라는 친숙한 성구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먼지가 쌓인 서류를 찾음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빌라엘비라 스테이크 빌라엘비라 와드의 안헬 다니엘 가티카는 영의 인도를 받아 필요한 기록을 찾았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 중부 지방에 사는 우리 가족을 방문하는 동안, 아내와 나는 어머니의 이모 한 분을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친형제 자매들 여러 명이 지난 5년 동안 그분 댁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 역사 탐구를 위해 주님께서 길을 준비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였습니다. 큰 가방이나 옷가방이 그분의 형제 자매들이 놓고 간 장소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침 내내 나는 이모할머니에게 그 가방들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설득했지만 그분은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그분은 한 개만 열어 보아도 좋다고 말씀했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기도드리며 영감을 구하고 나서 하나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가방을 열어 노랗게 변한 종이를 차례로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증조부의 형제분들에 대한 모든 자료가 들어 있는 조그만 책자를 발견했습니다. 계속 가방을 뒤적이던 나는 이모할머니의 다른 친족들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는 다른 서류들도 발견했습니다. 가방의 다른 내용물들은 오래된 잡지와 오려 낸 신문 기사로 가득 차 있는 듯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가방 안에다 다시 넣고 가방을 닫자, 영은 다시 살펴보라고 속삭였습니다. 다시 한 번 나는 가방을 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가방을 뒤집자 종이들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잡지와 오려 낸 신문 기사 더미 위에 낡았지만 잘 보존된 문서가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어 읽어 보았더니 ‘과달루페 세풀베다의 출생 증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외증조부 되시는 분으로, 내가 태어나기 한 세기 전에 태어나신 분이었습니다.

“나는 이모 할머니에게 달려가서 그 증서를 보여드렸습니다. 전에 그것을 본 적이 없던 그분은 그것을 받고서는 살며시 그것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것을 손에 들고 계셨지’라고 이모할머니가 속삭이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것을 가슴에 갖다 대시며 우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주시며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내가 그것을 가져도 좋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찾던 기록은 바로 내 증조부모 중의 한 분의 출생 일자였다. 이 대가족이 불완전한 채로 계속 남게 될 것인지 나는 궁금했습니다.

“아내와 나는 도움을 주신 이모할머니에게 감사를 드리며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긴 복도를 걸으면서 나는 무엇인가를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다시 달려가서 재빨리 문을 열었습니다. 급히 문을 열어 일어난 공기의 압력으로 인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 왔던 문서들을 담고 있는 작고 오래된 바구니가 떨어졌습니다. 나는 멈춰서 쳐다봤습니다. ‘이 종이들은 뭐지?’ 나는 궁금했습니다. 먼지 속에서 나는 한 날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조심스럽게 나는 먼지를 불어 내고 문서를 펼쳤습니다. 잊혀져 있던 이 낡은 원고에는 여전히 읽을 수 있는 글씨로 내게 필요한 출생 일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영이 내 마음속으로 분명히 뚫고 들어와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얘야,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라고 연로하신 이모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고맙긴요, 할머니.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제가 고맙지요.’라고 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작별 인사로 볼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생에서 이모할머니와 했던 마지막 입맞춤이었습니다. 그분의 도움과 주님의 영감으로 인해 어머니 쪽으로 증조부 가족 모두가 영원을 위한 인봉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가족 역사와 성전 사업은 계속해서 진전되고 있다. 가족들의 이름과 날짜와 장소를 부지런히 찾는 동안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신성한 도움의 손길에 대해 간증에 간증을 이어 전하고 있다. 참으로 주님은 우리가 필요한 정보들을 찾도록 방편과 수단을 제공하신다. 그 결과로 모두가 축복을 받는다.

 

1. Bryant S. Hinckley, Sermons and Missionary Services of Melvin Joseph Ballard(1949), 230. 2005 8월호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