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1월 18일 빛에 안기어 (Embraced By The Light)★]

 빛에 안기어
Embraced By The Light

베티 이디(Betty J. Eadie) 저
1992
이   상   태  역

   책머리에

     나는, 10년동안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아이들과 어른들을 면담하며 근사경험(近死經驗, near-death experience)에 대해서 연구해 왔습니다만, 내 인생의 어떤 경험에서보다 "빛에 안기어"를 읽음으로써 근사경험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빛에 안기어"는 외과수술중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베티 이디 여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생생한 여행기입니다.

나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살아난 한 소년이 그의 부모에게 한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부모님께 말씀드릴 놀랄만한 비밀이 있어요.  하늘에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거든요."  그 어린이는 너무 어려서 그가 뜻하려는 바를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도 똑같은 기이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후의 생에 대한 비밀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비밀인 것입니다.

     근사경험은 사실 죽음에 대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살인자거나, 성스런 사람이거나 모두 죽을 때가 되면 이 경험을 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죽으면, 암흑속으로 들어가고 인생은 끝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중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 나는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죽는 것을 보아왔고, 죽음에 대해 이외의 다른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과정이 즐겁고 영적이란 사실을 알게된 것은 내가 수술중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로부터 무슨 경험을 했는지를 듣기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생이 끝나면 어둠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런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 어린이는 이 빛에 대해 "그안에 훌륭한 것들이 많이 많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근사경험은 뇌의 산소결핍이나, 약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생기는 심리적인 불안감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험은 거의 20년간의 과학적인 연구로,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과정이란 자료가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뇌의 한 곳에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하는 부위가 있다는 증거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근사경험이 절대적인 사실이고 마음속의 환상이 아니란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험들은 다른 인간의 능력처럼, 수학처럼, 언어처럼 사실인 것입니다.

     워싱톤대학과 시애틀아동병원의 연구팀이 미국 소아과의학협회지에 이에 대한 내용을 실은 것은 불과 8년전입니다.  이 연구는 프로리다대학, 보스톤아동병원, 네델란드의 울트레크대학 등을 포함하여 전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과거 20년간 이루어진 죽음의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의 발전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인간이 생물학적인 존재로서 뿐아니라 영적인 존재임을 재교육할 필요성이 지대합니다.  건강관리의 위기, 권위의 상실, 경제를 파탄시킨 탐욕자들, 무주택자들이 많다는 국가적 수치심 등을 포함한 우리사회의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들이, 우리가 서로 상호의존해야 하는 영적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빛에 안기어"는 우리에게 각자의 인생이 중요하며 커다란 의미가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의 빛속에 들어갔다 온 사람들이 "사랑은 지고(至高)하다. 사랑으로 다스려야한다.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을 풍요롭게 살면서, 자기가 수행한 창조적인 일에 기쁨을 느끼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우리의 인생을 발전시키고 극대화하기 위해 이곳에 보내졌다."고 하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메세지를 듣고 충격 받곤 합니다. 

베티는 의학적인 죽음에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라는 위대한 임무를 띠거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적의 능력을 받고, 되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랑하라는 단순한 메세지를 갖고 왔을 뿐입니다.  근사경험의 의미는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한다.  우리는 친절하고, 인내하며, 관대한 봉사를 해야한다."는 것과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우리가 잊고 살았던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도 경이스러운 이야기로, 근사경험에 대한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근사경험을 해본 적도, 내 자신의 몸을 쳐다보는 영적 경험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게 하는 이야기에 의구심이 많았었습니다.  특히 의심이 가장 많이 가는 부분은 육체로부터 이탈한다거나, 죽음이 즐겁다는 것이었습니다.  베티 이디 여사의 책은 경험의 여러 단계들을 기술함으로써 이런 의구심을 씻어주는 굉장한 기록입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죽자, 그녀는 그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나는 에너지파가 밀려오고 내 안에서 무언가 터져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나의 첫 느낌은 내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에 부자연스러운 감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 대해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줄 안내영(안내천사)들을 만났고,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죽음속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녀는 어둠속으로 들어갔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갔습니다.  "나는 이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평온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의 경험은 사람들이 내게 수년동안 근사경험에 대해 질문한 데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나로선 결코 대답할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그녀는 인생의 모든 것을 되돌아 보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에 의해서 심판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부정적인 근사경험의 의미와 원인에 대해서, 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왜 인생에 고달픈 일들이 많은지,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그녀는 왜 죽은 사람들이 자기 시체로 돌아가기를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의 귀챦은 무게와 차가움에 혐오감이 들었어요.  나는 영적인 자유의 기쁨을 만끽한 후에, 다시 육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습니다.

     베티는 어린애였을 때도 이런 경험을 하므로써 근사경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단순하고 순수한 근사경험을 하고도, 종교적 또는 문화적 기대감과 현실의 차이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지도 않고, 하나님을 본 것에 대한 영적인 뜻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도 없습니다.  나는 다섯살 난 소녀가 부끄러운듯 내게 말한 것을 잊지 못합니다. "나는 예수님과 이야기 했는데, 그분은 아주 친절했어요.  그분은 내게 아직 죽을 때가 안됐다고 말했어요."  어린이들은 근사경험에 대해서 어른들 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억합니다.  근사경험의 결과로, 자신들의 영성이 성인과 같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들이 어른에 되어 또 다른 근사경험을 하게 된다면,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베티 이디 여사는 우리에게 근사경험의 중요성은 그것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르쳐 준다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사람에게 영이란 것이 없으므로, 사후의 생이란 없다고 결론 지은 게 불과 수백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죽음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공포감을 갖게 했고, 이런 생각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우리가 풍요한 인생을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베티는 우리에게, '죽음은 영적이다'라는 진리가 우리에게 죽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더욱 완전하게 살려는 욕망을 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실재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바로 이 우주적인 힘을 믿게되자, 나는 우주를 창조한 사랑스런 존재를 보았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한 꼬마소녀가 죽었을 때, "나는 새로운 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배웠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 애는 내게, 주일학교에서 천국에 대해 배웠지만 정말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애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나는 이제 죽는 것이 무섭지 않아요.  왜냐하면 죽음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했습니다.  그 애는 그렇다고 다시 죽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생은 살기 위해 있고, 빛은 미래를 위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그 애의 경험이 어떻게 그 애를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 물었는데, 그 애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훌륭하게 되는 것은 훌륭한 것이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빛에 안기어"는 우리에게 같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친절하다면, 우리는 기쁨을 갖게될 것입니다."  베티는 예수님께 "제가 왜 이런 것을 전에 몰랐었죠?"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너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먼저 슬픔을 알아야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 간단한 말은 내가 인생을 이해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말은 내가 전에 알았던 것이고, 사실 나는 그것을 내 온 생애 동안 들어왔던 것입니다.  나는 베티의 책을 읽은 후에 내 인생이 이 책으로 인해 바뀌었으며, 내가 알았었지만 무시해왔던 간단한 진리에 따라서 살아야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베티는 아메리카 인디안으로서, 어릴 때 기숙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 앞에는 "비젼이 없는 사람들은 파멸한다."라고 쓴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우리의 영적 믿음과 비젼에 대해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우리가 죽음에 대해 만든 잔혹한 혼란속에 빠뜨립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환자들은 친척이나 친구와 함께가 아니라, 차디찬 기계와 함께 병원에서 몰래 죽어갑니다. 우리는 죽음이 우리의 정상적인 삶의 부분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죽음에 대해 잊고 살았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잊고 있었습니다.  죠세프 캠벨이란 신화학자(神話學者)는, 약물남용에서부터 도심에서의 폭력에 이르는 우리 현대의 많은 문제점들이 영적인 비젼의 총체적 결핍에 기인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빛에 안기어"에는 위대한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이 비밀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예언자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수천년동안 우리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들입니다.  베티 이디 여사는 그것을 근사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또한 여러분의 인생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멜빈 모올스, 외과의사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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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i

목차 ..................................................................................................... vii

첫날밤 .................................................................................................  1

밤은 깊어가고 ................................................................................... 10

둘째날 ................................................................................................. 15

죽음 ..................................................................................................... 20

터널 ..................................................................................................... 26

빛에 안기어 ....................................................................................... 28

법칙들 ................................................................................................. 39

치유와 죽음 ....................................................................................... 45

베틀과 도서관 ................................................................................... 53

정원 ..................................................................................................... 57

축하연 ................................................................................................. 60

수 많은 세계 ..................................................................................... 63

몸을 선택함 ....................................................................................... 66

술취한 남자 ....................................................................................... 73

기도 ..................................................................................................... 77

남자들의 평의회 ............................................................................... 81

이별 ..................................................................................................... 91

귀환 ..................................................................................................... 93

회복 ..................................................................................................... 99

나의 특별한 천사 ............................................................................ 102

역자의 변 ......................................................................................... 112  

 


첫날 밤

     무언가 잘못되었다. 나의 남편 죠는 불과 수분 전에 병실을 떠났으나 벌써부터 좋지 못한 예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을 홀로, 나의 가장 두려운 일을 맞이할 밤을 나홀로 지새울 것이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의 마음속으로 엄습해왔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 생각이 그렇게도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일까?

     1973년 11월 18일 저녁이었다. 나는 자궁적출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였다.  일곱 아이를 둔 어머니인 나는 서른한살로 건강한 편이었으나, 이 수술을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모두 이 결정을 하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이 결정에 대한 편안함은 여전했으나, 지금은 무언가 다른 것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오랜 결혼 생활동안 우리는 밤을 떨어져 지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가족을 또한 그들과 함께 했던 특별한 친밀함을 회상하려 애써보았다.  우리는 여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지만(한 명은 애기였을 때 죽었다) 그들을 혼자 있도록 하는 것이 싫었다.  때문에 우리 부부가 데이트를 할 때에도, 우리가 집에 있으면서 자녀들이 우리의 데이트를 위해서 계획을 세우도록 하였다.  때때로 그들은 우리를 위해 거실에 촛불을 켜고 벽난로에는 폭죽을 터트리며 저녁을 차려 주었다.  그들은 우리 수준에 맞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분위기에 맞는 음악도 마련해 틀어주었다.  나는 그들이 그 날 저녁 찻상 위에 장식을 곁드리고,  중국식 요리를 차려놓고,  또한 함께 앉을 수 있도록 큰 방석을 마련해 주었던 것을 회상하였다.  그들은 전등을 약하게 켜놓고, 우리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주고는,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면서 재잘거리면서 웃는 것이었다.  죠와 나는 지상의 천국이 바로 이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죠와 같이 사려깊고 사랑스러운 남편을 만난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그는 내가 입원하기 전에 나와 함께 하기 위해 휴가를 얻었고, 회복할 동안 한 주일 더 집에서 보내기로 하였다.  그와 14, 15살된 우리의 두 큰 딸들은 멋진 추수감사절 만찬을 계획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더욱 더 무겁게 나를 엄습해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 방의 어두움, 소녀시절 나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그 끔찍한 어두움 때문일 것이다.  혹은 이 불길한 느낌은 한 경험, 아직도 의문과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는 몇해전 병원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될 수도 있을 것이리라.

 

     내가 네 살 때 나의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다. 아버지는 "세상에 백인이 인디안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보다 더 고약한 일은 없을 꺼야."라고 얘기하곤 하셨다.  그는 빛깔 좋은 머릿결을 가진 스코틀랜드계 남자였고, 어머니는 순수한 수우족 인디언(Sioux)이었다.  열자녀 중 일곱번째인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에 부모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돌아 갔고, 아버지는 시내에 사시는 할아버님에게로 가셨다.  그 때 우리형제들 중 여섯은 천주교 기숙학교에 들어 갔다.

     기숙학교에서의 첫 겨울이었다.  나는 심한 기침과 계속되는 오한으로 시달렸다.  나는 마흔 명의 소녀들과 한 방을 썼는데, 하루는 내 침대를 놔두고 언니 조이스의 침대로 기어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함께 누워 울었다.  나는 심한 열을 참지 못해 울었고 그녀는 나를 염려하여 울었다.  언니 중 한 명이 저녁 불침번을 서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흘린 땀으로 습하고 차가워진 나의 침대로 데려다 주었다.  조이스는 언니에게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리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마침내 나는 이틀후 저녁에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의사는 내 병을 백일해와 폐렴으로 진단했고, 간호사더러 우리 부모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그날 저녁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심한 열로 고통을 받으면서 잠을 설쳤다.  한 번은 내 머리 위에 손길을 느꼈을 때, 간호사가 나에게 기대어 나를 쳐다보며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이 애는 정말 어린데"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서 느꼈던 친절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더욱 더 이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말은 나를 평온하게 해줬고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의사의 말에 눈을 떴다.  "너무 늦었어요. 그녀는 죽었어요."  그리고 이불이 머리위로 끌어올려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당황했다.  왜 너무 늦었을까?  나는 머리를 돌려 방안을 돌아보았고, 이불이 나의 얼굴을 덮고 있었을뿐,  방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의사와 간호사가 침대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병실을 두리번거리며 그전보다 더욱 밝은 빛을 감지했다.  침대는 나에게 거대하게 보였다.  "나는 이 하얗고 거대한 침대에 놓인 하나의 작은 갈색 벌레와 같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 의사는 사라지고 가까이에 다른 사람이 있음을 깨달았다.  갑자기 나는 침대위에 누워있지 않고 누군가의 팔에 안겨있음을 발견했다.  눈을 들어 하얗고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수염은 아주 멋지게 보였다.  수염은 그 속에서 나온 밝은 빛으로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킥킥 웃으며 그의 수염에 손을 집어 넣고 손가락에 수염을 감아 보았다.  나는 아주 평온했고 그와 함께 있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는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고서 흔들었고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애기가 다시 숨을 쉬어요!"  간호사는 소리쳤고 의사는 다시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 방은 다른 방이었다.  나는 아주 어두운 더 작은 방으로 옮겨졌던 것이었다.  그 흰 수염을 한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 몸은 고열로 불덩이가 되어 있었고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몹시 무서웠다.  의사는 불을 켰고 전에 있던 방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부모님이 도착했을 때, 내가 죽을 뻔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줄곧 거기에 있었는데 어떻게 죽을 수 있었지?  하여간 흰 수염을 한 남자처럼,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있게 되어 좋았다.  나는 그들에게 그 남자가 누구이며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물었으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의사가 너무 늦었다고 얘기했던 것을 말해 주었고, 하얗게 빛나는 수염을 가진 사람이 와서 나를 안아 주었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경험은 나의 어린 시절에 사랑의 오아시스처럼 소중히 간직되는 나만의 것이 되었다.  기억은 결코 변하지 않았고 그것을 기억할 때마다 내가 그의 품 안에서 느꼈던 행복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방으로 스며들어 올 때, 나는 이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던 그 어린 시절 이후로,  나는 늘 어둠을 두려워 하게되었다.  이제 다시 어둠 속에서 홀로 되어, 방안에 가득한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있었다.  죽음이 내 주위에 소용돌이 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죽음으로 채워졌고, 그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죽음.  죽음과 하나님.  이 둘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죽음 저 편에서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내일 죽는다면 무얼 보게 될까?  영원한 죽음?  복수(復讐)의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될까?  확실히 모르겠다.  또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저 학교에서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것과 같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거대한 벽돌담과 어둡고 차가운 방이 있는 나의 첫번째 학교 건물을 기억한다.  쇠사슬로 된 담이 남녀 기숙사를 갈라놓고 또 다른 담이 학교 주위에 둘러쳐 있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직도 나는 오빠가 어떤 건물로 끌려가고 언니와 내가 다른 건물로 인도되었던 바로 그 첫날 아침을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우리를 돌아볼 때 그들의 눈 속에 숨어있는 공포감을 절대 잊어버릴 수 없다.  나의 심장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와 두 언니는 작은 방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수녀는 우리들에게 이를 잡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머리를 잘랐다.  그 다음 그들은 우리에게 1주에 한 번 갈아 입도록 색깔이 다른 단색옷 두벌을 주었다.  이 교복은 학교서 도망치는 애들을 찾기 쉽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씨스'라고 부르는 큰 언니 텔마는 우리와 분리되어 나이가 많은 소녀와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그 첫날 저녁 조이스와 나는 다른 소녀들과 줄을 서 있다가, 수녀들이 호각을 불자 우리의 방으로 행진해 들어갔고, 침대 옆에 서 있어야 했다.  그 다음 우리는 곧바로 침대로 들어갔고, 불은 꺼졌으며, 문은 밖에서 잠겨져 버렸다.  방안에, 이렇게 크고 어두운 방안에 갇혀있는 것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어둠 속에서, 공포속에서 기다리다가, 나는 마침내 고맙게도 잠이 들어버렸다.

     일요일에는 모든 어린이들이 교회에 참석하였는데 그곳은 나와 언니들에게 예배당 뒷편에서 오빠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쏟아져 나오는 소녀들을 통해 바로 그 첫번째 일요일에 오빠들을 보려 애쓰고 있을 때 누가 내 머리를 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고 마침내 끝에 고무공이 달린 긴 막대를 보았다.  수녀들은 이 기구를 교회에서 우리의 행동을 바로 잡는 데 사용하였다.  이것은 바로 내가 경험한 많은 것 중에서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벨소리가 무엇을 의미하고 언제 내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자주 막대로 맞아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오빠들을 볼 수 있었고, 오빠를 만나려면 고무공으로 맞아야 됐는데 오빠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아픈 것은 문제가 안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여태껏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많은 것들에 대해 배웠다.  또한 우리 인디안들은 이교도와 죄인으로 불리웠고 물론 나는 그것을 믿었다.  수녀들은 하나님의 눈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였고, 그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그곳에 있다고 배웠다.  언니 텔마는 자주 수녀들로부터 작은 호스로 매질을 당했고, 다음에 그렇게 한 수녀들에게 감사하도록 강요당했으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는 또 다른 매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나는 수녀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종이라고 믿었고, 이들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굉장히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에 대해 배운 모든 것들이 이러한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하나님은 화가 나있고 참을성이 없으며 매우 힘이 있는 분이라고 여겼으며, 이러한 생각은 바로 그는 나를 없앨 수 있으며 심판의 날이나 내가 그를 만나기 직전에 곧바로 나를 지옥에 보낼 것이라 여겼다.  학교에서 배운 하나님은 내가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하나님이었다.

 

     나는 큰 벽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죠가 떠난지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았다.  몇 분 밖에.  방안의 세면대 위에 있는 작은 불빛이 진한 그림자, 즉 나의 과거로 부터 악몽처럼 나의 상상속에 걸려 있는 그림자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였다.  나의 마음은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고독에 의해 힘을 얻어 나의 마음은 어두운 기억 저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평화를 찾기 위해 마음을 제어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그날 밤은 끝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홀로 침잠하여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애써 찾으려 하였다.

     이 때,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브레이너드 인디안 훈련학교는 웨슬리 감리교파에 의해 운영되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학교 건물 앞에  "비젼이 없는 사람들은 파멸한다."라고 쓰여 있는 큰 간판을 읽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물론 그것이 우리 인디안들을 두고 한 말이었으며, 또한 이곳이 훈련학교였으므로 더욱 더 많은 비젼을 갖기 위해 여기에서 훈련받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인디안이나 개는 사절"이라고 적혀 있는 문구를 시내에서 보았을 때 더욱 굳혀졌다.

     브레이너드 인디안 훈련학교는 나에게 전에 있었던 학교 보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주었다.  우리는 아늑하고 홀가분한 분위기를 즐겼고,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을 감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하나님이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쳐진다는 것을 배웠다.  전에 알았던 노한, 복수심에 가득찬 하나님 대신에 여기 있는 분들은 우리가 행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즐거워하신다고 가르쳤다.  예배모임에서 사람들은 자주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쳤고 나는 그들의 갑작스런 외침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경배하는 방법이 다름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은 여전히 내가 죽어 그 앞에 섰을 때 나를 벌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여름동안 난 루터교회와 침례교회에 참석했고 때때로 구세군에도 참석했다.  내가 다닌 교회에서는 내가 참석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성장하면서 커져갔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역할이 뭔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다.  나는 기도로 응답을 얻고자 그에게 다가갔으나 그가 나의 말을 듣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의 말은 단지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열한살이었을 때 용기를 가지고 학교 보모에게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지를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진실로 알고 있다면 그녀도 그러할 것이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나를 때리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의심을 가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무릎을 꿇게했고 용서를 구하도록 기도하라고 했다.  기도했으나 그 때는 신앙심의 부족--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 것--때문에 지옥으로 가게될 것으로 알았다.  아니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나는 아버지에게 돌아갔고 두려움으로 나를 마비시켰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밤 잠자리에 든 후 나는 창문의 커튼을 열고 별과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즐겨 해왔던 것이었다.  갑자기 구름에서 한 줄기 하얀 빛을 감지했고 나는 두려움으로 얼어버렸다.  그것은 누구를 찾는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생각했고 힘껏 소리쳤다.  나는 그가 도둑같이 밤에 오셔서 의로운 사람을 데려가고 악한 자들을 불태우실 것이라고 배웠다.  아버지가 오랜 시간 나를 진정시켰고 마침내 마을에서 축제가 있음을 알리는 광고용 불빛이라며 나를 달래주었다.  그것은 내가 여태껏 보지 못한 불빛이었다.  나는 커튼을 닫았고 한동안 별빛을 바라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진정한 하나님을 찾는 일은 계속되었다.  나는 여러 종파의 교회를 참석했고 신약에서 많은 경전 귀절을 암기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나는 사람이 죽으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의로운 사람과 승천하시는 부활의 날까지, 영은 몸과 함께 무덤에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이것을 자주 생각했고 여전히 나의 죽음과 곧이어 찾아들 어두움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병실의 커튼은 닫혀 있었다. 내가 닫았던가?  나는 시계를 다시 한번 보고는 일어나서 시계가 가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었다.  아마도 간호사가 와주거나 집에 전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팔을 뻗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고, 잠시후 신호가 가자 열다섯살난 우리의 딸 도나가 받았다.  그녀는 즉시 내가 괜찮은지를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날 염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이 좋으나 조금 외롭다고 말했다.  "아빤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그녀는 말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와 몹시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 괜찮아요?", 그녀는 물었고, 나는 "그래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실은 "제발 아빠를 최대한으로 빨리 이리로 모시고 오너라!"하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나는 수화기를 통해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와 얘기하고 싶어!",  "야 전화 이리줘!",  "아빠한테 일를꺼야!"

   그리고 집에서 나는 그 소리들은 나를 더욱 편안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 후 30분동안 모든 아이들에게 잘 자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수화기를 놓자마자 외로움이 이불처럼 다시 나를 감쌌다.  방은 더 어두워 보였고 집까지의 거리가 마치 백만마일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가족은 그 자체가 나에게는 생명이었고 그들과 떨어져 있는 것은 나를 공포에 떨게하고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자녀들과 남편 생각이 다시 떠오르자 한결 나아졌다.  그 순간 이 세상 누구도 불과 몇 시간 후에, 내가 그들이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상관하지 않음을--사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을 빌고 있었음을--알 수 없었으리라.

 

   나는 남편과 자녀들이 내가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가족과의 생활을 결국에는 보상해줄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내가 결혼하여 가정을 갖게되면 그들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피난처가 되도록 하겠다고 내 자신에게 약속했다.  또한 남편을 사랑하고 언제까지나 그와 함께하며 자녀들이 항상 우리를 의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내 자신에게 약속하였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성숙한 아가씨는 기숙학교에서나 아버지와 함께가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한편 어머니는 하루종일 일을 하셨으므로 애기 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의 막내동생을 돌보면서 집에 머물러 있었다.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아침 저녁 이웃 집 아이들이 학교에 오가는 것이나 지켜보는 내 자신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는 교육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으나,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친구와 다른 형제 자매와의 교제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 나는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여 가족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삶이 다른 사람의 필요사항에 의해 조정되고 어떠한 개인적인 행복에 대한 권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내 소유의 옷과, 내 소유의 침대, 그리고 내 소유의 가정을 원했다.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언제나 나를 사랑해줄 신뢰할 수 있는 남편을 갖고 싶었다.

    이럴 때 옆집에 사는 소년과 무작정 사랑에 빠져 다음해 봄에 결혼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완고하게 반대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와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나를 도와 주셨다.  나는 열다섯 살로 아주 순진했으므로 진정한 가족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 둘은 이런 미숙함과 서로 다른 인생목표를 갖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결혼은 6년 후에 끝이 났다.  나의 꿈은 깨어졌고 나의 영혼은 상처를 입어 이를 치료하려면 많은 인내와 사랑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네 명의 아름다운 자녀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두 딸은 도나와 셰릴, 다음은 아들 글렌, 그리고 막내 딸 신디아는 병으로 3개월을 못넘기고 죽었다.

    내가 지금의 남편 죠를 만난 것은 이혼한 그 다음해 크리스마스날 무도회에서였다.  그는 네바다주 리노시 근교에 있는 스테드 공군 기지에 근무하고 있었다.  죠도 역시 이혼하였고, 나는 그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었고 유대감이 강한 가정을 갖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꽤 어울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나의 아이들조차 나보다도 더 그와 함께 살기를 원했고, 그래서 우리의 결혼은 더욱 빨리 성사되었다.          

   우리의 신혼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죠에게는 내가 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그런 따스함이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 대해서 굉장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완고한 편이어서, 아이들은 그를 몹시 따랐다.  아이들은 그가 밤에 퇴근할 때면 누가 제일 처음 그를 맞이하는가로 싸우곤 했다.  처음부터 죠는 모든 면에서 그들의 "아빠"였다. 

   우리는 함께 있기를 원했고, 바로 그 소망이 우리의 성숙함과 어우러져 오랫동안 우리를 결합해주는 접착제 구실을 했다.  우리가 이리저리로 이사를 다니고 우리의 삶에 적응해 나가면서, 우리는 그 댓가가 얼마건 간에 우리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항상 가족이 먼저였고 우리 자신은 그 다음이었다. 

   1963년 7월, 죠는 텍사스주의 산안토니오에 있는 란돌프 공군기지로 전속하게 되었다.  이때쯤 컴퓨터가 막 등장해서, 죠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도록 임무를 받았다.  우리가 4년간 텍사스에 있는 동안, 아들 둘(조셉 이세와 스튜어트 제프리)을 낳았다. 

   우리의 꿈은 실현되고 있었다.  우리는 새 차와 에어콘이 완비된 새 집을 갖게 되었다.  자녀들의 옷은 넉넉했고, 나는 집에서 그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축복받은 삶이었다.  그때는 마치 기숙학교 때나 어린 시절의 외로움, 결혼의 파탄과는 판이하게 다른 안정과 기쁨을 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엇인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따라다녔다. 

   계속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멀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분께서 가끔가다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이를테면 이혼 뒤에 사랑과 인내심으로 가득 찬 누군가를 만나 내가 자녀를 키우는 것을 돕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죠를 만나게 해 주셨으니까.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신다고 믿었다--그분이 복수심으로 차신 분이더라도 말이다--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그분의 사랑을 나의 삶에 적용시키고 나의 자녀들과 나눌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죠와 이 문제에 관해 상의했고, 결국 함께 교회에 다니자고 제의했다.  그는 종교에 관해 별로 좋지않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달가와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장을 존중하는 한편 우리 가족이 더욱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우리는 몇몇 동네 교회에 참석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고 얼마뒤엔 모든 것을 묵과하게 되었다.  수년간 나는 종교에 관한 확신 없이 지냈다.

 

   간호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나의 생각들이 흩어져 버렸다.  그녀는 내게 수면제를 복용하라고 했지만 나는 모든 종류의 약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거절했다.  아주 오래전 부터 나는 약을 싫어했고, 차라리 두통이나 병을 참을지언정 아스피린 조차도 복용하지 않곤 했다.  간호사는 나갔고, 나는 다시 내 생각속에 빠져들었다.  말할 수 없는 고독에 쌓인 채 이번엔 몇시간 남지않은 수술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모든 일이 잘 될까?  나는 수술대 위에서 죽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될까?  묘지의 광경이 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묘비와 관 안에 들은 해골의 목에 걸린 십자가가 떠 올랐다.  나는 어린 시절 장례식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나는 왜 죽은 사람들 목에 십자가를 걸까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 우리가 성도임을 보이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들이 지옥의 악마들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일까?  우울함이 엄습해오기 시작했고, 어둠은 계속 나를 짖눌러서 나는 호출단추를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나는 그녀가 들어왔을 때, "지금 수면제를 복용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지만 곧 약을 갖다 주었다.  나는 약을 받아들고 불을 끄고 나가는 간호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잠시 뒤에 졸음이 몰려왔고, 마침내 나는 짧게 기도하고 잠이 들었다. 


둘째 날

 

     커튼 끝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며 아침은 제법 빨리 왔다.  수술은 정오로 잡혀있었다.  일어나서 몇 시간을 기다릴 수도 계속 잠을 즐길 수도 있었다.  수면제 때문에 취한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전날밤의 공포감과 불안감으로 인해서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아침을 맞이하는 밝은 방에서 긴장을 풀고 내가 지난번에 병원에 있던 그 때를 생각해 봤다.  그 때 느낀 두려움에 비하면 간밤의 공포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는 있었으니까.

 

         

   죠는 1967년에 공군에서 전역했고, 우리는 그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직업들을 찾아보았다.  컴퓨터는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그가 받은 교육 덕택에 그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이 어느 지역인지만 결정하면 되었다.  결국 우리는 죠가 일할 큰 항공우주회사가 있는 태평양연안 북서부쪽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하였다.  뜨겁고 건조한 텍사스의 날씨와는 달리 그곳의 날씨는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북서부에 살고 계시는 나의 아버지와 새 어머니를 찾아뵐 수도 있었다.

   우리가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일곱번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 임신은 우리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돌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자녀--그때의 다섯 아이들--를 가졌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다시 임신하지 않도록 주의했었다.  지난 여섯번의 임신으로 나는 허약해져 있었고, 의사들은 아이를 갖지 말도록 권유했다. 

   임신 삼개월째가 되자 심한 경련과 출혈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의사들은 내가 태아 조직을 배출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 증상과 다른 합병증 때문에 내가 곧 유산할 것이 틀림 없다고 믿었다.  출혈이 계속됨에 따라 나는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우리는 자연유산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태아가 유산되지 않을 것이 명백해졌고, 의사는 낙태를 하는 것이 어떨지 권유했다.  그는 만약에 그 아이를 낳는다면 분명 태아 몸의 어떤 부분인가가 없이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죠와 상의를 한 후에 우리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낙태 수술을 하기로 한 전날 다른 의사들이 나를 검사했고 계획했던대로 수술을 하는 데 동의했다.  마지막 의사가 나가며 내게 말을 건냈다.  "왜 저 작은 친구가 거기서 계속 살아 매달려 있는지 알 수 없군요."  나는 소름이 끼쳤고,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러면 안돼.  너는 이 아이를 낳아야만 해.  그는 태어나기를 원하고 있어." 

   그날 저녁 죠가 병문안을 왔을 때, 나는 의사들이 무어라고 말했는지 설명해 주고, 이 아이가 태어나야만 한다는 나의 느낌을 말해 주었다.  우리는 낙태를 시키지 않고 있다가 결국 불구 아이를 낳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 하였다.  우리 둘 다 그러길 원치 않았지만, 내가 지금 이 아이를 낙태시킨다면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죠는 우리가 이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것에 동의했고, 그날 밤 우리는 의사들을 만나 우리의 느낌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어떤 의사도 임신을 계속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들은 이 일에 관여되는 것 조차 거부했다. 

   다음날 나는 퇴원했고 그런 나를 받아줄 의사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수년간 공군에서 복역하다가 개인 병원을 개업한 젊은 의사를 찾아내었다.  죠처럼 공군 출신이었던 그는 우리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는 그 아기가 살아날 확율이 있다고 봤지만, 그 역시도 아기가 불구로 태어날까봐 걱정하였다.  그는 나에게 계속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말아야 하는지 목록을 작성해 주었다. 

   죠와 아이들은 집안일을 나대신 훌륭히 처리해 주었고, 나는 그 시간을 더욱 많은 것을 배우고 고등학교 수료증을 따는데 주력했다(역자주: 미국에는 가정에서 독학해서 수료증이나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시간은 유수같이 흘러  출산예정일이 코앞에 다가왔고, 나는 점점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기가 몸의 한부분이 없는 불구로 태어나던지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다고 자녀들에게 미리 잘 얘기해 두었다.  죠와 나는 "저 작은 친구가 거기서 계속 살아 매달려 있어요"라고한 의사의 말을 상기하며 서로를 진정시켰다.  그때는 아기의 아버지가 분만실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던 때였으므로 내가 아기를 낳을 때 죠가 가까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병원측은 분만할 때 죠가 나와 함께 있어도 좋다고 했으나, 그가 만약에 기절을 하거나 구토를 하더라도 수술중에는 내가 급선무이므로 그를 돌볼 수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죠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 병원측에 책임을 돌리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했다. 

   1968년 6월 19일, 진통이 시작 되었고 나는 입원을 하였다.  너무나 겁에 질려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분만실에서 죠는 내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도 의사들처럼 푸른 가운을 입고 하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청회색 눈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마스크 뒤로 거칠게 내쉬는 그의 숨소리는 그도 나만큼 겁에 질려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분만이 시작되자 우리는 손을 꼭 잡았다. 

   아기가 나왔을 때 나는 의사들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동안의 두려움과 걱정이 모두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내가 아기를 안아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죠와 나는 재빨리 아기의 머리끝 부터 발끝 까지 훑어 보았다.  우리는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여지것 태어난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온전하고 건강했다.  내가 아기를 안는 순간 난 이 아기가 내게로 태어나기로 정해졌었고, 진심으로 그러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되었음을 알았다.

   물론 내 결정에 결코 후회는 하지 않지만, 이번의 임신은 나의 몸에 톡톡한 대가를 치루게 했다.  그 후 몇년간 많은 문제가 잇따라 일어났고, 의사는 자궁 적출수술을 받도록 제의했다.  나는 깊이 생각해 보고 또 죠와 상의한 후에, 의사의 제의를 따르기로 하였고 그 수술 날짜를 정했다.

  

   이제 수술 당일이 되었고, 처음 보는 간호사가 나를 마구 깨웠다.  수술을 위해 나에게 마취 주사를 놓으려는 것이었다.  나를 잠재우기 위해서 깨우다니.  웃어댈 수도 있었겠지만, 벌써부터 약기운이 따뜻하게 온 몸을 감돌고 있었다.  "그녀가 준비되었나요?"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때 그가 들어온 것 같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조용하게 어두워졌다.

   내가 막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후였다.  내 옆에 서 있던 의사가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이제 곧 회복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잘 되었군.  드디어 수술에 대한 걱정 없이 편히 쉬겠구나."하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독방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방엔 나 혼자였다.  방은 주황색과 노란색 줄이 간 벽지로 아주 밝게 단장되어 있었다.  너무 화려하군, 그래도 밝긴한데.  방에는 두개의 전기 스텐드와 두개의 서랍장, 텔레비젼, 그리고 내 침대 가까이에 큰 창문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밀실 공포증 때문에 고생했던 나는 창문 옆의 침대를 부탁했었다.  밖은 어두웠고, 방안에 있는 빛이라곤 씽크대 옆의 희미한 야등 뿐이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물을 부탁하려고 호출을 하였다.  그녀는 나에게 오후 쯤 얼음을 갖다 주었다고 했지만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그녀는 내 남편과 그의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었다고 말해주었지만 그 사실 역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내 화장이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의식했고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그런 나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무척 불쾌했다.  게다가 내 환자복이란?  이건 아주 중요한 부분만 겨우 가리고 있었다!  이런 때 그의 친구들을 데리고 온 죠에게 한 마디 해야겠군. 

   아홉시가 되자 간호사가 약을 가져왔다.  수술 때문에 느끼는 약한 통증 외에는 몸이 편안했다.  나는 약을 먹고 잠들기 전에 텔레비젼을 조금 보려고 앉았다.  시계가 9시 반을 가르키는 것을 보니 아마도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고 죠에게 전화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전화기를 찾아서 다이얼을 돌렸지만,  우리의 대화는 기억할 수가 없다.  너무나 피곤해서 잠자고 싶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힘겹게 텔레비젼을 끄고 이불을 목까지 덮었다.  전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뼛속까지 밀려오는 한기와 내 몸이 약해짐을 느꼈다. 


죽   음

 

          시계가 아직도 9시 반을 가르키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또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웬일인지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방안을 둘러 보았다.  문은 반쯤 닫혀 있었고, 씽크대 옆의 희미한 불빛도 여전했다.  나는 아주 예민해졌고 두려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계속 허약해짐을 느꼈다.

   나는 간호사를 부르려고 전화선을 잡아 당겼다.  그렇지만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마치 마지막 한방울의 피까지 빠져나가는 것 같이 가라앉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속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고,  몸이 고정되고 생명이 쇠잔된 느낌이 들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가라앉았다.

   그때 나는 격동하는 힘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나의 내부로 부터 터져 나왔거나 해방된 느낌이었고, 나의 영혼은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의해 들려지듯 내 가슴으로 부터 튀어 나왔다.  제일 첫번째로 느낀 것은 바로 자유였다.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침대의 위쪽 천장 가까이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자유롭다는 느낌은 무한하였고, 마치 내가 끊임없이 이런 상태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문득 나는 침대위에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간호사로 일했던 적이 있었으므로 죽은 시체가 어떤지 알았고, 그 얼굴을 자세히 보았을 때 나는 단번에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시신이 바로 내 자신임을 알았다.  침대위의 죽은 시체는 바로 나였다!  나는 그리 놀라지도 무서워 하지도 않았다.  다만 안됐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젊고 예뻐 보였는데, 죽은채 누워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입던 옷을 벗어서 영원히 치워 놓은 것과 같았고, 그 옷은 아직도 좋고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슬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지껏 내 자신을 삼차원적(입체적)으로 본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자신을 여지껏 편편한 거울을 통해서만 보아 왔으니까.  하지만 영혼의 눈은 육체의 눈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차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육체를 한번에 모든 방향에서, 앞과 뒤와 양옆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시각에 완전함과 온전함이 더해짐으로써 전에는 몰랐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나의 시각 때문에 처음에 나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나의 새로운 몸은 무게가 없어 아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이런 나의 새로운 상태는 무척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조금 전만해도 수술로 인한 고통이 컸었는데, 이젠 더 이상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모든 면에서 완전했고, "이게 진짜 나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내 육체에 주의를 기울였다.  아무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누군가를 불러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어!"  하지만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세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아름답고 연갈색이 도는 긴 성의을 입고 있었고, 그 중의 한명은 머리 뒤로 두건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금빛으로 꽈진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  눈부시지는 않았지만 빛이 그들에게서 나오고 있었고, 부드러운 빛이 내 몸에서도 흘러 나와 우리의 빛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들은 칠십이나 팔십세쯤 되어 보였는데, 지구와는 다른 차원의 시간에서 사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칠팔십세가 훨씬 더 되는, 아주 옛적부터 살았던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영성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고귀함을 일깨우기 위해 성의를 입고 나타났다고 나는 믿었다.   나는 그 성의를 보고 그들이 수도사라고 생각했고, 그들에 대한 신뢰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이야기 했다.

   그들은 나와 "영원"부터 알고 있는 사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원은 고사하고, 나는 영원이란 개념 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영원이란 내게 항상 미래를 의미했는데, 이 사람들은 내게 과거에 영원을 함께 해 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아주 오래전의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구에 존재하기 이전의 일들과, 그들과의 "과거의" 관계가 말이다.  이런 장면들이 마음속에 펼쳐지면서 나는 우리가 서로 "영원"을 함께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구 이전의 삶이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죽음이란 바로 시간을 통해 과거와 미래로 뻗어있는 더욱 큰 이해와 지식으로의 "재탄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들이 더욱 큰 삶을 위해 정선된 친구들이고, 그들이 나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가 지구에서 사는 동안 나의 수호천사들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아주 특별함을, 그리고 또 그들이 나의 "관리천사들"이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내게 아직 죽을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좌우간 그들은 평화로운 느낌과 모든 것들이 잘 될 것이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이런 느낌들이 들자, 나는 그들의 깊은 사랑과 염려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느낌들과 생각들은 영혼으로부터 영혼, 그러니까 지성적 존재로부터 지성적 존재로의 교통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이 입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익숙해 있던 탓이리라.  그들은 훨씬 빠르고 완전하게, 그들이 일컫는 바 "순수한 지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였다.  우리의 말로 가장 근접하게 이러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텔레파시이지만, 이 단어 조차도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감정과 의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느꼈고, 그들의 느낌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전에 내가 쓰던, 내 육체의 언어는 진실로 제한된 것이었고, 이렇게 순수한 방법으로 대화하는 영혼의 능력에 비하면 느낌을 묘사하던 내 이전의 능력은 너무 미미한 것이었다.

   그들이 나와 나누고 싶었던 것들, 내가 그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의 관심사항에 대해서 먼저 아야기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나의 남편과 아이들 생각이 떠올랐고, 나의 죽음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 남편 혼자서 여섯 아이들을 돌보지?  나 없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견딜까?  나의 걱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들을 마지막으로 꼭 한번 보아야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던 것은 오로지 그 병원을 떠나 나의 가족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기다렸고, 또 이 가정을 지키려고 수 많은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 그들을 잃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아니, 아마도 그들이 나를 잃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 즉시 나는 출구를 찾았고, 창문을 발견했다.  나는 재빨리 창문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왔으나,  곧 창문으로 통과할 필요가 없이 방의 아무데로나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창문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내가 육신으로 있던 때의 (그리고  그에 따른 제한들에 대한) 습관적인 생각들 때문이었다.  이제 내 영체가 고체를 통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육체를 갖고 있는 듯이 생각했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는 식"이었다.  창문은 내내 닫혀 있었다.

   집으로 간 기억은 흐릿하다.  나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이제야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내 밑으로 스쳐가는 나무 정도만 겨우 인식했다.  나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가야할 방향도 설정하지 않은 채 우리 집만 생각했고 그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순식간에 나는 집에 도착해 거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그가 제일 좋아하는 안락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아 잠자리에 들 시간임을 알아차렸다.  두 아이는 베게 싸움을 하고 있었다.  잠 잘 시간이면 의례 일어나는 일이듯이.  그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나 없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었다.  내가 그들을 개별적으로 쳐다보면서, 그들에 관한 예고편 같은 것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내가 여지껏 그들을 "나의 소유"라고 생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녀들이 그들만의 경험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음을 깨닫게 되었다.  여지껏 내가 잘못 생각해온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이 지상에 오기전에 발전시킨 지성을 가진 개개의 영혼이었다.  각각은 그들의 결정대로 살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갖고 있었고, 나는 이 자유의지가 무시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내가 그들을 돌볼 수 있도록 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제는 기억해낼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이 걸어갈 각자의 길과 그 길을 끝까지 걸었을 때 그들도 이 생을 마감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겪을 몇가지 도전과 어려움들을 미리 보았지만, 그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도 알았다.  슬퍼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엔 나의 아이들 모두가 잘될 것이고, 우리가 다시 함께 하게될 때까지 그런 것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깨끗하게 목욕한 것 같았다.  내 남편과 나의 아이들,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의 가족은 다 잘될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고, 나 또한 나아갈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내가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이런 기회가 허락된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자 나는 나의 삶을 계속함으로써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경험들을 겪고 싶다는 희망으로 가득찼다.  나는 병원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할 수 없다.  마치 단숨에 일어난 일 같았다.  나는 약 두자반 밑에 나의 약간 왼쪽으로 누워있는 내 몸을 보았다.  내 친구 셋이 아직도 거기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 다시 그들이 나를 도와줄 때 느꼈던 그들의 사랑과 기쁨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사랑으로 채워져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나와 함께 가지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무언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터   널

 

          여러분이 엄청난 에너지 속에 있게 되면 여러분은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그것을 인지한다.  심하게 덜거덕 거리며 밀려오는 소리가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 뒤의 힘, 하나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느꼈다.  나는 그 소리와 힘이 두렵긴 했지만, 다시금 아주 기쁜 느낌으로 채워져 최면에 빠진듯 하였다.  나는 딸랑거리는 배경음과 함께 차임벨 소리, 아니면 먼 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결코 잊지못할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다.  어두움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침대, 문 옆의 불빛, 방 전체가 희미해지는 것 같더니, 곧 나는 가볍게 들리워 거대하게 소용돌이 치는 암흑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삼켜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나는 강력하고, 손에 잡힐 것 같은 어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 어둠은 빛이 없는 것 보다 더한, 내가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짙은 어둠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어렸을 때의 모든 두려움이 되살아 나서 겁에 질렸겠지만, 이 어둠속에서 나는 안정과 고요의 좋은 느낌을 느꼈다.  나는 앞으로 어두움을 뚫고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회오리치는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누워있는 자세로, 발이 먼저 움직이고 머리는 약간 들려져 있었다.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져, 광속(光速)으로도 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평화와 평온도 커져서 이런 황홀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머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떨어져서 가긴 했지만, 나와 함께 가고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경험이 나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개인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해를 입힐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곧 이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반면, 나는 나처럼 나아가지 않고 이 훌륭한 어둠속에 묻혀있는 몇몇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아가겠다는 희망이 없던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몰랐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나는 치유의 과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사랑이 소용돌이치며 움직이는 어둠을 가득 채웠고, 나는 이 따스함과 어둠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며 나의 안전과 평화에 기쁨을 느꼈다.  "여기가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임에 틀림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에 이런 평온을 느껴 본 적은 결코 없었다.


빛에 안기어

 

     나는 멀리서 비치는 아주 조그만 점 같은 불빛을 보았다.  나를 감싸고 있는 어둠이 터널처럼 변하였고, 나는 그 불빛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돌진해 나아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불빛에 이끌렸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불빛에 가까와 지면서, 그 빛안에 서서 빛을 발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가까이 감에 따라 그 빛은 더 밝아졌고--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밝게, 태양보다 더 찬란하게--나는 보통의 육안으로는, 그것이 파괴되지 않는 한, 그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영안만이 그 빛을 견딜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빛에 가까와짐에 따라 누웠던 내 몸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온몸이 금빛 후광으로 둘러 싸여 있고, 그 빛이 그 주위까지 눈부시게 빛나는 흰빛이 되어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빛이 문자그대로 나와 합쳐져서, 나의 빛이 그에게로 끌려감을 느꼈다.  그것은 방안에서 두개의 빛이 반짝이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았다.  어디서 하나의 빛이 시작하고, 다른 빛은 어디에서 끝나는지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그 둘은 그냥 하나가 되었다.  그분의 빛이 나의 빛보다 훨씬 더 밝았지만, 나의 빛 또한 우리를 밝혀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빛이 합쳐짐에 따라 나는 그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감을 느꼈고, 터져버릴 것만큼 충만한 사랑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느껴본 중 가장 절대적인 사랑이었고, 팔을 벌려 나를 안으려는 그에게 안기면서 "난 돌아왔어요. 돌아왔어요.  마침내 돌아왔어요." 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나는 그의 무한한 영을 느꼈고, 내가 항상 그의 일부분으로 그에게서 떨어졌던 적이 없었음을 알았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만큼, 또한 그를 포옹할 만큼 의롭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분이 나의 죄와 잘못을 알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나를 꼭 안은 채로 그의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고, 나 또한 나의 사랑을 그와 나누고 싶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물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분이 나의 구세주이자 친구이며, 하나님임을 알았다.  그분은 바로 내가 그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도 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는 생명 그 자체였고 사랑 그 자체였으며, 그의 사랑은 넘칠만큼 충만한 기쁨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내 영이 그를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처음부터, 지상에 오기 이전부터, 그분을 알고 있었음을 알았다.

     내 평생동안 나는 그를 두려워했으나 지금 나는 그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임을 알았다.  그분은 팔을 벌려 내가 그분의 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물러서게 하였다.  그는 "네 죽음은 너무 일러.  아직은 네가 올 때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전의 어떤 말도 나를 이처럼 예리하게 찌른 적이 없다.  그 때까지 나는 인생에 목적이 있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사랑과 선행을 찾아서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나의 행동이 올바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 나는 그분의 말속에서 인생의 임무와 목적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지상의 나의 인생이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직은 내가 올 때는 아니었다.

     내가 올 때는, 나의 인생의 임무, 목적, 의미가 완수될 때일 것이다.  나는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갖고 있었다.  내가 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나의 영혼이 그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이러면 나는 되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에게, "전 지금 당신을 떠나지 않을꺼예요."하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았고, 그의 나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절대로 흔들림이 없었다.  나의 생각은 달음질치고 있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바로 내가 일생동안 두려워해온 그분이란 말인가?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  그는 사랑으로 가득차 있쟎아?"

     그러자 여러가지 의문들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나는 내가 왜 어릴 때 죽지 않았는지, 내 영혼이 어떻게 그의 부활전에 그에게 올 수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린 시절에 배운 가르침과 신앙으로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힘이 들었다.  그의 빛은 나를 채우기 시작했고, 나는 나의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그 답을 얻었다.  그의 빛은 지식이었으며, 그것은 나를 진리로 채워주는 힘을 갖고 있었다.  내 확신이 굳어지면서 그 빛은 내 속으로 흘러들어왔고, 그러자 나는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빨리 질문을 했으며, 그만큼 빨리 해답을 얻었다.    그 해답들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이었다.   두려움 속에서 나는 죽음에 대해서 잘 못 이해했으며, 죽음이 이와는 다른 것이란 기대를 하였다.  무덤은 결코 영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검을 위한 것일 뿐이다.  나는 잘못 이해했던 것에 대해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살아있는 간단한 진리가 나의 과오를 대치했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그가 자신도 하나님이며, 태초에 우리의 구세주로서 선택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지구의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지상에 온 임무는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런 지식은 지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지식은 내가 이 지상에 오기 오래 전에 갖고 있던 것인데, 특별한 목적으로 나의 출생과 함께 망각의 장막에 의해 잊혀져 버렸다.

     더 많은 질문이 나로부터 거품처럼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의 기지를 알게되었다.  그는 웃음띄운 얼굴로, 내가 좀 천천히 질문해도 내가 질문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싶었다.  나의 호기심은 부모님과 남편에게--가끔은 내 자신에게도--부담은 주었지만, 이제 그것은 하나의 축복이며 나는 배울 수 있다는 자유로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주님이신 선생님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이해력은 아주 커져서 엄청난 양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내가 책 한권을 슬쩍 쳐다만 보고도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처럼, 즉 책에 좀 떨어져 앉아 있으면서도, 그 책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안팎으로, 모든 의미와 가능한 암시까지도 간파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모든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내가 한 가지를 이해하면, 더 많은 질문과 해답이 내게 주어져, 모든 것이 서로를 뒷받침하고 모든 진리가 원래 연결되었던 것처럼 서로 연결되었다.  "모르는 게 없다"는 말이 내게 이렇게 의미를 더 해줄 수 없었다.  지식은 내게로 스며들어왔다.  어떤 면에서 지식은 나로 변했으며, 나는 우주의 신비에 단순히 비치기만 했는데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내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왜 하나님은 오직 한 교회와 하나의 순수한 종교만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나?  해답은 순수한 이해력으로 나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발전정도와 이해력에 있어서 수준이 다르다.  따라서 각자 다른 수준의 영적지식을 갖도록 준비해야 한다.  지상의 모든 종교는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 때문에 모두 필요하다.  한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주님의 복음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종교에 있는 동안 결코 전부를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종교는 더 많은 지식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각 교회는 다른 교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영적 필요사항을 충족시킨다.  어느 교회도 모든 수준의 모든 사람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한 개인이 하나님과 자신의 영원한 진보에 관한 이해의 수준을 향상시키면서, 그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가르침과 결연됨을 느낄 것이며, 그 잘못을 채울 수 있는 다른 철학이나 종교를 찾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게되고 더 많은 진리와 지식과 더욱 성장할 또 다른 기회를 갈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이런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부여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을 받은 후, 나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도 어떤 교회나 종교도 비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중요한 임무를 띈 특별한 사람들이 모든 나라와 모든 종교와 모든 인생의 정거장에 보내어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복음에는 충만함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진리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영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자아를 버려야 한다.

     나는 인간이 지상에 온 목적을 알고 싶었다.  왜 우리는 이곳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안긴 채, 나는 왜 어느 영혼이 이 아름다운 천국을 떠나려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탐험할 세상, 창조할 아이디어, 얻게될 지식과 같이 천국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왜 어느 사람이 이곳에 오길 원할까?  대답중에서, 나는 지구의 창조를 기억해냈다.  나는 창조가 내 눈 앞에서 재현되는 것 같은 생생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므로, 예수님은 내가 이 지식을 습득하기를 원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창조가 일어났을 때 내가 느꼈던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내가 창조를 다시 한번 보는 것이 내가 전에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든 인간들은 전세에서 영으로 있을 때 지구의 창조의 일부분을 담당하였다.  우리는 이 참여를 기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우리는 그가 우리를 창조하고, 우리는 그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발전을 기뻐했으며 우리 각자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도 그곳에 있었다.  나는 놀랍게도 예수가 자신의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였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평생 배운 개신교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한 몸이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모두 함께 있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지구에 잠깐동안 온 것은 우리의 영적성장을 위해서라고 설명하셨다.  지상에 온 각 영혼은 우리를 지배하는 필멸의 법과 같은 지상에서의 여러가지 조건들을 만드는 계획을 도왔다.  이 법은 또한 우리가 아는 물리학의 법칙, 우리 몸의 한계성,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적능력 등을 포함하였다.  우리는 지상에 있는 동식물의 창조를 도왔다.  모든 것은 그것이 실제로 창조되기 이전에 모두 영으로 창조되었다--태양계, 태양, 달, 별, 위성, 위성위의 생명, 산, 강, 바다 등등.  나는 이 과정을 보았고, 그것을 더욱 잘 이해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창조가 일종의 사진인화와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적 창조가 선명하고 밝은 프린트라면 지구는 그것을 만든 검은 네가티브와 같이.  이 지구는 영적 창조의 아름다움과 영광의 한 그림자일 뿐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상에서 우리의 발전에 필요한 요소들을 창조하는 것을 도왔다는 것을 이해하게된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의 생에서 종종 우리가 갖는 창조적인 생각은 보이지 않는 영감의 결과이다.  세상의 많은 중요한 발명품과 기술적인 발전들은 원래 기발한 영들에 의해 영으로 창조되었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사람들은 이들 발명품들을 창조한 영감을 받는 것이다.  나는 영의 세계와 필멸의 세계 사이의 생생하고도 역동적인 연결고리가 있어서,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저쪽에 있는 영들의 도움이 필요함을 이해하였다.  나는 또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우리를 돕는 것을 매우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전세에서 우리 생의 목적을 이해했고 심지어는 우리의 생을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인생에서 우리가 체류하는 정거장들은 이들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성한 지식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수 많은 시험과 경험들을 받을지를 알았고, 우리는 이에 따라 준비하였음을 알았다.  우리는--가족이나 친구처럼--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서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도왔다.  우리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각자가 자원해서 이곳에 와, 열심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있다.  나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 이곳에 오기로 결정을 내린 용감한 영임을 알았다.  우리 중에 가장 발전이 더딘 자라도 그곳에서는 강하고 용감하였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스스로 행동할 자유의지를 부여받았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 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우리는 언제고 우리의 생을 변경하거나 방향을 조정할 수가 있다. 나는 이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요구하지 않는 한 우리 생을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전지적(全知的) 지식을 통하여 우리가 우리의 의로운 욕구를 달성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표현하고 그 힘을 행사할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감사하였다.  자유의지는 우리 각자가 커다란 기쁨을 얻는지, 슬픔을 가져다 주는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선택은 우리의 결정을 통해 내려진 우리의 것이다.

     나는 지구가 우리의 원래의 집이 아니므로 우리가 이곳에서 기원되지 않았음을 알고 마음이 놓였다.  나는 지구가 우리를 교육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장소이며, 죄가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 아님을 알고 감사하였다.  영적으로 우리는 빛--또는 지식--의 여러 등급에 속하지만, 우리의 신성하고 영적인 본질 때문에 우리는 선행을 하려는 욕구로 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의 우리들은 항상 우리의 영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있다.  나는 육신이 얼마나 약한가를 알았다.  육체는 일종의 고집쟁이이다.  우리의 영체가 빛과 진리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도, 영체는 육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워야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영체는 강하게 된다.  참으로 발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와 영체 사이의 완전한 조화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이 조화가 그들에게 평화를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능력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의 법칙에 따라 살기를 배우면서, 우리는 우리의 선(善)을 위해 이들 법칙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창조적인 힘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을 배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재능을 주셨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많이 어떤 이에게는 적게.  이 재능을 사용하므로써 우리는 법칙에 따라 사는 방법을 배우고 결국 법칙을 이해하게되며 인생의 한계를 극복한다.  이런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주위 사람을 위해 더 잘 봉사할 수 있다.  우리가 필멸의 육체로 사는 동안에 무엇을 하던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은사나 재능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중에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무엇 보다도 나는 사랑의 지고(至高)함을 보았다.  나는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진정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  우리는 이곳에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왔으며, 서로를 돌보고, 이해해주고, 용서하고, 봉사하기 위해 온 것이다.  우리는 지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그들이 흑인종이던, 황인종이던, 갈색 피부를 가졌던, 잘 생겼던, 못 생겨겼던, 홀쭉하던, 뚱뚱하던, 부자던, 가난하던, 유식하던, 무식하던, 우리는 그들의 외모로 그들을 심판해서는 안된다.  각자의 영혼은 사랑과 영원한 에너지로 채워질 능력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각자가 얼마간의 빛과 지식을 갖고 있고 이것들은 훨씬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헤아려서는 안된다.  단지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아시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한 심판을 내릴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영을 아시지만, 우리는 단지 일시적인 힘과 연약함만을 본다.  우리의 한계성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나는 미소,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 한마디, 작은 희생 등과 같이 우리가 사랑을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어떤 행위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런 행위에 의해 성장한다.  모든 사람이 사랑할만 하지는 않다.  우리가 사랑을 주기 힘든 사람을 발견할 때,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그 무엇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적을 사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분노, 증오, 시기, 잔인, 용서의 거부 등을 버려야 한다고 배웠다. 즉  이런 것들은 영을 파괴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느냐로 평가 받을 것이다.

     창조의 계획을 받고나서, 우리는 기쁨의 노래를 불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우리의 성장을 보고, 우리가 서로 만든 기쁨의 연결고리를 보고 기쁨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가 창조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영의 형제와 자매들이 순서대로 지상의 육체속으로 들어가, 각자 고통과 기쁨을 경험하면서 발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미국의 개척자들이 대륙을 횡단하여 고통을 견디면서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명확하게 보았다.  나는 이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만이 그곳에 보내졌음을 알았다.  나는 천사들이 시련을 이기고 성취한 이들을 보고 기뻐하며, 실패한 이들을 위해 슬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어떤 이들은 자신의 약함으로 실패하고,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약함 때문에 실패하는 것을 보았으며, 악한 개척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어려운 짐을 지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어떤 개척자들과 다른 시대에서 산 사람들은 이런 시련을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보고 나자 나는 인생의 계획의 완전함을 이해하였다.  나는 우리가 모두 지상의 우리의 지위와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였고, 각자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지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그로부터 모든 그의 자녀에게 퍼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우리 주위에 서 있는 천사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면서, 우리의 성취와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지구의 창조자이시며 구세주이시며, 나의 친구, 우리의 가장 절친한 친구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나는 그의 팔에 안김으로서 기쁨으로 녹아들었고 결국 집에 돌아온 안도감을 만끽하였다.  나는 그 사랑으로 채워지도록 --그의 영원한 빛의 팔에 안기도록--혼신을 다해 나를, 나의 모두를 주었다. 


법칙들

 

     나는 아직도 나를 감싸고 있는 빛의 따스함을 느끼면서 주님과 함께 있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또한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는 내가 보는 것을 모두 보았고, 참으로 내가 보고 이해하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빛 가운데 있으면서, 계속해서 질문하였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  우리 사이의 대화는 속도와 폭이 증대되어, 존재에 대한 모든 개념이 다루어졌다.  나의 마음은 다시 지상을 다스리는 법칙에 돌려졌고 그의 지식은 다시 내안으로 부어져 들어왔다.  나는 그분이 느끼는 행복감을 느꼈고, 그가 그 행복감을 나와 함께 나누는 기쁨을 느꼈다. 

     나는 지상을 다스리는 영적 법칙, 물리적 법칙, 우주적 법칙 등 많은 법칙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우리는 이것들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이 법칙들은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창제되었고, 이 법칙들은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법칙들을 알아서 그 긍정적 및 부정적 능력을 사용할 줄 알 때, 우리는 이해력 이상의 능력을 얻게될 것이다.  우리가 이 법칙들의 하나라도 어겨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들이 영적 능력에 의해 창조된 것을 보았다.  창조의 각 입자와 모든 원소들이 그속에 예지를 갖고 있고, 예지는 영과 생명으로 차 있어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각 원소는 자신의 독립적인 기능을 하면서 그에 관련된 법칙들과 능력에 대응한다. 하나님께서 원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대로 반응하면서 순종의 기쁨을 느낀다.  예수님이 지구를 창조한 것은 자연적 능력과 창조의 법을 통해서 이다.

     나는 지상을 다스리는 법칙들에 따라 진실하게 살면, 많은 축복과 동시에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들 법을 어기면, 즉 '죄'를 지으면, 그때까지 우리가 성취한 모든 것을 약화시키고 파괴해 버릴 수도 있음을 알았다.  죄에는 인과응보의 관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르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를 처벌할 벌칙들을 창조한다.  만약 우리가 환경을 오염시킬 때, 이것은 지구에 대한 죄가 되어, 우리가 생명의 법칙을 어긴 자연적 결과로 배상받는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약해지거나 죽게 될 수 있고, 우리의 행위로 다른 사람들을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다.  육체에 대한 죄가 많은데, 이를테면 과식이나 소식, 운동결핍, 약물남용(우리의 신체 조직과 조화를 깨는 어떤 물질을 포함하여), 또는 다른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하는 행위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들 육체의 죄는 어느 것 하나 죄가(罪價)가  가벼운 것이 없다.

     나는 각자의 영에게 자신의 육체에 대한 소유권이 주어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육체를 갖고 사는 동안, 우리의 영은 당면하는 사물에 대해 욕망과 열정을 가져다 줌으로써 우리의 육체를 조정한다.  영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육으로 입증되나, 육과 육의 특성들이 영의 의지에 반해서 영을 침범할 수는 없다--선택을 하는 것은 우리 육체에 내재하고 있는 영이므로,  필멸의 몸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온전해지려면, 마음과 몸과 영의 총체적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영의 온전함을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적 사랑과 의의 조화가 필요하다.

     나의 온 영혼은 이런 진리가 내게 들어오자 기뻐 소리칠 것 같았다.  나는 진리를 이해하였고 예수님은 그가 내게 보여준 모든 것들을 이해함을 알았다.  내 영안은 다시 한번 열려,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안의 모든 원소를 주관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모든 법칙과 에너지와 물질을 관장하는 권능을 갖고 계셨다.  우주안에, 긍정적 에너지와 부정적 에너지가 있는데, 이것들은 창조와 성장에 필수적이다.  이 에너지들은 우리가 의지를 갖고 있드시 예지를 갖고 있다. 이 에너지들은 자발적으로 일하는 하인들이다.  하나님이 두 에너지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능을 갖고 있다.  긍정적 에너지는 우리가 빛, 선(善), 친절, 사랑, 인내, 자선, 희망 등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고, 부정적 에너지는 어둠, 증오, 공포(사탄의 가장 큰 도구), 불친절, 인내심의 결여, 이기심, 절망, 낙담 등과 같은 것들이다.

     긍정적 에너지와 부정적 에너지는 서로 상반된 일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에너지들을 내면화시킬 때, 그들은 우리의 하인(下人)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 에너지는 긍정적인 요소를, 부정적 에너지는 부정적 요소를 끌어드린다.  빛은 빛을 향해 가고, 어둠은 어둠을 사랑한다.  만약 우리가 대체로 긍정적이 되거나 부정적이 되면,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교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 되는 데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는 긍적적인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나는 이런 경우를 보았다.  나는 여러 종류의 에너지들이 각기 다른 사람들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람들의 말이 실제로 어떻게 그 주위의 에너지장(場)에 영향을 주는지를 보았다.  말 자체가--공기중의 진동이--한 종류의 에너지를 또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사람의 욕망도 비슷한 효과를 갖고 있다.  우리의 생각속에는 힘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 따라 우리 주위환경을 창조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이렇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영적으로는 즉시 이루어진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생각의 능력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들을 좀더 가까이서 가꾸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 말의 무서운 힘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속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창조한다.  우리의 한계성과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이 이 영원한 에너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생각들이 창조의 원천이다.  모든 창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생각이 모든 일들의 시작일 수 밖에 없다.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상력을 좋건 나쁘건 간에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잘 개발된 상상력을 가지고 이 지상에 온다.  그중의 어떤 이들은 그 능력을 오용한다.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사용하여 해로운 물건들--파괴적인 물건이나 말을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사용하여 주위 사람들의 복리를 도모한다.  이들은 진정으로 기쁨을 창조하고 축복을 받는다.  마음의 창조에는 말 그대로의 권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은 곧 행위인 것이다.

     나는 인생이 거의 전부 상상속에서 살아지고--아이러니칼 하게도 상상력이 현실의 열쇠가 됨을 알았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상에서 충만하게, 다양하게, 우리의 창조로 기쁨을 누리면서 살도록 보내졌다. 그 창조가 새로운 생각이던, 물건이던, 감정이던, 경험이던 간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창조하기 위해서, 은사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얻기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생의 폭을 넓히고 위대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위에 말한 모든 이해로 나는 다시금 사랑이 가장 고귀함을 이해하였다.  사랑이 지배해야 한다.  사랑은 늘 영을 지배하고, 영은 마음과 육신을 다스리기 위해 강화되어야 한다.  나는 모든 곳에 사랑의 자연법칙이 있음을 알았다.  첫째, 우리는 창조주를 사랑해야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다(비록 우리가 그를 만날 때까지는 이 사실을 모른다 할지라도).  그리고 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임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만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속에서도 그것을 볼 것이고,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부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구세주의 후광 속에, 그의 절대적인 사랑속에 있으면서, 내가 소녀시절에 그를 두려워할 때, 내가 그로부터 내 자신을 멀리 떨어뜨려 놨음을 인식하였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나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가 은하속의 태양과 같음을 알고 있다.  나는 늘 그의 주위를, 가끔은 가까이서 가끔은 멀리서 순회하였을 뿐, 그의 사랑은 결코 시들해진 적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이나 비판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그들이 어떻게 그들로 부터 나를 떼어 놓는지를 이해하였다.  나는 어떻게 내 주위의 권위있는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부정적 에너지에게 먹히게 하던가,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서 믿도록 교육하는지를 알았다.  그들의 목적은 긍정적인 것이었으나, 그들의 행위는 부정적이었다.  그들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공포심을 이용하였다.  그들은 그들 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하였다.  이런 일이 바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다.  나는 두려움이 사랑의 반대이며 사탄의 가장 큰 도구임을 다시금 이해하였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었을 뿐아니라, 나 자신과 다른 사람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나를 보고 웃었다.  그는 존재에 대해 느끼는 나의 흥분과 함께, 배움에 대한 기쁨을 흐뭇해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실재함을 알고 있다.  더 이상 우주적인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힘 뒤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주를 창조하고, 그안에 모든 진리를 마련한 사랑의 존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 지식을 지배하고 그 능력을 조절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자가 되기를 원하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상상력, 창조의 능력, 자유의지, 예지, 그리고 무엇 보다도 사랑의 힘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주셨음을 순수한 지식으로  이해하였다. 나는 그가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힘을 끌어들이기를 원하며,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음을 믿음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치유와 죽음

 

     구세주 앞에서의 이같은 이해의 흐름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진리의 각 요소에서 다음 요소로 자연적으로 진행되어 나아갔다.  우주에 하나님의 권능하에 있는, 두 가지 커다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배운 후에, 나는 이 두가지 힘이 실제로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영과 마음이 육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나는 우리가 문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우리 몸안에 있는 영이 능력을 갖고 있어서, 몸에 병이 나지 않도록 힘을 쓸 수  있고, 만약 병이 나더라도 치유할 수 있음을 알았다.  영은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마음은 몸을 조절한다.  이 원리가 생각날 때면, 나는 종종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잠언 23:7)는 경전 구절이 떠 오른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 주위의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생각이 부정적인 것을 끌어오게될 때, 그 결과는 몸의 치유력을 약화시킨다.  이같은 일은 우리의 부정적 생각이 우리 자신의 중심을 채울 때 잘 일어난다.  나는 우리가 실의에 차 있을 때 가장 자기중심적이 됨을 알았다.  오랫 동안 실의에 빠져있는 것처럼 우리의 자연적 힘과 건강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사람의 필요사항에 관심을 갖게되고 그들을 도우려할 때, 우리는 치유되기 시작한다.  봉사는 영과 육에 유향이다.

     모든 치유는 안에서부터 일어난다.  우리의 영이 우리의 육체를 치유한다.  의사의 손이 수술을 하고, 약이 건강하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지만, 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하는 하는 것은 영이다.  영이 없는 몸은  치유될 수 없고, 더 이상 살 수도 없다. 나는 우리 몸의 세포들이 생명을 무한히 유지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음을 보았다. 세포들은 처음에 스스로를 재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손상을 입은 세포들을 교체해서 생명을 영속시킬 수 있도록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이것을 변경시켰다.  나는 그 과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에덴 동산에 있을 때 죽음이 인간에게 들어 온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몸은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안에 힘이 있어 믿음과 긍정적 에너지를 사용하여 우리의 세포들을 변경시키면, 우리는 치유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에 항상 치유력을 포함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나는 내 생의 많은 병고가 실의와 사랑 받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흔히 "아, 나의 병과 고통,"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어," "나의 고난들을 봐," "난 이런 걸 견뎌낼 수 없어," 등과 같이 늘 부정적인 "자신과의 대화"를 해왔음을 알았다.  갑자기 나는 이런 말 속에서 나를, 나를, 나를 보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자아중심적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런 부정적 태도를 나의 것이라고 말할 뿐아니라, 문을 열어 내 것으로 삼아왔음을 알았다.  당시의 나의 몸은 일종의 자기완성적 예언을 성취하며 살았다. "슬프도다."라는 말은 내 몸속에서 "나는 아파."로 번역되었다.  나는 전엔 이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으나, 이제 나는 내가 이런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긍정적인 자기와의 대화가 치유 과정의 시작임을 알았다.  일단 우리가 병이나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되면, 우리는 그 치유법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해야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병에 대한 생각을 쫓아버리고, 그 치료법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 치료법을 말하고 우리의 말이 우리의 생각의 힘에 보강되도록 해야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 주위의 예지속에 기쁨의 흥분이 창조되고 예지는 작동을 시작하여 우리를 치료한다.  나는 기도가 이같은 말을 하는 방법의 하나임을 알았다.  만약 우리가 치유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하나님은 치유 과정에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우리는 병고나 문제의 존재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지배하는 힘을 거부하려한다.  우리는 신앙을 갖고 살지 시각으로 살지 않는다.  시각은 인식적, 분석적 심성을 내포한다.  신앙은 영의 지배를 받는다.  영은 감정적이고, 수용적이며, 내면화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특성과 마찬가지로 신앙을 갖는 방법은 바로 신앙의 사용을 반복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의 사용방법을 배우면, 우리는 그것들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법칙이다.

     신앙을 발전시키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우리의 씨가 길가에 떨어지더라도, 우리는 다소의 추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으로 부터 나온 행위는 우리를 축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익숙하게되면 될수록(우리가 연습하면 더 익숙해 질수 있다), 우리 신앙의 수확은 더 커질 것이다.  모든 것은 각기 종류대로 씨를 맺는다.  이것 역시 영적인 법칙이다.

     이제 나는 우리 몸을 지배하는 영의 힘에 대해서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영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수준이상의 기능을 수행함을 배웠다.  나는 내 마음이 나의 생각을 만들고, 내 몸이 나의 생각을 실행하며, 영이 나에게 신비의 존재임을 알았다.  이제 나는 영이 모든 사람에게도 신비의 존재임을 알았다.   나는 일반적으로 영이 우리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을 수행함을 알았다.  영은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그로부터 지식과 통찰력을 받는 수용수단이 된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된 것은 중요하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몸속의 형광등 같음을 알았다.  빛이 발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중심은 빛과 사랑으로 채워져, 우리 몸에 생명과 힘을 주는 에너지가 된다. 나는 또한 빛이 소멸되면, 사랑이 없어지고, 폭력적이 되고, 성의 남용이나 다른 파괴적인 경험과 같은 부정적 경험을 통해서 영이 약화됨을 알았다.  영이 약화되면, 이런 경험들 때문에 몸도 약하게  된다.  혹 몸은 아프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영이 다시 강건해질 때까지 병에 잘 걸릴 수 있는 몸으로 변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며, 긍정적인 생각을 통하여 긍정적 에너지를 우리 몸에 받아드림으로써 우리의 영은 강건해질 수 있다.   우리는 영을 조절할 수 있다.  에너지의 원천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조율을 잘 맞추어야한다.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영의 좋은 영향을 맛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놀랍게도 나는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 병을 불러들여 고통을 받고, 어떤 경우에는 그 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것을 보았다.  가끔 병은 당장 치유되지 않는다.  또는 우리의 성장의 필요 때문에 전혀 치유되지 않기도 한다. 모든 경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종종 부정적인 경험도 우리의 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영이 우리의 질병과 사고를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받아들이듯이, 즐겁게 받아들였고 받고 싶어했다. 나는 영의 세계에서 우리 지상의 시간적 개념이 의미가 없음을 이해하였다.  우리가 지상에서 겪는 고난은 영의 세계에서 느끼는 일순간에 지나지 않으므로 기꺼이 견딜 수 있다.  우리의 죽음 역시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어떤 사람이 암으로 사망했다하자. 그는 오랜 고통후의 죽음이 그에게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성장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어머니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죽음이 가까워 가면서 가족들에 대해 그전에 볼 수 없었던 각별한 관계를 가졌음을 알고 있다.  인간관계가 개선되고 나쁜 관계는 청산되었다.  어머니는 이 죽음으로 좀 더 성숙해졌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건너다가 술주정뱅이 운전자에 치어 죽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끔찍스런 사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순수한 지식안에서 보면 그는 그 운전자가 받을 더 커다란 슬픔을 구제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야함을 그의 영은 알았던 것이다.  운전자는 일주후에 다시 술이 취해 여러명의 십대아이를 한꺼번에 치어, 불구가 되게 하거나, 고통과 슬픔을 더 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지상에서의 목적을 마친 한사람을 치고 감옥에 들어감으로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한 것이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불필요한 고통이 이 청소년들에게 부여되지 않았고, 운전자에게는 이 경험으로 발전을 하게된 것이다.

     지상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사고가 일어난다.  특히 우리에게 영원한 영향을 주는 사고는 말이다.  하나님의 손길과 우리가 지상에 오기전에 선택한 길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주고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수 많은 경험들을 일어나게 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경험들의 유익성을 계산하려는 것은 어렵지만, 모두 어떤 목적을 위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혼, 갑작스런 해고,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과 같은 경험까지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지식을 주고 영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이 고통스러울찌라도, 우리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 지상의 경륜을 펴실 때 말씀했드시, "...실족케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태 18:7). 

     구세주의 인도로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 유익이 됨을 알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인생에서의 목적과 여정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내게 있었던 부정적인 일들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 용납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적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이로 인해 그들이 나에게 준 나쁜 영향을 관용할 수 있었다.  나는 선한 생각과 친절한 말을 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치유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나는 우선 영적으로, 다음은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내 자신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절망의 부식(腐蝕) 효과를 없앨 수 있음과, 충만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나의 죄와 두려움의 순환(循環)과 같은 사탄의 가장 큰 도구에 항복하고 있는 악마를 보았다.  나는 내가 과거를 지나간 것으로 간과해 버릴 수 있어야함을 이해하였다.  만약 내가 율법을 어기거나 죄를 지었다면, 나는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내 자신을 용서하며, 앞을 향해 전진해야할 필요가 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했다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의 영혼을 상하게 했다면, 나는 하나님께 접근해서 그의 사랑, 곧 그의 치유의 사랑을 느껴야할 필요가 있다.  회개는 우리가 하려고만 한다면 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우리가 넘어질 때, 우리는 일어나서 먼지를 털고 다시 움직여 나아가야 한다.  만약 다시 넘어지면, 아니 수 백만번을 넘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해야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우리는 성장한다.  영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이곳에서 보는 것과 같은 죄는 볼 수 없다.  모든 경험들은 긍정적인 것이다. 모두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자살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살은 우리가 이 지상에 있는 동안 발전할 기회를 빼앗아 갈 뿐이다.  그후에, 이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엄청난 고통과 슬픔만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각자의 영혼의 심판자이시고 각 영혼의 시련은 엄정한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작은 긍정적인 행동을 한 가지라도 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라. 그리하면 당신은 이전에 잃어버린 희망의 빛이 미세하게 비쳐옴을 보게될 것이다.  절망은 결코 필요 없는 것이므로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혹독하게 심판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자로 나를 재거나 그들의 판단에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한번에 한 발자국씩만 옮겨놓으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용서하며 우리를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들에 대해 감사해야한다.  우리가 겪는 커다란 시련들이 어느날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될 것이다.

     나는 모든 창조가 생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죄, 범죄, 절망, 희망, 그리고 사람의 창조도 우리의 생각안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모든 치유가 안에서 나온다. 모든 비참함도 안에서 나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절망의 순환을 창조할 수 있고, 또는 행복과 성취의 트램폴린(역주: 둥근 스프링 안에 천을 고정하여 만든 뜀틀)을 창조할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안에 들어 있는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배우려고, 주위를 기어다니는 아기와 같다.  그것들은 권능이 있는 힘이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다.  우리가 자라 우리 주위의 모든 긍정적인 것을 찾을 때, 이들 법칙들이 보여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도록 준비된 모든 것들을 받게될 것이다.


베틀과 도서관

 

     나는 이런 교육을 받음으로써 앞으로 믿고 따를 구세주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되고 그와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나의 느낌에 대한 그의 관심은 고무적이어서,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알았으므로, 내가 찾던 모든 지식을 흡수하도록 나를 조심스레 준비시켜주었다.  영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을 강요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해서 불편하게 만들는 일이 없다.  그곳에서 인내심은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나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만큼 유쾌하고 재치있는 주님의 유모감각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한 행복과 호의로 가득찬 분으로, 그의 존재안에는 조용함과 우아함이 있었다.  그가 하나의 완전한 인간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그와, 그의 영과, 그의 감정과, 나에 대한 그의 관심을 알았다. 나는 그와 나와의 혈연감을 느꼈고, 우리가 한 가족임을 알았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나의 큰 오빠였으며, 그는 나에게 아주 가까운 분이었지만 동시에 권위가 있는 분이었다. 그는 부드럽고 친절하였고 또한 신뢰가는 분이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권위를 결코 남용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음을 확신하였다.   

     아직 빛에 싸인 채 예수님은 날 보며 미소짓고 있었고, 나는 그가 날 알아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몸을 왼쪽으로 돌리며 막 들어선 두명의 여인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그뒤에 세번째 여인이 곧 나타났으나 그녀는 심부름 때문에 잠깐 들렸을 뿐이었다.  예수님은 두여인에게 나를 안내하도록 지시했고 나는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음을 행복하게 여김을 느꼈다.  그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의 친구였다!  그들은 내가 지상에 오기전에 아주 절친한 친구였고 이렇게 다시 만난 것에 대해 모두 흥분하였다.  예수님이 나를 그들과 함께 남겨두고 떠날 때, 나는 다시 그의 친절함을 느꼈고, 그는 나의 영혼에게 "가서 배워"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보고 경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웠는데도 아직 더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에 흥분되었다.  구세주는 우리를 떠났고, 내 두 친구는 나를 포옹하였다.  사랑이 우리를 감쌌고 모두가 사랑을 소유하였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이들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는 빛과 능력에 있어 차이가 크긴했지만, 이들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온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 여행에 대한 기억의 일부는 내게서 회수되어 갔다.  나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커다란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그 건물이 외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방은 아름다웠고 벽은 아주 얇은 대리석 같은 물질로 되어있는데, 이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또한 밖을 내다볼 수도 있었다.  그 광경은 아주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나는 그들이 커다란 고색이 도는 베틀로 무얼 짜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영의 세계에 "이렇게 구식(舊式)인" 수동식 베틀이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베틀 곁에는 많은 남녀 영들이 둘러서 있었는데 모두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하였다.  그들은 나를 본 것을 기뻐하였고 내가 베틀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솜씨를 잘 보기를 열망하였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이 짜고 있는 천조각을 만져보았다.  그 모양은 유리섬유와 솜사탕의 혼합물 같아 보였다.  내가 그 천을 앞뒤로 매만지자, 그것은 살아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 광경은 놀라웠다.  그 천은 안쪽에서 보면 투명한데, 뒤집어보면 불투명해보였다.  양면거울처럼 한쪽으로는 투명하고 다른쪽으로는 그렇지 않음에 어떤 목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듣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 천으로 지상에서 영의 세계로 들어오는 이들을 위한 옷을 짠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그들의 일과 내가 그것을 볼 수 있음에 대한 감사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베틀이 있는 방을 떠나 많은 다른 방으로 들어가 놀랄만한 물건들과 훌륭한 사람들을 보았는데, 나는 이들에 대해 상세히 기억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날을 여행하였으나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에 도움이 될만한 장치들을 만들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 같이 생긴 커다란 기계를 보았는데 아주 정교하고 성능이 좋아 보였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내가 그들의 일을 보는 것을 기뻐하였다.  나는 모든 중요한 것들이 먼저 영적으로 창조되고, 나중에 물질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나는 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도서관 같은 다른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내가 그곳이 지식의 저장소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책은 한권도 볼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나의 마음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내가 별로 생각도 해보지 않았거나 전혀 지식이 없는 주제에 관한 지식이 나를 채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곳이 마음의 도서관임을 알았다.   내가 좀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처럼,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생각만 하고 있어도 이에 대한 모든 지식이 내게 들어왔다.  나는 역사 뿐아니라, 영의 세계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도 소상히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지식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지식에 관한 모든 생각, 모든 설명, 모든 입자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여기서는 잘못 이해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는 순수했고 이해는 완전했다.  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했으며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였다.  나는 어떤 각도에서건 어떤 지각력에서건 그 주제에 관한 실체를 이해했으며, 이 모든 생각이 지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람이나 원리에 대해서도 한가지로 주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적인 과정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행할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고통이나 기쁨이나 희열을 이해하였다.  이런 지식의 기억은 내게서 상당히 회수되어졌지만, 모두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중요시하는 역사의 사건과 인물에 관해 내게 부여된 지식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이 훌륭하고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의 경험을 더 얻기 원했고, 이에 대해 나의 안내자들은 기꺼히 나를 계속 도와주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기쁨이었고, 그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나를 한 정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정     원

 

     우리는 정원으로 나갔고, 나는 멀리 산과 장엄한 계곡과 강을 보았다.  안내자들은 나를 남겨두어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 혼자 정원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도록 허락하였다.  정원은 많은 나무와 꽃과 식물들이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그것들이 있어야 되는지를 의미하는 것처럼 정확한 위치에 꽉차있었다.  나는 잠시동안 잔디위를 걸었다.  그것은 뽀송뽀송하고, 차디찼으며, 빛나는 녹색을 띄었고, 내 발밑에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정원에서 무엇보다도 나에게 놀라웠던 것은 바로 강렬한 색깔이었다.  이 세상에는 이런 건 없다.

     이 세상에서는 빛이 물체에 닿으면, 그 물체로부터 특정한 색깔을 반사시키는데, 이 때 수천의 색조가 가능하다.  영의 세계에서의 빛은 어느 것도 반사시키지 않는다.  빛은 안에서 나와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가 되고, 수 백만 수천만의 색조를 발산시킨다.

     예를 들자면, 꽃들은 아주 생생하고, 빛을 발하였고, 고체가 아닌 것 같은 질감을 띄었다.  각 식물의 강력한 후광 때문에, 그 식물의 표면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이 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식물의 각 부분, 현미경적인 부분은 그 자신의 예지로 되어있음이 명백하다.  이것은 내가 그 빛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말이다.  모든 미세한 부분은 자신의 생명으로 차있고, 다른 원소들과 함께 재 조직되어 존재하는 어느 것이라도 창조할 수 있다. 꽃속에 있는 같은 원소가 나중에 다른 것들의 부분이 될 수 있고, 바로 살아있는 것처럼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와 같은 영은 갖고 있지 않지만, 예지와 조직을 갖고 있어 하나님의 의지와 다른 우주법칙에 반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그곳의 창조를 보듯 명백하며 특히 꽃안에서 명백하다.

     한 아름다운 강이 정원의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즉시 그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나는 강물이 가장 순수한 물로된 커다란 폭포로 부터 유입되고, 강은 그곳에서 연못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물은 자체의 투명함과 생명으로 눈이 부셨다.

     생명.  그것은 물속에도 있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하나도 그 자체의 예지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장엄한 아름다움의 멜로디가 폭포에서 울려나와 정원을 채웠고 결국 내가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다른 멜로디들과 뒤섞였다.  그 음악은 물 자체에서, 물의 예지에서 나왔고, 각각의 물방울들은 자신의 음과 멜로디를 내어 주위의 다른 모든 소리와 섞여 화음을 이루었다.  물은 자신의 생명과 즐거움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전반적인 음향은 지상의 어느 교향악단이나 작곡가의 능력 이상이었다.   지상의 음악은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어린애가 치는 양철북 소리와 비교될 정도일뿐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저절로 작곡되는 음악의 폭과 힘을 이해할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물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것들은 아마도 성경에 기록된 살아있는 물을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에 가까이 갔을 때, 나는 다른 꽃들 속에 피어 유별나게 보이는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 아름다움은 숨이막힐 정도였다.  그곳에 있는 모든 꽃가운데 이 꽃처럼 나를 사로 잡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산들산들 움직이면서 나즈막한 음악소리를 내며 자신의 달콤한 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나는 장미가 실제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내 눈 앞에서 자랄 때, 나의 영혼은 감동되었고 나는 그 생명을 만나보고 그 영을 느껴보길 원했다.  내 시각은 현미경 같이 되어 꽃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각적인 경험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내가 실제로 그 꽃 안에 있으면서 꽃의 한 부분이 되어 있기나 한 것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장미의 존재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마치 꽃이 된 것 같은 경험이었다.  나는 장미가 모든 꽃의 음악에 마춰 한들대고 있고, 장미 자신이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 음악은 그 옆의 다른 장미와 완벽한 화음을 이루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내 꽃의 음악이 꽃잎에서 꽃잎의 음악이 나오듯 꽃의 각각의 부분에서 나오고, 그 꽃잎에 내재된 예지가 그의 온전한 음에 더해져 전체적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기쁨이었음을 이해하였다.  나의 기쁨은 다시 완전하게 충만하였다.  나는 식물안에서, 내 안에서 하나님을 느꼈으며, 우리에게 부어지는 사랑을 느꼈다.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나는 내 자신이 되어버린 장미를 결코 잊지 못한다.  이 경험이 영의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기쁨의 작은 조각일 뿐이지만, 내겐 너무 커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축   하   연

 

     정원으로 한 무리의 영들이 들어왔다.  이 영들은 특별한 위치와 특별한 행사가 있음을 뜻하는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둘러쌌고, 나를 위해 일종의 졸업축하모임을 위해 그곳에 왔음을 알았다.  나는 죽었다(그들의 말로는 졸업했다). 그래서 나에게 인사하러 그곳에 온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그들이 난생 처음 무지무지하게 맛있는 걸 즐겁게 먹고 있는  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기나 한 것처럼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들을 전생부터 알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달려가 그들을 하나하나 껴안고 키스하였다.  나의 관리천사도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도 키스하였다.

     내가 그들의 영을 느끼면서 그들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그곳에 있음을 알았다.  나의 안내역할을 해온 호위자는 나에게 나는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으며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졸업식이 아니지만, 내가 나중에 수명을 마치고 다시 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나를 만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나를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내가 이생으로 되돌아 가야함을 알고 있었다.  그때 그들은 내게 죽음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는 다른 상태로의 전이(轉移)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안내자가 말했다.   우리의 영은 몸에서 빠져나와 영의 세계로 옮겨 온다.  우리의 죽음이 외상에 의한 것이라면, 영은 재빨리 몸을 떠나고 가끔은 죽기 전에도 떠난다.  만약 한 사람이 사고나 불로 죽게되면, 육체가 고통을 느끼기 전에 영이 그들의 몸을 떠난다.  몸은 아직 살아있으나, 영은 몸을 떠나버려 평화로운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면, 우리의 몸이 땅에 묻칠 때까지 지상에 남아 있던지, 나처럼 우리의 영이 자랄 수 있는 곳으로 옮아갈 선택권이 주어진다.  나는 발전에 수 많은 수준이 있으며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장 편안한 수준으로 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영들은 잠시동안 지상에 머물면서 그들이 사랑하던 이들을 위로하는 것을 선택한다.  가족들은 떠나버린 사람보다 더 많은 슬픔에 접하게 된다.  가끔 영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절망에 싸여 있으면 지상에 더 오랫동안  머물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영이 치유되기를 도우면서 남아있게 된다.

     나는 또한 우리의 기도가 영과 지상의 사람에게 똑같이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만약 죽은 사람의 영을 위해 걱정할 것이 있던지, 죽음으로의 전이가 곤란을 초래하거나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둘다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영적인 도움을 부탁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육체로 있는 동안에 영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지상에서 더 많은 지식을 얻을수록, 영의 세계에서의 우리의 발전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어떤 영들은 지식이나 신앙이 없기 때문에, 지구(라는 감옥)의 수감자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무신론자로 죽거나, 탐욕 또는 육욕으로 인하여 세상에 얽매어 왔거나, 다른 지상의 약속들이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면, 그들은 지상에 매이게된다.  그들은 흔히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과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신을 향하여 우리를 끌어올리는 에너지와 빛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영들은 그들이 그들을 에워싼 더 큰 힘을 받아들여 세상을 떠나는 방법을 배울 때까지 지상에 머무른다.  내가 빛을 향해 나아가기 전 암흑속에 있었을 때, 나는 이런 서성거리는 영들의 존재를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과 온정 속에 더 오랫동안 거하기를 바라지만, 차츰 하나님의 더 큰 온정과 평안을 받기 위해서 떠날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모든 지식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없다.  나는 예수님이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통과해야할 문이라고 들었다.  그는 우리가 통과할 유일한 문이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지상에서 배우거나 영에서 배우거나 간에, 우리는 결국 그를 영접해야 하고 그의 사랑에 항복하고 말게 된다.

     정원에 있던 나의 친구들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사랑이 충만해졌고, 내가 아직 지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으며, 더 많은 것들을 보기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도 나를 즐겁게 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수 많은 세계들

 

     내가 전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기억의 창이 열리자, 내 기억은 지구의 창조 이전의 영원한 과거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세계와, 은하계와 공간의 창조자임을 기억했고, 나는 그것들을 보기 원했다.  이런 욕구가 생겨나자, 나의 생각이 내게 힘을 주었고, 나는 정원에서 들어올려 두명의 빛과 같은 존재가 나의 안내자가 되어 나를 인도했다.  우리의 영체는 내 친구들을 떠나 암흑의 공간속으로 떠 올랐다.

     우리의 비행속도가 상승하면서, 나는 속도의 쾌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던지 할 수 있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갈수 있으며, 빠르게, 믿을 수 없을만큼 빠르게도 또 느리게도 갈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자유를 만끽하였다.  나는 거대한 공간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이 비어있지 않고, 사랑과 빛--만질 수 있는 실체인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차있음을 알았다. 나는 부드럽고 유쾌한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나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음악소리와 비슷했으나, 우주적이고 나를 에워싼 공간을 꽉채울 것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또 다른 박자의 멜로디가 들렸는데 그 웅장하고 우주적인 음악은 나를 부드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음은 부드러운 비브라토였고 나를 감동시켰으며 그 안에 치유의 능력이 들어있음을 알았다.  나는 이같은 소리에 감동된 어떤 것들도 치유의 효과를 받게 됨을 알았다.  그 소리는 상한 심령을 낫게 해주는 영적인 구원이요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안내자로부터 모든 음악이 치유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우리안에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배웠다.  나는 이제야 내가 지상에 있는 동안 사탄이 이 부정적인 음악을 사용하여 내 마음과 몸에 병을 일으켰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의 상당부분은 내 기억에서 지워졌으나, 많은 인상은 남아있다.  나는 하나님의 많은 창조물을 보면서 몇주, 혹은 몇달동안 지낸 것 같았다.  내가 여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위안을 주어왔음을 느꼈다.  나는 내 본향에 돌아와서 아주 자연적인 행위들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지구와 비슷하지만 더욱 영광스럽고 사랑과 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찬 수 많은 다른 세상을 여행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광활한 공간을 주신 것이다.  나는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멀리 떨어진 별들도 여행하였다.  나는 은하계들을 보았고 평안하고 즉각적인 속도로 여행하면서 수 많은 세계를 방문하였고 그곳의 하나님의 자녀들, 우리의 영의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 전에 와 본 적이 있었음을 알았다.

     한참후, 내가 나의 육신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런 경험들에 대해 기억할 수 없게 되자 속임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망각이 나에게 유익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내가 본 영광스럽고 완전한 세상을 기억한다면, 나는 당혹스러운 삶을 살게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임무를 망각하게 될 것이다.  내 속임당한 느낌은 경험에 대한 경이와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시지 않았어야하고, 이에 대한 어느 것도 기억하지 않도록 해야했을 것이다.  허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운 마음에서 내게 많은 것을 주셨다.  즉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을 내게 볼 수 있도록 하셨고, 나는 그곳에도 사랑이 존재함을 알게 된 것이다.


몸을 선택함

 

     나는 정원으로 돌아와 나의 안내자들을 만났다. 나는 내가 방문한 세계의 사람들이 발전하여 더욱 더 하나님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지상에 있는 우리들은 발전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어떻게 성장하고 있나?

     나의 안내자는 내 질문에 기뻐하면서, 나를 많은 영들이 지상의 생명을 얻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장소로 데려갔다. 그 영들은 성숙한 영이었다--나는 내  모든 경험을 하는 기간동안 아이들 영은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영들이 지상에 오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를 보았다.  그들은 지상에서 생명을 부여받는 것을 그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성품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모두 이곳에 오길 갈망했었고 실제로 우리가 일생동안 떼어버릴 수 없는 많은 약점이나 어려운 환경을 선택함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들었다.  또한 나는 가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약점이 주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의지에 따라서 은사와 재능을 주신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재능이나 약함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각자가 필요한 것들을 갖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영의 약함이나 은사가 사람마다 같으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마치 창문이 열리듯 내 앞과 밑에 펼쳐진 세계가 열리면서 나는 지구를 보았다.  나는 물질적 세계와 영적 세계를 동시에 보았다.  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의로운 영의 자녀들의 일부는 이 지구에 오지 않기로 선택했음을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의 상태로 머물면서 지상에 온 사람들을 위한 수호천사로서 일하기를 선택하였다.  나는 또한 "전투천사"(戰鬪天使)라고 부르는 또 다른 형태의 천사가 있다고 배웠다.  이들의 목적은 우리를 위해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에게 우리를 돕는 수호천사가 있다하더라도, 전투천사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설 때가 있다. 나는 우리가 기도를 하면 이들이 나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들의 몸이 거대하고 근육이 발달했으며 얼굴도 잘 생긴 것을 보았다.  그들은 대단한 영들이다.  나는 그들을 보기만 하고도 그들을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실제로 머리에 투구를 쓴 전사들 처럼 차리고 있으며, 다른 천사들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다른 무엇 보다도 구별되는 것은 확신에 차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  어느 악령도 그들을 겁주지 못하며 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이 어떤 임무를 띠고 돌진하면(무슨 임무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그일에 대한 임전태세에 감동 받았고, 그들은 그들의 임무의 중요성을 알아서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음을 알게되었다.

     사탄은 우리를 소유하기를 갈망하고, 그래서 그의 군대를 조직해 우리들중 하나를 공격하게 되면 그 사람은 특별한 보호를 받을 필요를 느끼게 된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항상 보호된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의 용모를 읽을 줄 알므로, 이로 우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후광이나 용태는 우리의 영의 느낌이나 감정을 밖으로 내어보이게 한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알고, 천사도 이것들을 알며, 사탄도 이것들을 안다.  지상의 특별히 예민한 사람들도 이것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고 예수님의 빛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도록 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를 통해 빛이 날 것이며 그 빛은 우리의 용모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내가 이것을 이해하게 되자, 나는 아직 지상에 오지 않았던 영들을 보았고 이들중 몇몇은 육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 위를 떠도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한 남자영이 그의 부모가 될 남자와 여자를 찾아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 영은 큐피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 일을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 남녀는 의견이 맞지 않았고 부지부식간에 서로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남자영은 그들이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말을 하고 코치해주었다.  다른 영들은 이 어려움을 알고 걱정하면서, 둘이 맺어지게 하기 위해 그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을 했다.

     나는 우리가 영의 세계에서  특별한 영의 형제자매로 함께 살았으며,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고 배웠다.  안내자는 우리가 이들 영과 가족이나 친구가 되어 지상에 오기로 성약을 맺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영적 유대는 영원히 함께하면서 서로를 위해 발전시킨 사랑의 결과였다.  우리는 또한 함께 할 일이 있어서 특정한 다른 사람과 함께 지상에 오기를 선택하였다.  우리중 몇몇은 하나가 되어 지상의 어떤 일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기 원하였고, 이런 일은 선택한 부모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빚어지는 상황에 따라 아주 잘 수행될 것이었다.  일부는 이미 놓여진 진로를 강건하게 해서, 뒤따르는 이들을 위한 길을 다지는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이생에서 서로 미칠 영향과 우리가 우리의 가족으로부터 받게될 신체적, 행동적 특성에 대해 이해하였다.  우리는 육체를 만들 유전인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갖게될 특정한 신체적 특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특징들을 원했고 필요로 했다.

     나는 기억이 우리의 새로운 몸속 세포안에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나에게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나는 우리 생애에서의 모든 생각과 경험들이 우리의 잠재의식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사실들은 또한 우리 세포속에도 기록되어, 각각의 세포가 유전암호뿐 아니라 우리가 평생 경험한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이 기억들은 유전암호를 통하여 자식들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이들 기억들은 예를 들어 남보다 더 낭비하는 성질, 무서움을 타는 성질, 힘이 센 것등, 가계를 따라 전해 내려지는 특정한 성질의 원인이 된다. 나는 또한 우리가 지상에서 삶을 반복해서 살지 않는 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가 전생의 일을 기억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 우리는 사실 세포속에 들어있는 기억들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복잡한 신체적 조건으로 해서 빚어질 어려움을 이해하였고, 우리가 이런 상황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수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일생의 임무수행에 필요한 영적 특성이 주어졌으며, 그중 많은 것들은 우리의 필요 때문에 특별하게 마련된 것이다.  우리 부모는 그들 자신의 영적 특성을 갖고 있고, 그중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유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이런 능력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았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다른 특성들을 획득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영적인 도구들을 간직하면서, 이 능력들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계속 배울 수도 있고 또는 이것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나이가 몇살이든 우리는 옛 또는 새로운 상황속에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영적 특성을 얻으려 계속해 노력할 수 있다.  선택의 자유는 항상 있다.  나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사용법을 모르고 있을지라도, 항상 우리 자신을 돕는 데 적합한 특성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믿어야 하고, 올바른 영적 도구는 우리를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다.

     영들이 부모가 될 젊은이들을 짝지워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본 후에, 나의 관심은 지상에 오기 위해 준비하는 다른 영들에게로 쏠렸다.  기막히게 똑똑하고 힘있는 한 영이 방금 그의 모태에 들어갔다.  그는 정신박약아로 이 세상에 오는 것을 택한 영이었다.  그는 이 기회에 대해 아주 기뻐했고 그와 그의 부모가 이룩할 발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들 세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미 오래전에 이같은 관계를 계획하였었다.  그는 그의 몸을 구상(構想)할 때에 필멸의 생을 살기로 선택하였고, 나는 그의 영이 모태로 들어가 새로 형성된 생명에 주입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육신의 부모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느끼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영들이 어머니가 임신하고 있는 어느 시기에 모태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즉시 육신을 갖는 경험을 시작한다.  낙태는 자연적인 것과는 반대된다고 들었다. 몸속에 들어온 영은 거부와 슬픔의 느낌을 느낀다.   몸이 혼외(婚外)임신으로 태어나던, 장애자던, 몇 시간 밖에 살지 못할 만큼 허약하던 간에, 영은 그 몸이 자기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은, 어머니가 갖고 있는 지식의 바탕위에 내려진 결정임을 알고는, 자기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나는 지상에 순간만 있다가 갈 영, 몇 시간만 있다가 갈 영, 몇일만 있다 갈 영들을 보았다.  그들도 그들이 성취할 목적이 있음을 알고 다른 영들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출생전에 예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 영들은 육신을 갖고 오래 살아야만 발전하는 영은 아니었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부모가 성장하는 것을 돕기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곳에서 느낀 슬픔은 크지만 짧다.  우리가 다시 결합한 후에, 모든 고통은 씻어져버리고,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얻은 경험으로 부터 느낀 기쁨만이 남게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계획과 결정이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 수립되어지는 것에 놀랐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기를 바랬다.  모든 것은 영의 성장을 위해 이루어지고, 모든 경험, 은사, 약함등이 성장을 위해서 계획되었다.  지상에서의 일들이 그곳에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영안을 통해서 보여진다.

     우리 각자가 지상의 교육을 마칠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어떤 영들은 태어나기 위해서 오고, 어떤 영은 다른 영들에게 경험을 주기 위해 왔다가 재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  어떤 영은 그들의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장수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의 기회를 줌으로써 그들에게 유익을 준다.  어떤 영은 우리의 지도자 또는 추종자로, 군인으로, 부자 또는 가난뱅이로 오는데, 이들이 오는 목적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울 상황과 인간관계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진로에 끼어든 모든 이들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까지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계명대로 사는지를 보여주는 시험을 치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하나의 지고한 목적하에 하나가 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생의 영에 대한 장면이 닫히기 전에, 나는 다른 한 영에 관심이 끌렸다.  그녀는 내가 생전 본적이 없는 가장 매혹적이고 사랑스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힘있고 즐거웠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발산해 나눠주었다.  그녀를 쳐다보면서, 나는 우리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느꼈고,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감정을 느꼈다.  이 때의 내 기억은 거의 차단되었지만, 그녀가 어디를 가던지, 그녀는 다른 사람의 특별한 천사가 되려 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생의 존재에 대해 구경하는 동안, 나는 각각의 영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내가 이전에 그곳에 있었고, 우리 각자가 모두 빛과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있었음을 알았다.  이때 내게 우리 모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전생을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예지와 영광에 놀랄 것입니다.  출생은 하나의 잠이고 망각입니다."


술취한 남자

 

     지상에 오는 것은 마치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나 교과목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람에 따라 영의 발전 수준이 천차만별하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수준에 가장 맞는 정류장에 오게된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단점을 비판하는 순간에 우리도 역시 비슷한 단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다.  우리는 지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심판할만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원리를 내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양, 하늘이 다시 감겨 올라가자, 다시 지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나의 눈에 큰 도시 거리 한 모퉁이가 들어왔다.  그곳에 어느 건물 가까이 있는 보도위에 술이 취해 몽롱한 상태로 누워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안내자는, "무엇이 보이시죠?"하고 물었다.

     "술독에서 빠져 나와 딩굴고 있는 부랑자 한명이 보이는데요. 왜요?" 나는 왜 이것을 보여주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렇게 물었다.

     나의 안내자는 신이 난듯이, 내게 말했다. "자 우리는 당신에게 저 사람이 진짜 누구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의 영이 완연하게 보여졌고, 나는 그가 빛으로 충만한 위대한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사랑이 발산하였고, 나는 그가 하늘나라에서 굉장히 존경을 받았던 영임을 알게 되었다.  이 위대한 분은 그가 영적으로 친했던 친구 한명을 돕는 교사로서 이 지상에 온 것이었다.

     그의 친구는 이 모퉁이에서 몇 구역 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낸 유능한 변호사였다.  술주정뱅이는 그의 친구와의 약속에 대해서 전혀 기억 못하지만, 그의 목적은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변호사가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었지만, 이 술주정뱅이를 봄으로 인해서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일을 하도록 불을 붙여주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서로 매일 만나게 되는데, 이때마다 변호사가 주정뱅이 안에 들어있는 영을 감지하고 훨씬 선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수행해야할 그들의 성약의 역할을 모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임무는 완수될 것이었다.  주정뱅이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위해 지상에서의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왔다.  그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고, 그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다른 것들은 나중에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

     나는 내게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을 기억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이 나와 아주 친한 사이임을 느꼈으나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나는 그들이 나의 인생행로에 어떤 연유로 보내졌는지를 알았다.  그들은 항상 나에게 특별하였다. 

     나의 안내자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 나의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했고 내가 순수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심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길 모퉁이의 술주정뱅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속의 고상한 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외모로 그를 평가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부와 외적인 능력으로 평가한 사실 때문에 죄의식을 느꼈다.  나는 그간 내가 공정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거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영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대가 불쌍한 사람들과 항상 같이 할 것이므로, 언제나 그들에게 선으로 대할 지어다."  그러나 이런 경구가 떠오르자, 그것이 나를 괴롭혔다.  왜 우리는 불쌍한 사람과 함께 해야하나?  왜 주님은 모든 것을 준비시켜 주시지 않나?  왜 주님은 변호사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나누어 주도록 하실 수 없나?  안내자는 다시 나의 생각을 중단시키고는, "당신이 모르고 있지만 당신안에는 천사가 거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안내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불쌍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도 무언가 필요한 것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 돕기로 영의 세계에서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에 한 우리의 성약을 지키는 데 너무나 소홀하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자극시키고, 이 임무에 진실하도록 돕는다.  그는 우리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자극을 받도록 할 수는 있다.  우리는 자극을 주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그들은 보통 사람과 같다--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자주 우리와 함께 한다.

     나는 꾸중을 받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가 주님의 도움이 지상의 우리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과소평가했음을 알았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의 자유의지를 방해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도우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과 똑같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가 우리의 사랑과 친절을 받을 가치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심과 온유함과 관대함을 가져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마음속에서라도 그들을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한 선행뿐이다.  나는 우리가 한 모든 선행과 친절한 말이 다음 생에서 우리에게 수 백배의 축복으로 되돌아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힘은 우리의 선행안에서 찾아질 것이다.

     안내자와 나는 잠시 말 없이 있었다.  술주정뱅이는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의 영혼은 이해와 사랑으로 가득찼다. 아, 주정뱅이가 다른 사람을 돕듯이 나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아, 내 생에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건 나의 축복이다.  나의 영혼은 다음의 결정적인 말로 메아리쳤다. "우리의 힘은 우리의 선행안에서 찾아질 것이다."


기    도

 

     나는 인간성과 각 영혼의 하늘나라에서의 가치에 대해서 내게 부어지는 지식으로 겸손해졌다.  나는 더 많은 빛과 지식에 굶주려 있었다.  하늘이 다시 말려올라, 나는 우주속에서 회전하고 있는 지구를 보았다.  나는 지구로 부터 쏘아 올려지는 신호탄 같은 불빛을 보았다. 어떤 것은 아주 커서 커다란 레이저 광선처럼 하늘을 향해 강한 빛을 발하였고, 어떤 것은 작은 펜전지불 같이 약하게 비추었고, 어떤 것은 미미하게 반짝일 뿐이었다.  나는 이 불빛들의 강도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라는 사실을 듣고 놀랐다.

     나는 이들 기도에 바쁘게 응답하고 있는 천사들을 보았다.  그들은 기도에 응답을 주기 위해 조직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직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그리고 기도와 기도 사이를 날아다녔고, 그들이 하는 일에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돕고 있음을 기뻐했고, 어떤 사람의 강한 기도와 믿음으로 간구한 것이 즉시 응답되면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  그들은 더 밝고 큰 기도부터 우선적으로 응답을 주었고, 모든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모든 기도에 차례차례 응답하였다.  그러나, 나는 빛이 약하고 힘이 없는 기도, 반복적이고 진실치 못한 기도는 거의 응답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나는 모든 기도의 요구사항이 청취되고 응답된다고 분명하게 들었다.  우리가 강하게 요구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그 광선이 곧바로 우리에게서 발산하여 그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나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만큼  위대한 기도는 없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기도는 간절한 요구와 종종 필사적인 마음으로 드리기 때문에 가장 순수하다.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줄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서 간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우리가 기도하고 나면, 그 기도는 주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답될 것을 믿어야함을 알게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항상 알고 있고, 우리를 도와 달라고 초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할 능력을 갖고 계시지만, 우리 자신의 법칙과 의지에 의해 판단을 내린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가 우리 것이 될 수 있도록 초청해야한다. 우리는 그를 신뢰해야한다.  일단 우리가 의심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간구하면 우리는 그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우리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더 큰 힘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을 경우나 다른 사람의 필요사항을 혼란시키지 않을 경우에만 응답받는다.  우리 친구들의 신앙이 약하면, 우리의 영적 힘이 그들을 지탱해줄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아프면, 우리의 신앙의 기도로 그들이 치유될 수 있는 힘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들의 병이 성장하기 위한 경험의 하나로 주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만약 그들의 죽음이 가까운 것 같으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목적한 바와 모순이 되어 그 사람이 영의 세계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줄 수 있는 도움의 한계는 무한하다.  우리는 우리 가족, 친구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가 이제까지 상상한 그 이상으로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너무 간단한 것 같았다.  나는 늘 기도를 드리는 시간의 길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우리가 주님을 성가시게 굴어야하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의 기도 방법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먼저 요청하였다.   다음에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 그의 관심임을 암시하면서 회유하려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실패하면, 나는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에 상응하는 어떤 순종이나 희생을 드리겠다며 흥정을 하려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필사적으로, 빌고, 그래도 안되면, 강짜를 부렸다.  이와 같은 기도방법은 내가 희망한 것보다 훨씬 적은 응답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나는 내 기도가 의심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행동은 나의 요구만으로도 내게 응답을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나의 믿음이 없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나는 그가 공평하고 능력이 있는 분임을 의심하였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데에 있어서도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었다.  이런 의심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장벽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아니라,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도 우리의 필요사항을 잘 알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우리의 기도에 즐거히 응답하고, 이렇게 하면서 그들이 행복해함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유리한 점을 갖고 계시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과거와 미래를 투시하고 계시며 우리의 영원한 필요사항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다.  그의 큰 사랑 속에서 하나님은 이 영원하고 전능한 관점에 의거해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정확하게 응답을 주신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해하지 못하시기나 하는 것처럼, 나의 요구를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 전혀 필요없고, 응답이 올 때까지 신앙과 인내심이 필요함을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우리는 우리가 그를 초청하므로써 우리의 삶속에서 그의 의지가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또한 우리가 받은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해하였다.  감사는 영원한 덕목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요청해야하며, 감사함으로 받아야한다.  우리가 받은 축복에 대해 우리가 감사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축복을 받을 길을 여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은 넘칠만큼 충분하므로,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면, 우리는 넘칠만큼의 축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가 살아계심을 알게될 것이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천사처럼 될 수 있고, 기도와 봉사로 우리의 빛은 항상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봉사는 동정심과 사랑에 의해서 불붙는 우리의 램프속에 채울 기름인 것이다.


남자들의 평의회

 

     나의 안내자들과 나는 아직도 정원에 있었고, 내가 나의 주변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하자, 지구의 모습은 내게 닫혀졌다.  그들은 정원으로부터 나를 한 큰 건물로 데려갔다.  우리가 건물에 들어서자, 나는 그안의 정교함과 절묘한 아름다움에 감동되었다.  건물은 훌륭하였다. 즉 모든 선과 모퉁이와 미세한 부분 모두가 일체감과 조화감을 느끼게 하면서, 전체의 구조를 완전하게 하도록 되어 있었다.  모든 구조와 모든 작업은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나는 아름답게 만들어진 방으로 안내되었다.  나는 그 방에 들어서자 콩팥모양으로 생긴 책상 주위에 둘러 앉아 있는 남자들을 보았다.  나는 그 책상의 쏙들어간 쪽으로 안내되어 그들을 마주보고 섰다.  이때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곳에 남자들이 열두명 있었고 여자는 한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상에 있을 때 나는 생각이 남다른 데가 있어서인지, 여성의 역할에 대해 민감한 편이었다.  나는 남녀 평등과 여성의 정당한 권리에 관해 생각해왔고, 여성이 모든 면에 있어서 남성과 대등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나는 이곳에 남자만 있고 여자는 없는 데 대해 불쾌한 생각이 들었으나, 여성과 남성의 역할의 차이에 관해서 새로운 관점을 갖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이런 배움은 이미 지구의 창조를 보는 동안 시작되었었다.  나는 그때 아담과 이브 사이에 차이를 보았던 것이다.  나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자신의 조건에 만족해 하는 반면 이브는 만족하지 못하여 안절부절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브가 어머니가 되기를 몹시 원해서 어머니가 되기 위해 목숨까지도 불사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들었다.  이브는 유혹에 빠져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발전에 필요한 조건을 얻기 위해서 의도적인 결정을 한 것이고, 이브의 주도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이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써 인류가 육신을 갖게 하였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를 갖는데 필요한 조건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죽음도 가져다 준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영이 이브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고, 나는 여성의 역할이 지상에서 항상 특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성의 감성적 특성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을 사랑하며 그들위에 더 충만하게 머무르도록 하게 함을 알았다.  나는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그들에게 창조자인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져옴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또한 위험에 처한 여자가 사탄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사용한 유혹의 과정을 똑같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여성을 유혹함으로써 가정을 파괴하고 결국은 인간성을 파괴하려하였다.  이 사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나는 그것의 진실함을 알았다.  그의 계획은 분명해 보였다.  사탄은, 아담이 그의 상황에 만족해 할 때 이브에게 주어 아담을 유혹하게 했던 것과 같은 감정, 즉 여성의 감성적 힘을 이용해서 여자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다. 나는 사탄이 가정을 파괴할 수 있는 성욕과 탐욕을 이용하여 남편과 아내사이의 관계를 공격하여 그들의 사이를 이간시키려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자녀들이 가정의 파괴로 인해 피해를 입고, 여자들이 미래에 대한 공포와 가정의 붕괴로 인한 죄의식으로 실의에 차있는 것을 보았다.  사탄은 이 공포와 죄의식을 사용하여 여자와 그들의 지상에 부여된 목적을 파괴할 수 있다.  나는 사탄이 한 때 여자를 손에 넣었기 때문에 남자가 쉽게 여자를 따른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차이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역할의 필요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이같은 새로운 관점을 갖자 평의회가 남자만으로 구성된 대해 전혀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역할을 갖고 있으며, 나는 나의 역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사랑을 발산했고,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음에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그들은 서로 협의해가며 자문을 하고 있었다.  그중의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건냈다.  그는 내가 미숙한 상태로 죽었기 때문에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지구로 돌아가서 나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느꼈으나 나는 마음속으로 이 사실에 저항감이 들었다.  이곳은 나의 집이고 나는 그들이 말한 어떤 것도 내가 이곳을 떠나야함을 확신시키지 못한다고 느꼈다.  남자들은 다시 의논하고 나서 내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싶냐고 물었다. 그 질문은 거의 명령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저했다.  이 순수와 사랑의 장소에서는 아무도 필멸의 시기의 과거사를 되돌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그것을 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고, 결국 나는 동의하였다.  빛이 한쪽에서 나타나더니, 나는 구세주의 사랑이 내 옆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왼쪽으로 비켜 앉았다.  내 인생의 재현은 내가 앉았던 곳에서 일어났다.  나의 인생은 기막히게 정교한 홀로그램의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났는데,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나는 이렇게 빠른데도 수 많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음에 놀랐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내 인생에서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의 기억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매 순간 내가 느꼈던 느낌 뿐아니라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까지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모든 일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내게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다.  나는 중얼거렸다.  "그래. 아! 그래. 이제 알수 있어. 자,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나 있담?  그러나, 물론, 이제 이해가되는군."  이러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일로 실망하였고, 나는 그들이 느낀 실망감이 나를 채우고, 나의 죄책감이 뒤범벅이 되어 움추러들었다.  나는 내가 저지른 고통 모두를 이해하고 느꼈다.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온순치 못한 성미로 야기한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고, 나는 이 슬픔으로 고통을 느꼈다.  나는 나의 이기심을 보았고, 나의 가슴은 이를 완화시켜 달라고 울부짖었다.  내가 어찌 이리 무정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이런 고통을 받는 중에 나는 평의회원들이 내게 보내는 사랑을 느꼈다.  그들은 이해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양육받은 과정, 교육내용, 다른 사람으로 부터 받은 고통, 내가 받아들였거나 받아 들이지 않은 기회들을 포함하여,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상기되었다.  그리고 나는 평의회가 나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심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의 사랑과 자비는 절대적이었고, 나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내 앞에 다음의 광경이 보여질 때 보여준 그들의 사랑에 특별히 감사하였다.

     나는 그들의 말로 소위 파문효과(波紋效果)를 보았다.  나는 얼마나 자주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따름으로서 나도 비슷한 나쁜 일을 하는지를 보았다.  이 고리는 도미노 바퀴처럼, 그것이 새로운 시작으로 돌아와 내가 공격자가 되게 될 때까지, 희생에서 희생으로 이어졌다.  물결들이 지나가면, 다시 물결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공격하였고 나의 고통은 배가되어 도저히 참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구세주는 내 옆에 서서 충만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영이 내게 힘을 주었고, 그는 내가 자신을 너무 심하게 심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너는 네 자신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는구나."고 주님은 말씀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파문효과의 반대편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가 이타심에서 나온 행동, 즉  선행을 하는 것을 보았고 이러므로써 파문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내가 친절하게 대했던 친구는 그녀의 다른 친구에게 친절히 대했고, 이 고리는 되풀이 되었다.  나는 내가 한 작은 행위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사랑과 기쁨을 증대시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의 행복이 자라나 또 다른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을 보았다.  나의 고통은 기쁨으로 대치되었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사랑을 느꼈고, 그들이 느끼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작은 선행에서 이루어졌다.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고, 나는 나의 마음속에 그 사실을 계속 되뇌었다. "사랑은 작은 관심이다.  사랑은 작은 관심이다. 그리고 사랑은 기쁨이다!"  나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 10:10)는 경전구절이 떠올랐고 나의 영혼은 엄청난 기쁨으로 채워졌다.

     모든 것이 이렇게 단순해 보였다.  만약 우리가 친절하면,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왜 이 사실을 전에 몰랐을까?"  예수님이나 평의회원중의 한분이 이에 대한 해답을 주었고, 그 답은 내 속으로 배어들어왔다.  그것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와 가라앉았고, 시련과 대립에 관한 나의 견해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당신은 지상에서의 부정적인 뿐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이 다 필요합니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기 전에, 당신은 먼저 슬픔을 알아야합니다."

     나의 경험 모두가 이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내 일생에서 진정한 실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모든 경험이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이다.  모든 불행한 경험도, 내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때까지,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더 큰 이해를 갖게 해주었다.  나는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을 돕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나의 많은 경험이 수호천사들에 의해 조정되는 것을 보았다.  어떤 경험은 슬프고, 어떤 것은 기뻤다. 그러나 모두 내가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얻도록 계산된 것이었다.  나는 수호천사들이 나의 시련기간동안 나와 함께 머물면서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내 주위에는 경우에 따라, 많은 수호천사가 있을 때도 있고 몇명 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내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내가 교훈으로 배울 때까지, 같은 실수와 나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배우면 배울수록, 더 많은 기회의 문이 내 앞에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문은 문자 그대로 열렸다.  내가 스스로 했다고 생각한 많은 일들이 신성한 도움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보여졌다.

     이렇게 해서, 내 인생의 재현은 부정적인 데서 긍정적인 것으로 빨리 바뀌었다.  내 자신에 대한 나의 관점이 바뀌었고, 나는 내 죄와 단점들을 다차원의 빛 속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었지만,  내가 이것들로부터 배움으로써 나의 생각과 행위를 교정할 도구들이었다.  나는 용서받은 죄들은 지워져 없어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지식과 인생의 지침에 의해 덮여버리는 것과 같다.  이 새로운 이해는 내가 자연스럽게 죄를 버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죄가 씻겨진다해도 경험의 교육적인 부분은 남아있다.  따라서 용서받은 죄는 내가 성장하도록 돕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나의 능력을 키워준다.

     이런 것들이 이해가 되면서 나는 내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시작이 됨을 알 수 있었다.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어야만 한다. 내가 준대로 받게된다.  만약 내가 용서받기를 원하면 용서해 주어야한다.  나는 내가 가장 심하게 비판하고 용서하길 싫어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들이 바로 나도 갖고 있거나 갖고 있어서 싫어하는 행동임도 알았다.  나는 나의 약점을 다른 사람도 행하는 것이나 나의 잠재적 약점에 위협을 느꼈다.

     나는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알았다.  모든 진정한 성장은 영적으로 이루어지고, 소유욕이나 엄청난 욕망과 같은 세상적인 것들이 영을 질식시킨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신(神)이 되어 우리를 육(肉)의 노예가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성장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나는 말로서가 아니라 이해의 영으로, 이생에서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면, 먼저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빛이 내 안에 거했고--그도 이것을 보았고--나도 내 자신안에서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찾아야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계명인양, 나는 그렇게 하였고, 나는 내 영혼속의 진정한 사랑을 억눌러 왔음을 알았다.  나는 이 사랑을 원래처럼 비추도록 해야 했다.

     나의 일생에 대해 되돌아 보기를 끝내자, 남자들은 조용히 앉아서 나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발산하고 있었다.  구세주는 그의 빛속에서 나의 발전을 기뻐하며 웃고 계셨다.  남자들은 다시 의논을 하고 나서 나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지상에서의 당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당신에게 강요하진 않아요.  결정은 당신이 해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안돼요. 안돼요. 난 되돌아 갈 수 없어요.  나는 이곳에 속해 있어요.  이곳이 나의 집예요."  나는 우뚝 섰고 아무도 내가 떠나도록 강요하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한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의 사업은 완수되지 않았어요.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예요."

     나는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이제 그 기술을 전부 사용했다.  나는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못해요.  내가 속하는 이곳을, 바로 이곳을 떠나지 않을꺼예요. 나는 지상생활을 마쳤어요!"하고 울부짖었다.

     예수님은 내게서 멀지 않은 곳의 오른쪽에, 찬란한 빛속에서 빛을 발하시며 서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왔고 나는 그의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사랑과 함께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아직도 나에 대해 기뻐하고 계셨고 나의 기분을 이해하고 계셨으며,  나는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욕망에 대한 그의 이해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일어났고, 그는 평의회원들에게 말했다. "그녀의 임무에 대해 보여줍시다."  그리고 나를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네 임무를 알게 해주면 네가 가부간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보고 나서 결정을 해야한다.  만약 네가 지상으로 돌아가면, 너의 임무와 네가 이곳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 너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동의하고 나의 임무에 대해 보게되었다. 

     결국, 나는 내가 돌아가야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고난과 불확실성을 찾아 빛과 사랑에 찬 이 영광스러운 세상을 떠나야 할지라도, 내 임무를 수행하려는 생각이 내가 돌아가도록 나를 밀어댔다.  그러나 처음에, 나는 예수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로부터 약속을 받았다.  나는 내 임무를 마치는 순간 고향으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한다고 그들에게 약속을 받은 것이다.  나는 지상에 필요없이 더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의 집은 지금 그들과 함께 있는 바로 이곳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 제안에 동의했고, 내가 돌아오도록 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구세주께서는 내게로 오셔서 나의 결정에 기뻐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내가 지상에 돌아가면 내 임무에 관해 내가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상기시켜 주셨다. "네가 지상에 거하는 동안, 너는 너의 임무가 주어질 곳에 살지 않을거야.  때가되면 그렇게 될꺼야."라고 말씀하셨다.

     "아, 주님은 나를 너무잘 알고 계시군요!"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가 지상에 있는 동안 나의 임무를 기억하면, 내가 그것을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비효율적으로 완수할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었다.  지금 그 임무에 대해서는 조그만 암시도 남아있지 않고, 이상하게도 나는 임무에 따라 살려는 욕망도 갖고 있지 않다.

     내 임무가 완수되는 순간 나를 데려가겠다는 주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그의 마지막 말씀이 아직도 내 귀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지상에서의 시간은 짧다.  너는 그곳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고, 너는 이곳으로 돌아 올 것이다."


이     별

 

     갑자기 수천의 천사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들은 내가 돌아가기로 한 결정에 대해 기뻐하였다.  나는 사랑과 격려로 나를 후원해주면서 기뻐하는 그들의 응원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나의 가슴이 그들로부터 느끼는 사랑으로 녹아들어감을 느꼈고, 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내 평생에 들어본 어떤 음악도, 아까 정원에서 들었던 음악까지도, 이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장엄하고, 영광스럽고, 경외스러웠으며,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노래했으나, 나는 각자의 맡은 음정들을 구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순수했고, 각각의 음정은 깨끗하고 달콤했다.  나는 그들이 부른 노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들의 노래를 다시 듣게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들의 사랑과 천국음악에 젖어 소리내어 울면서, 나처럼 별볼일 없는 영혼이 이렇게 큰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음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영원의 관점에서는 별볼일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영혼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나의 영이 겸손과 감사로 부풀어 오르자, 나는 지구에 대한 마지막 시현을 보았다.

     하늘이 감겨 올라가자, 나는 지상에 사는 수천만의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뒤섞여 살면서, 실수를 하고, 친절을 베풀며,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보았고, 그들 위를 날아다니는 천사들도 보았다.  천사들은 각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있고 가까이서 그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사람이 선한 일을 하면 기뻐하고, 실수를 하면 슬퍼했다.  그들은 도와주고, 지침을 주거나 보호를 해주기 위해 사람들 위를 날아다녔다.  나는 우리가 믿고 의지만 하면 우리를 도와줄, 문자그대로 수 많은 천사를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우리 모두가 크던 작든, 재주꾼이든, 장애자든, 지도자든, 추종자든, 성도이든, 죄인이든 간에 그들의 눈에는 평등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모두 귀하므로 주의스럽게 보살펴지고 있고, 그들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시현이 닫히고, 나는 마지막으로 나를 안내한 두 여인과, 세명의 충실한 관리천사, 그리고 내가 알고 사랑했던 많은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내 영원한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훌륭하고, 고상하고, 멋진 이들이었고, 나는 내가 그들의 영혼의 일부만을 보았음을 알고 있다.  나는 하늘나라의 아주 작은 부분과 천국가정의 일부를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나의 가장 깊은 꿈뒤의 지식은 그곳에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많은 계획과 여정과 진리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영원전의 것이고 어떤 것은 앞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나는 하늘나라의 사물들에 대해서 조금 보았을 뿐이지만 영원히 나의 보물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사랑으로 충만하여 노래를 부르는 천사들이 이곳에서의 영광스러운 경험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사랑과 후원를 표해주는 동안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귀     환

 

     나는 안녕이란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병실에 돌아와 있음을 알았을 뿐이다.  문은 아직도 반쯤 열려 있었고, 전등불은 싱크대 위에 있었으며, 내 몸은 침대 담요 밑에 누어있었다.  나는 공중에 서서, 내 시체를 내려다 보았고, 일종의 혐오감 같은 것을 느꼈다.  시체는 차디차고 무거워 보였고, 먼지와 흙속을 끌고온 낡은 작업복(상하의가 붙은)을 상기시켰다.  말하자면, 나는 한참 샤워를 하고 나서 온몸이 나른하게된 상태에서, 무겁고 차갑고 흙범벅이된 옷을 입어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약속했드시, 그렇게 해야함을 알았고, 서둘러야 했다. 만약 내가 일초라도 지체한다면 나는 용기를 잃고 도망갈지 몰랐던 것이다.  재빨리, 나의 영은 나의 몸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일들은 자연적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아무 조정능력도 갖고 있지 않게 되었다.

     몸의 귀찮은 무게와 냉기가 싫었다.  고압의 전기가 나를 통해 흐르는 것처럼 몸안에서 갑자기 요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몸의 고통과 아픔을 다시 느꼈고 도저히 되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영적인 자유의 기쁨이 지나갔고, 나는 다시 육의 감옥에 갖히게 된 것이었다.

     내가 몸속에 잡혀 누어 있는 동안, 나의 세명의 옛 친구가 내 침대옆에 나타났다.  나의 사랑하는 관리천사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온 것이다.  나는 너무 너무 약한 상태여서 그들에게 인사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가 본 세상의 사랑과 순수함의 마지막 보루(堡壘)였고, 나는 그들의 상냥하고 영원한 우정에 감사하였다.  나는 다시 한번 "난 당신들을 사랑해요."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과 희망으로 가득찬 눈을 통해 그들을 응시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은 그 뜻을 이해하였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그리고 조용하게 내 옆에서서 나의 눈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발산해 모든 고통을 이기게 하는 영을 내게 채워주고 있었다.  몇 초동안 귀한 시간에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면서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하였다. 이 순간에 그들은 내게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성스런 징표로 간직할 메세지를 주었다.  그들의 말과 존재는 나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그들이 나의 느낌뿐만 아니라 나의 새로운 인생 여정, 그들의 사랑을 잃음으로 해서 견뎌야할 고통, 지상의 삶을 다시 살게되므로서 받을 혼란, 앞으로의 고된 여행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지상에 돌아가기로 한 나의 결정에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좀 쉬세요."라고 그들이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매우 평화스럽고 고요한 느낌은 내게 흘러 들어왔고, 나는 즉시 깊은 치유의 잠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잠에 빠지면서, 나는 아름다움과 사랑이 나를 둘러싸는 느낌을 느꼈다.

     나는 얼마동안 잠들었었는지 모른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새벽 2시였다.  내가 죽은 후 네시간 이상이 되었다.  내가 영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4시간은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겪는 데는 부족한 것 같았다.  나는 어떤 의학적 처리가 나를 다시 살렸는지도 모르고, 누가 병실 안에 들어와 나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식의 느낌이 들지만, 아직도 나의 깊은 절망감만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때 나는 나의 경험을 나의 마음속에 주마등처럼 회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이 세상의 구세주를 실제로 방문했으며 그의 팔에 안겼던 경이로움으로 가득찼다.  나는 그의 존재속에 있는 동안 내가 받은 지식을 되새기면서 더욱 강해지는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의 빛이 나에게 필요할 때 힘과 위안을 주기 위해 계속 비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할 때 나는 문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나는 더 잘보려고 팔굽을 세워 일어나려했고 한 짐승이 그 머리를 들여미는 것을 보았다.  나는 두려워 뒤로 움추렸다.  그때 또 한 마리의 짐승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소름끼치고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섯 마리가 문앞에 들어와 섰고 나는 두려움으로 거의 마비되었다.  그들은 반은 사람, 반은 짐승으로 긴 손톱과 발톱을 가지고 있었으며, 키는 작고 근육이 발달한 야만인처럼 보였다.  그들은 내게로 다가와 으르렁거리고 킁킁거렸다.  그들은 아주 역겨운 모습이었고, 나는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몸이 너무 약해있었고 마음은 두려움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침대에서 5, 6피트안으로 들어왔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유리와 비슷한 커다란 돔형의 빛이 내 위로 떨어졌고, 그들은 그들에게 위협이 됨을 확인하려는 듯 빛 앞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돔은 나를 보호했고 그들은 돔을 미친듯이 두드리면서 더 잘 공격할 수 있도록 기어오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돔은 오르기에 너무 높았고 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괴성을 지르고 저주하고 식식소리를 내고 침을 뱉었다.  나는 침대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공포에 떨었다.  짐승들은 떠날 줄 몰랐고 나는 돔이 견디어 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몰랐다.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나의 공포가 나를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나의 세 사랑하는 천사가 방에 들어왔고 짐승들은 도망갔다.  천사들은 내가 보호받고 있으니 두려워말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게 사탄이 지상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결정에 화가 나 있으며 그래서 그가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힘센 악마들을 보낸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들은 돔이 내 여생동안 내 주위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악마들이 다시 내게 오려 할 것이며, 내가 이들을 보거나 듣게 되더라도 돔이 나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늘 당신 옆에서 당신을 돕고 격려해 준다는 것을 알라"고 말하고는 곧 섭섭하게 떠나버렸다.

     이것이 세 천사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수도사라고 사랑스레 불렀지만 나는 그들이 나의 영원을 통한 가장 절친한 친구들임을 안다.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나 서로 포옹하고 영원한 우정을 새롭게 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악마들은 천사가 떠난 후에 다시 왔으나 돔이 그들로 부터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내 방에 악마가 있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환상을 보았다고 생각했고, 딸중 하나를 연결해줘 나와 전화로 이야기 하도록 하였으며, 그동안 그는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10분후에 죠는 문앞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방에 짐승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내 침대머리에 와서 내 손을 잡았고, 나는 무슨 일이 일어 났었는지 이야기하려 했다.  곧 동물들은 놀라 도망쳤고, 그날밤 다시 오지 않았으며, 나는 안심이 되어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죠에게 나의 죽었던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하였다.  나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무언가 특이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고, 그는 나에 대한 사랑과 염려로 가득찼다.  천사들은 갔지만, 죠는 그곳에 남아서 나를 위로하고 보호하고 있었다.  내가 그로부터 느낀 사랑은 천사들이나 그리스도로 부터 느끼는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경이롭고 아주 평화를 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나누는 사랑은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치유와 지지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죠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나의 영은 나의 귀환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이생과 영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였다.  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나를 치료하기 위해 일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오래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노력에서 긴장감과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때도 영의 세계를 계속 보았고, 이생과 저생에 관한 여러가지 기이한 것들을 보았다.  그때 나는 시현(示現)의 형태로가 아니라, 방문을 통해 또 다른 강력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예쁜 꼬마 소녀 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소녀는 두 세살 밖에 되지 않았고 내가 영의 세계에서 본 유일한 아이였다.  금빛 후광이 소녀로부터 나와 방에서 그 애가 가는 곳이 어디던 비추었다.  그 애는 죠에게 마음이 쏠린듯 하였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잠간 방을 비웠을 때, 나는 남편이 그 애를 볼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보지 못했다.  그 애는 발레리나 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춤을 추듯이, 발끝으로 걸으며, 작은 몸짓으로 안무했다.  나는 즉시 그 애의 천연덕스러움과 행복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애는 죠에게 다가가서 그의 구두끝 위에 섰다.  그 애는 발레리나가 하듯이 한발로 서 있다가 그 애의 다른 발뒷굼치를 차서 몸 뒤로 발을 들고 섰다가는 남편의 바지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몸을 앞으로 기우렸다.  나는 이같은 움직임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그 애에게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 애는 돌아서서 웃으며,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고,  그애가 내 말을 들은게 분명한 것 같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애의 내면적 기쁨, 내면을 채우고 있는 순수하고 풍부한 행복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애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그 애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 다음 몇 시간동안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들락날락하며 나를 체크하였다.  그들이 그 전날보다 내게 더 주의를 기우렸음에도, 죠와 나는 내 경험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한 의사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어제밤 정말 고생을 했어요. 당신이 경험한 것을 내게 말해주실 수 있어요?"  나는 나의 경험을 그에게 말할 수 없음을 알고는, 단지 악몽을 꾸었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저생의 여행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죠에게도 그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말하는 것은 경험을 희석시키는 것 같았다.  경험은 신성한 것이었다.  수주가 지난후 나는 죠와 큰 자녀들에게 내 경험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즉시 나를 지지해주었고 나의 경험을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주었다.  나는 그후 몇년간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하였다.  사실 이 기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때였을 것이다.

   


회     복

 

     나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영의 세계에서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광경을 잊을 수가 없고, 그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너무 간절했다.  이 세상이 내 주위를 소용돌이치면서, 나는 삶에 대해 두려움이 느껴져, 심지어 역겨운 생각도 들고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는 하나님께 나를 이 생과 미지의 임무로부터 나를 놓아주기를, 고향집으로 데려가 주기를 애원했다.  나는 집을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타향살이 공포증환자가 되었다.  나는 내가 창밖으로 우편함을 쳐다보면서 거기까지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하고 소원하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내 자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죠와 아이들이 잘 보조해주었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빠져나가고 있었다.

     결국 나를 구조한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었다.  나는 나의 자기연민이 그들에게 정당하지 않음을 인정하였다.  나는 영의 세계를 뒤로하고, 삶에 끼어들어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는 집 밖으로 눈을 돌려, 학교 일, 자선봉사, 교회참석, 야영활동, 바캉스 등과 같은 아이들과 관련된 활동에 참여해야했다.  한번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삶이 즐거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은 영의 세계를 결코 떠날 수 없을지라도, 나의 이생에 대한 사랑은 풍요로워지고 훨씬 건강해졌다.

     내가 죽음의 경험을 한지 5년이 지난후, 나는 그날 밤 내게 신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번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까지 의사들은 내게 아무말도 안했고, 나역시 한 마디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는 내 경험을 친구 몇명에게만 얘기했는데, 모두 같은 질문을 내게 하는 것 같았다.  "헌데 의사들도 네가 죽었었다는 것을 아니?"  나는 내가 죽었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의사들의 확인을 얻을 필요는 없었다--예수님이 내가 죽었다고 말했으니까--그러나 나의 친구들은 그 이상의 정보를 원했다.  나는 내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와 만날 약속을 하고 그의 사무실로 갔다.  로비에는 그를 보러온 환자들로 붐볐다.  간호사는 의사가 늦게까지 바쁘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그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하니, 내가 값진 그의 시간을 빼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면서도 나는 기다렸고 결국 그의 사무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의사가 들어오자 그는 나를 기억하면서 무얼 도와줄지를 물었다.  나는 내 수술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그 수술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수술을 받은 날 밤에 일어났던 복잡한 상황에 대해 사실대로 알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왜 그것이 알고 싶은지 물었고, 나는 내 경험을 조금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45분이 지났다.  로비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뤘지만, 의사는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이 일로 법정에 설 일을 꾸미려는 것이 아니고 내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던 그 순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알고 싶을 따름이라고 설득하였다.  그는 말없이 일어나 그의 서류상자로 갔다.  그가 돌아오면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래요, 그날밤 복잡한 일들이 많았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의사들은 내가 잠시 죽었었으며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나는 수술을 받는 동안 심한 출혈이 있었고, 그날 밤에도 다시 출혈을 했다.  내가 죽었을 때엔, 간호사 교대시간동안 홀로 남아 있었고 아무도 옆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정확하게 얼마동안 죽었었는지 몰랐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나를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주사와 약을 투여하고 아침동안 링겔주사를 꽂아놓았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그와 동료들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만족하였다.

     나는 의사더러 왜 우는지 물었고, 그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최근에 그의 사랑하는 자녀를 잃었고 내 이야기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생후세계에 대한 내 경험이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이다.  그는 몇년전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환자를 기억하며 많은 내용이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 가족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위로받았다.  나는 그에게 이생 후에 올 영광러운 삶,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만큼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하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사무실을 떠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내 신체적인 죽음에 대한 상세한 일은 영원히 잊어버려도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즉 내가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특별한 천사

 

     내가 의사를 방문한지 1년후, 죽음을 경험한지 6년후, 내 동생 도로시가 전화를 걸어 이상한 이야기를 하였다.  동생은 나에게 한 여인이 있는데 애기를 낳으면 남에게 입양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여인과 남편은 알콜중독자였으며 전부터 갖고 있던 문제로 한 아기를 낙태시켰다.  불행하게도, 그 가족은 첫 아이를 낳은 이래, 너무 많은 애를 낳아 기르고 있어서 이번 애기는 양육할 수가 없었다.  부모는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안)이었으므로, 그들은 그 애를 원주민 부모의 가정에서 입양하여 돌보아주기를 원했다.

     도로시는 내가 가끔 실의에 빠지는 것을 알고 있고, 내 손을 또 다른 애기를 키우느라 바삐 놀리게 하는 것이--이 애기가 8번째 아이가 될 것이다--내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동생은 그들이 몇달동안 애기를 돌보아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나는 죠와 가족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였다.  나는 이제 막 작은 지방대학에 등록하여 학사학위를 따려고 공부를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딸, 셰릴은 애기를 출산하려하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와서 나를 돕고 그렇게 함으로써 애기를 돌보는 일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죠는 그가 다시 애기를 안아주는 일도 좋겠다고 말했다--우리 막내는 열두살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했고 결국 입양당당자가 사랑스런 여자 애기를 우리집으로 데려왔을 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손주들을 위해 보관해 두었던 요람과 우리 애들이 사용했던 갖가지 물건들을 찾아내었다.  나는 애기를 받자 즉시 우리 사이의 유대를 굳게해서 깨어지지 않도록 하려 하였다.  나는 애기가 곧 떠나려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머리로만 이 사실을 인정할뿐 가슴으로는 거부하고 있었다.

     법정은 아이의 가까운 친척중에서 입양할 가정을 찾아주려 하였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달이 지났다.  내 딸은 아들을 출산하였고, 나는 가능한 한 자주 양녀를  데리고 그녀를 방문하였다.

     애기는 유쾌하고 밝았으며, 항상 안아주는 것을 원했고, 아프거나 안정을 원할 때면 코를 내 목에 비벼대며 나의 숨결을 그녀의 얼굴에 뿜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녀를 조용하게 해주었다.  물론, 모든 가족이 그녀를 사랑했다.  아침이 되면, 우리 12살, 14살짜리 아들이 그 애를 침대에서 훔쳐내어 거실로 데리고 나와서 놀곤 했다.

     그 애는 열달이 되자 걷기 시작했고 그 애의 올리브색 얼굴은 다른 애들처럼 건강하고 빛났다.  나는 애기의 피부가 비단같이 부드럽게 될 때까지 매일 아침 로숀을 발라 문질러주고 하루종일 그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했다.  그 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애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애기가 열달 반이 되었을 때, 입양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다른 주에 사는 그 애의 친척을 찾았다고 말했다.  양부모될 사람이 수일 후에 와서 그 애를 데려갈 것이었다.  나는 얼이 빠졌다.  죠와 나는 우리가 입양할 의사가 없다는 동의서에 서명하였고, 그래서 애기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애기가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왔지만, 나는 그 때 한 어머니가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는 내 아기를 잃어버려할 지경에 와 있었다.

     나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애기의 옷가지를 챙겼다.  사람들이 내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내겐 들리지 않았고,  나의 마음속에 많은 질문이 생겼지만, 해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감정적으로 어떻게 이 정도로까지 결속되어져있게 됐는지,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지? 이렇게 되도록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새로운 부모가 도착하자, 나는 애기를 차로 데려갔다.  처음에 그녀는 우리가 어딘가 가려한다고 생각하고, 내게 행복하게 코를 비벼대며 우리 가족에게 "안녕, 안녕"하고 인사했다.  가족들도 나를 감싼 것과 같은 무감각 속에 싸여 있었다.  양부모는 차안에서 기다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해준 데 대해 감사했다.  아무도 그때 나를 위안해 줄 수 없었으리라.  새 엄마가 내 아기를 안았을 때, 나의 가슴은 북받쳐 오르고 목은 꽉 메였다. 나는 애기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후들거렸다.

     애기는 나와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 나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차가 떠나자,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귀여운 꼬마 애기가 울면서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나의 영혼속에서 불타올랐다.  그 모습이 나를 불태우는 동안, 나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날 이 일로 나의 마음은 엄청난 고문으로 시달렸다.

     집안의 모든 것들을 쳐다 볼 때마다 그 애기를 상기시켰다--앉아서 엄마 흉내를 내던 피아노, 장난감으로 가득찬 놀이칸, 빈병이 들어있는 요람, 그리고 무엇 보다도, 적막함.

     3개월이 지나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애기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억들이 너무 깊고, 너무 생생해서,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 애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가족 모두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보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애기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영혼이 부셔져버릴 것 같았던 얼마 후의 어느날 밤, 나는 그 애를 데려간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을 축복해 주셔서 그들이 그 애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나는 또한 애기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그 가족과 귀여운 꼬마 딸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달렸음을 느끼면서 나는 잠이 들었다.

     그날밤 나는 내 침대 옆에 서 있는 천사 때문에 잠을 깨었다.  나는 그가 영의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애기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다시 내게로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전화를 받게 될텐데, 입양담당자가 "좋은 소식이 있는데요, 그리고 나쁜 소식이기도 하구요."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샜다.

     다음 두주일 동안 나는 집을 떠나지 못하였다.  이 특별한 전화를 기다리면서, 나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도로시에게 천사에 대하여 말했지만, 내 말은 가족뿐 아니라 죠에게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너무 오랫동안 그들에게 환자 취급을 받아 왔음을 느꼈다.  도로시까지도 나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이른 아침, 전화가 울려왔고 나는 잔잔한 목소리로 "베티, 나 엘렌인데요. 좋은 소식이 있는데요. 그리고 나쁜 소식이기도 하구요."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기다려! 잠간만 기다려!"  나는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침대에서 기어나와 거울을 보며 내가 깨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나는 전화기를  꽉잡고, "그래! 나 듣고 있어."하고 말했다.  나의 가슴은 너무나 세게 고동쳐 내 고막에 까지 울렸다.  음성은 계속되면서, 내 아기가 병원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엘렌은 말했다, "그 애는 새 가정에 적응할 수 없었는지 계속 울었어요.  당신이 열달동안 그 애 엄마노릇을 했기 때문에 당신을 찾고 있어요."

     엘렌은 애기가 계속 울자, 양부모는 성질이 났고 어느날 밤 화가 나서 애기를 때리고 계단아래로 던져버렸다고 설명해주었다.  애기는 병원에 옮겨졌고, 가족의 보살핌도 없이 2주동안 심하게 아파 누어있었다.  애기는 의사의 치료에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의사들은 이런 감정상태에서는 그 애가 결코 회복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엘렌은 "베티, 우리의 마지막 희망은 당신이예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모르겠지만, 잠깐동안, 최소한 애기가 완쾌될 때까지만이라도 맡아줄 수 없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힘이 쭉 빠졌고, 숨은 가빠졌다.  나는 "내가 좀 있다가 전화해 드리면 안될까요?"하고 물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시간은 7시 30분이었고, 죠는 이미 일하러 나갔다.  나는 계단으로 달려가 애들에게 소리쳤다.  나는 이 놀라운 소식을 애들에게 전하고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목이 꽉 잠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애들은 나를 따라 전화기 있는 곳에 와서야 내가 일어난 일에 대하여 죠에게 전화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당장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나보다 조용했으며, 이는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나는 좀 기운이 나기 시작했고, 내가 엘렌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나는 흥분된 상태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나는 다시 그녀의 전화번호를 돌리면서 내가 엘렌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모든 것이 실수였다면 어떻게 될까?  엘렌이 전화를 받자, 나는 그녀가 말한 모든 것을 다시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엘렌은 비행기로 애기가 있는 도시에 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녀와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는 것보다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애기가 어디 있는지 말했으므로, 그녀가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여행사에 연락해 그녀와 같은 비행기로 떠날 계획을 세웠고,  마지못해 그녀는 비행장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또 다른 입양담당자가 다른 도시에서 애기를 데리고 우리를 만날 것이었다.  비행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고,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나는 터미널로 달려가 군중속에서 내 애를 찾기 시작했다.

     입양담당자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애기를 안고 혼자인 남자를 찾았다.  나는 그들을 찾지 못하자 흥분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 왜 못찾지?  그 때 나는 한편에 서 있던 그들을 찾았지만, 그의 팔에 안긴 아기는 전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애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바로 우리 애임을 알았다. "이건 내 아기예요!"  나는 그에게 달려가며 소리쳤고 그의 팔에서 애기를 낚아챘다.

     애기의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있었고, 조금씩 여기저기 듬성듬성 남아 있을 뿐이었다.  눈은 부어 있었고 한쪽 눈섭은 깎여 있었으며 멍들어 있었다.  애기는 나를 알아보고, 팔과 다리로 나를 감싸고서 내게 꽉 매달렸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지? 그들이 무슨 짓을 했지?" 나는 울부짖었다.  입양담당자는 그의 팔에서 애기를 빼앗아 울고 있는 이 이상한 여인을 보고 놀란 모습이었다.  엘렌이 내 뒤에 와서 그에게 별일 아니고 내가 그 애기 엄마라고 설명해 주었다.

     죠와 여섯 자녀들이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나왔다.  그들이 내 팔에 안긴 꼬마애기를 보았을 때, 그들의 눈에는 흥분의 빛이 감돌았고 눈물이 고였다. 애기는 그들을 보자 의식적으로 한 사람씩 돌려가며 자기를 안아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애기는 잠간만 머물고는 내게로 돌아왔다.  애기는 그의 인생이 오직 내게 달려 있다는 듯이 나에게 매달렸다.

     그후 몇달간 애기는 내가 그의 눈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애기의 여린 감정에 끼친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애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를 않으려 하였고, 걷기를 거절했으며,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것은 내가 그녀를 떠날 때 뿐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울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접시 닦는 타월로 싸서 내 허리에 업고 다니며 집안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나는 이렇게 매인 채로 몇달을 지냈다. 그 애는 나 없이는 잠들지 못했으므로, 나는 매일 밤 요람을 내 침대 옆에 놓고 잠을 잤다. 처음엔 요람을 바로 내 옆에 놓았고, 애기가 잠 들 때까지 내 손을 요람의 칸막이 사이로 넣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요람을 조금씩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고, 애기는 결국 방의 다른 구석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죠와 나는 즉시 변호사에게 의뢰해서 입양수속을 밟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또한 애기를 병원에 데려가 그 애가 당한 피해상태를 조사해 적어놓았다.  우리는 찰과상이 있는 곳과 멍이든 부위를 적고 팔뼈가 부서지고 탈수가 되었으며 영양부족에 머리가 빠지고 두개골에 통증이 있다는 것을 기록했다.  그 애의 정신상태는, 추측일 뿐이지만, 나에게 철저하게 달라붙고 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아 깊은 불신감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그녀의 건강이 우리와 함께하는 계속적이고 안정된 가정생활로 인해 나아지고 있다고 보았다.

     법정은 사건을 조사해보고 증거를 검토하였고, 곧 결정이 내려졌다.  그애는 우리 아기가 된 것이다.  죠는 애기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했다.  아주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는 데 내가 반대를 해도, 오히려 가족들이 나를 설득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같이 사는 동안 갖게된 동질감과 깊은 유대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애기는 새 엄마인 내 이름을 따, 베티 진이라는 법적 이름을 갖게되었다.

     꼬마 베티가 두살반이 되자, 애기는 신체적로나 감정적으로 거의 완쾌되었다.  그녀는 다시금 아주 사랑스럽고 장난끼 있는 아이가 되었고, 재치있는 유머감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주곤 하였다.  어느날 오후 그 애는 죠에게 달려갔다.  그 애는 장난기 있는 미소를 띠고, 죠의 구두발 끝 위에 서서, 발레리나가 하듯이 한발로 서 있다가 그 애의 다른 발뒷꿈치를 차서 몸 뒤로 발을 들고 섰다가는 남편의 바지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꼬마 베티는 웃고 있었고, 나는 꼬마 소녀의 이 목소리를 몇년전에 들었던 것이다.  바로 이 꼬마가 하늘과 땅이 하나처럼 느껴졌던 병원의 병실에서 함께 있지 않았던가?  시현에서 본 젊은 여인이 지상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름답고 발랄한 영이었음이 내게 상기되었다.   나는 그녀를 어린 영으로써, 값진 시간을 함께 유대감을 나누며, 사랑과 힘으로 나를 사로잡는 영의 세계에서의 영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 귀여운 천사에 대한 모든 일들이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음이 북받혔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영의 세계에서 아이로 보는 것을 허락받았던 것이었다.  이제 나는 왜 내가 지상에 오도록 준비된 어린 영을 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내 자궁부분절제수술 때문에 그녀가 나에게 태어날 수 없어서, 나와 함께 살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았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왜 그녀를 애기로 받아들이도록 요구되었는지를 알았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영원한 경험을 나눌 영원히 절친한 친구였다.

     이 경험이 있은 이래, 우리 가족은 많이 성장하여, 대부분 집을 떠나 살고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을 갖기 시작했고, 자신의 발전을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죠와 나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들을 도와주려 하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그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 자신처럼 하늘나라의 존재이고 이곳에 지상의 경험을 하러 왔음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슬픔을 대신 삼킬 수 없고, 그들의 기쁨을 대신 설계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족이 되는 것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하는 것 뿐이다.

     1973년 11월 18일이후 내게 더 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여기서 모두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에 적은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는 데 19년이 걸렸고 여러가지 어려움도 많았다.  모든 것이 때가 있고, 이 책의 때는 지금이다.

     나는 종종 나에게 부여된 임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고 해답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안에 살면서, 나의 인생에서 그의 사랑을 계속 받아들이라는 인상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이 내게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함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며, 가능한 한 관대하게 봉사를 해야한다.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랑을 통해서 더 큰 기쁨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사랑을 함으로써 받는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보상을 보았다.  내가 말한 상세한 경험담은 우리가 사랑을 하게 도와준다는 면에서 중요할 뿐이다.  모든 다른 것은 이것에 부수된 것일 뿐이다.  구세주의 메세지를 따르는 것만이 문제이다.  그는 분명하게 내게 말씀하셨다.  "다른 모든 것보다도, 서로 사랑하라."

     나는 늘 이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역자의 변

 

     나는 지난 여름 교우 권찬태 교수님으로부터 "Embraced by the Light"란 낯선 제목의 책을 선물로 받고 몇일 안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이 책은 죽음후의 세계와 지상에서의 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주었고, 그 내용은 내가 교회에서 배운 것들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베티 이디 여사는 우리 교회의 회원이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뿐아니라 교회에서는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던 영의 세계에 관한 많은 사실들이 하나씩 하나씩 실체로 느껴지게 되었고, 이 책이 가르쳐주는 이생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들에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경험과 시련과 고통이 인간에게 유익이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교육받기 위해 지상의 삶을 택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희열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이 우리가 이런 교육을 받는데 서로 도움이 되도록 전생에 미리 계획하였다는 사실은 교리에서 암시만 되었을뿐 거의 모르던 내용이었습니다.  온갖 범죄가 난무하고 기존의 도덕적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혼탁한 세상에,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이 얼마나 유익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실 이 책을 번역하는 데 적합한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는 아닙니다.  영어의 독해도 그리 자유롭지 못하고 번역은 더더욱 서툴 수 밖에 없는 내가 이 일에 손을 댄 것은 우연한 동기에서였습니다.  교우인 최태열 군이 저자인 베티 이디 여사와 펜팔을 하고 있었고, 이 책을 한국말로 번역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학원 입시준비에 바빠 진척이 없던 차에, 도미 유학중에 잠깐 집에 와 있는 내 딸 지은에게 한번 해보라고 제안하였고, 딸은 선뜻 승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딸의 체류기간도 짧고 일정도 바빠 번역은 여의치 않았고 결국 일감만 남겨 놓고 떠나버렸습니다.  "에라, 나라고 하면 안되랴?" 덥썩 손을 댄 것이 계기가 되어 무뢰한의 손으로 번역을 끝내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내가 이 책에 접할 수 있게 해준 권교수님과 이 번역을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 최군과 딸 지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첫 몇장은 이들의 번역을 기초로 하였음을 알립니다.  원고를 읽고 다듬는데 수고해준 나의 아내와 우리 교실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문장중에 이태릭체로 써진 부분들은 원문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원문의 구둣점은 우리말의 흐름을 위해 간혹 무시하였고, 문장들이 짧은 감이 있어, 여러 문장을 하나로 만든 데도 많습니다.  가급적 원문에 충실하려다 보니 영어식 표현도 많고, 우리말이 짧아 어색한 부분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께서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번역이 있으면 일러 주시고, 여러면에서 많은 격려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 서툰 역서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용기와 희망을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바로 보고 알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상의 삶에 대해 무한한 가치를 두고, 고난을 이겨내고, 어려운 중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막연했던 분들에게 우리의 인생이 이생뿐이 아님을 인식하고 영원을 위해 준비할 줄 알며, 신앙이 강건하여지기를 소망합니다.  

 

                         1995 년  1 월        

                                              이   상   태

31세의 베티 이디 여사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죽었다. 그리고는 "가장 심오한 근사경험(近死經驗)"이라고 평가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죠지 리치의 "내일에서의 귀환"(Return from Tomorrow), 레이몬드 A. 무디 박사의 "생후의 생"(Life after Life)과 함께, 베티 이티의 경험은 육체적 죽음 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놀랄만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여사는 이전의 어느 사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보았고 이에 대해 사진을 보듯 정확한 기억을 갖고 있다.

여사는 수 많은 사람에게 이 경험을 전함으로써 희망을 주고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빛에 안기어"는 영의 세계에서 그녀가 만난 사람들, 그녀가 배운 진리들, 위대한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후 베티의 인생은 크게 변하였다.  그녀의 경험은 너무나 강력해서 매일 매시간 그녀와 함께하고 있다.  여사는 이 경험을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우리 모두를 기다리시는 큰 사랑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서     평

"빛에 안기어"에는 위대한 비밀이 실려 있습니다 . . . .    그것은 위대한 예언자나 종교지도자들이 수천년간 우리에게 이야기해왔던 내용과 같습니다.  베티 이디 여사는 이것을 근사경험(近死經驗)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멜빈 모올스, 의사이며 "빛에 의해 변형되다"(Transformed by the Light), "빛에 더 가까이"(Closer to the Light)의 저자.

 

"빛에 안기어"는 경이롭고, 감동적이고, 잘 손질되고, 믿기지 않고, 고양시켜주고, 강력한 힘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책의 좋은 내용이 있는 부분에다 표시를 하다가, 벅찬 감동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이 책의 진실성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H.  호올, 에티토리얼 리뷰지.

 

나는 천여명의 근사(近死)경험자를 면담했지만, 베티 이디 여사의 경험만큼 상세하고 매혹적인 경험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베티에게 일어난 일은 감상적이고 영감적이며 위안을 줍니다.  --킴벌리 클라크 샤프, 씨애틀 국제근사연구협회장.

 

저자 소개

베티 J. 이디 여사는 여덟 자녀의 어머니이며 여덟 손자를 둔 할머니이다.  여사의 남편, 죠는 공군에서 제대하여 미국 서북부에 있는 큰 항공우주회사에 다니고 있다.

 

수우족 인디안을 어머니로 둔 여사는 네브라스카주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 남다코타주에 있는 로즈벋 인디안 보호구역에서 양육되었다.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떠난후, 다시 학교로 복학한 여사는 고등학교를 마쳤고, 대학을 거의 끝내가고 있다.  여사는 커다란 상담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암연구센터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베티의 특별한 경험은 미국과 일본에서 TV에 방영되었고, 대학의 근사연구프로그램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강의되었다.  여사는 동정우호회(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임), 많은 교파의 교회, 국제근사연구협회 등 많은 단체에서 그녀의 경험에 대해 강연하였다.


이 책을 바칩니다:

 

 

     빛에게, 나의 주님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신 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그분은 내가 의지하는 "지팡이"가 되시고,  만약 그분이 안계시다면 나는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내게 늘 용기와 힘을 준 나의 훌륭한 남편 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내 인생에 소금이 되어준 나의 여덟 자녀: 도나 마리, 셰릴 앤, 그렌 앨렌, 신씨아 캐롤, 죠셉 리, 스튜아트 제프리, 토마스 브리튼, 베티 진에게 바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생에 보석과 같은 여덟명의 손주들: 커트 앤드류, 제이야 엘리자베스, 재커리 브리튼, 나타리 캐드린, 스테파니 레이, 안드레아 메간, 제니퍼 리앤, 키오나 마리에게 바칩니다.


감사의 말씀

 

나의 남편 죠에게 심심한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죠의 나에 대한 신뢰감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 책은 결코 출판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내가 책을 내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 작업을 해줬습니다.  자신의 일은 거의 돌보지 않고 내 원고를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는 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내기 위해서 TV디너(역자주: 개스렌지에 넣어 간단히 익혀 먹을 수 있는 네모난 작은 식판에 든 음식)를 먹었고 와이샤쓰 갈아입는 것도 하루이틀씩 미룰 정도였습니다.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고마워요.

 

주님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는 내 친구 칼라일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낸시는 사랑을 자연스럽게 표시하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이야기 하고, 내 경험에 대해 조금도 실증냄이 없이 끝까지 들어주고, 내 일을 더 잘 하도록 격려해주는 등 많은 시간을 내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헌신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낸시는 1987년에 이 책을 내는 필요한 기초작업을 해주었고, 내가 책 내는 일을 포기하려 할 때도 그녀의 신뢰감은 시들줄 몰라 1991년 7월 아버님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님을 돌볼 힘을 주었습니다.

 

또한 내 강연을 세번이나 듣고 "영의 세계"라는 제목의 근사경험(近死經驗 near-death experience)에 대한 책을 써준 제인 바퍼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원고를 갖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들이 이 책을 더 상세하게 쓰도록 그리고 끝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빛에 안기어

Embraced By The Light

베티 이디(Betty J. Eadie) 저

 

번  역   이   상   태 

발행인   이   상   태

서울시 관악구 봉천6동 1692-3

전화 872-2827

* 이 책은 아는 분들께 증정하기 위하여 역자의 자비로 발행한 것입니다.

 

A Denunciation of the Book Embraced by the light (1993)

A Denunciation of the Book Embraced by the light (1993)


Before fans of the book Embraced by the light write me any more outraged letters, please keep in mind that this is included here not as a statement of opinion on the book, but rather for archival reasons--please read the archive's disclaimer. By including this text here i am merely stating that i have come across this text and have not seen any proof of whether it is authentic or not.


This is claimed to be a copy of an essay by a Jeffrey Lund titled "Some things to consider" which was sent to Church Educational System faculty as a response to the book Embraced by the light. It is eight pages long (typeset), the last four of which are a transcript of a Mormon church General Conference address by David B. Haight. (The text of this address is protected by copyright and therefore not reproduced here. Those who wish to see it are referred to the November 1989 Ensign, pp 59-61.)

The top of the first page has the typewritten addition "TO: CES AREA FACULTY." In addition, the essay holds the date 15 March 1993. Note that i have included this text in my collection of disputed texts because there is no way of knowing whether this is actually an official CES document. (In order to make the text more readable i have changed some formatting; however, the text itself, including the paragraphing and capitalization system, is unchanged.)


Recently a book by Betty J. Eadie, Embraced by the Light, made its appearance in Utah. It has stimulated much interest and discussion. As a Bishop and a teacher in the Church Educational System, I been [sic] deluged with questions about her experience. Almost all of the questions boil down to two issues: Did she have a real experience and if so, was it from the Lord? And secondly, does what she experienced provide us an accurate picture of the spirit world and the premortal existence?

I would not assume to try and answer those very difficult questions, but here are some things that have come to mind as considerations as we seek to answer those questions for ourselves.

Consideration #1:

Elder Boyd K. Packer, speaking of personal revelation, gave the following counsel:

I have learned that strong, impressive spiritual experiences do not come to us very frequently. And when they do, they are generally for our own edification, instruction, or correction. Unless we are called by proper authority to do so, they do not position us to counsel or to correct others. I have come to believe also that it is not wise to continually talk of unusual spiritual experiences. They are to be guarded with care and shared only when the Spirit itself prompts you to use them to the blessing of others. ("The Candle of the Lord," Ensign, January, 1983, p. 53)

Consideration #2:

President Joseph Fielding Smith said:

When a revelation comes for the guidance of this people, you may be sure that it will not be presented in some mysterious manner contrary to the order of the Church. It will go forth in such form that the people will understand that it comes from those [who] are in authority, for it will be sent either to the presidents of stakes and the bishops of wards over the signatures of the presiding authorities, or it will be published in some of the regular papers or magazines under the control and direction of the Church, or it will be presented before such a gathering as this at a general conference. It will not spring up in some distant part of the Church and be in the hands of some obscure individual without authority, and thus be circulated among the Latter-day Saints (Doctrines of Salvation 1:287, emphasis in original).

Keeping this in mind, here are a few of the doctrinal implications that come from the experience of the author which are not taught as official doctrines of the Church.

  1. The health of the mortal body is directed by the Spirit. If our Spirit could exercise enough power, sickness and infirmities could be healed (see pp. 62, 64).
  2. We select the illnesses we suffer (p. 67).
  3. Through choosing to die (e.g., stepping in front of a drunk driver) we may save that person from committing additional sins in the future (p. 68).
  4. There are "Warring Angels" (p. 90). These are giant, muscular angels who are available to us through prayer and who are sometimes necessary to protect us.
  5. Spirits of great intelligence may choose to enter the body of those who are mentally handicapped (p. 95).
  6. The spirit can enter the mortal body at any time during the nine months of pregnancy (p. 95).
  7. A valiant spirit chose to sacrifice his mortal experience and be an alcoholic in order to sit on the street and motivate a person he had bonded to in the pre-mortal existence (pp. 99-102).
  8. The Lord sends angels to those in mortality to prompt them to do what is right (p. 101).
  9. Prayers are sources of light and differ in intensity (pp. 103-104).
  10. Angels answer our prayers (p. 103).
  11. The more fervent prayers (in her terminology, the "brighter" ones) are answered first (p. 104).
  12. All prayers of desire are answered (p. 104) and the Lord answers all prayers perfectly (p. 106, emphasis hers).
  13. Demons (evil spirits) are half man, half beast (p. 125 ff.)

Consideration #3:

The author makes numerous references to those who serve as our guardian angels (see pp. 32, 90, 115, 121 as examples). In one place she states: "I even saw that many of my experiences had been orchestrated by guardian angels" (p. 115). In another she says, "I saw that we could literally call down thousands of angels in our aid if we ask in faith" (p. 121).

Elder Bruce R. McConkie stated:

There is an old and false sectarian tradition to the effect that all men--or if not that, at least the righteous--have guardian angels, heavenly beings of some sort who attend them and exercise some sort of preserving and guarding care. It is true that there are many specific instances in which angels, by special assignment, have performed particular works whereby faithful people have been guarded and preserved...But to suppose that either all men or all righteous men have heavenly beings acting as guardians for them runs counter to the basic revealed facts relative to the matter in which the Lord exercises his benevolent watchfulness over his mortal children. The fact that angels have intervened to preserve someone in a particular peril does not establish the fact that all people generally have guardian angels, anymore than the fact that angels have ministered to selected prophets would prove that angels have ministered to all men. (Mormon Doctrine, 2nd ed., pp. 341-42)

President Joseph Fielding Smith said:

We have often heard of guardian angels attending us and many patriarchs have spoken of such protection. There are times no doubt when some unseen power directs us and leads us from harm. However, the true guardian angel given to every man who comes into the world is the Light of Truth or Spirit of Christ (Doctrines of Salvation, 1:54).

Consideration #4:

In answer to the question, "Why didn't God give us only one church, one pure religion?" the author says the answer was given to her that people are at different levels of spiritual knowledge and therefore all religions are necessary because there are people who need what they teach and that each church fulfills spiritual needs that perhaps others cannot fill. "No one church can fulfill everybody's needs at every level" (p. 45).

In the revelation known as the preface to the Doctrine and Covenants, the Lord says that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was "the only true and living church up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which, I the Lord, am well pleased [sic]" (D&C 1:30)

In the First Vision, the Savior told Joseph to join none of the churches which he had investigated because "all their creeds were an abomination in his sight" (JS-H 1:19).

Consideration #5:

The author said it was shown to her that some spirits lingered in the "tunnel" which separated our world from the spirit world (pp. 38, 85). She also said some spirits, especially the wicked, remain on earth and become "earth-bound" (p. 84).

Alma said:

"Now, concerning the state of the soul between death and the resurrection--Behold it has been made known unto me by an angel, that the spirits of all men, as soon as they are departed from this mortal body, yea, the spirits of all men, whether they be good or evil, are taken home to that God who gave them life (Alma 40:11).

Consideration #6:

The author states that "in the spirit world they don't see sin as we do here. All experiences can be positive" (p. 70).

Nephi said that the sacred record "speaketh harshly against sin" (2 Nephi 33:5). God said: "I cannot look upon sin with the least degree of allowance" (D&C 1:31).

Consideration #7:

In her chapter on prayer, the author says she had always believed that you had to "nag the Lord" (p. 105) in order to get a prayer answered. But she learned while in the spirit world that it is "never necessary to repeat requests unremittingly, as though he couldn't understand" (p. 107).

In the New Testament, there are two parables that teach just the opposite. The Parable of the Unjust Judge (Luke 18:1-6) teaches us that we are to "pray and not faint" [an old English word meaning to give up] (Luke 18:1.). The parable of the Friend at Midnight (Luke 11:5-9) teaches a similar lesson.

Speaking of these parables, Elder James E. Talmage said:

The Lord's lesson was, that if a man, with all his selfishness and disinclination to give, will nevertheless grant what his neighbor with proper purpose asks and continues to ask in spite of objection and temporary refusal, with assured certainty will God grant what is persistently asked in faith and with righteous intent. No parallelism lies between man's selfish refusal and God's wise and beneficient waiting. There must be a consciousness of real need for prayer, and real trust in God, to make prayer effective; and in mercy the Father sometimes delays the granting that the asking may be more fervent" (Jesus the Christ, p. 435, emphasis added).

Consideration #8:

The author states that she was shown the creation of the earth and saw Adam and Eve. As part of that she learned that (1) Adam was satisfied to stay in the Garden; Eve was anxious to move on; (2) Eve did not "fall" to temptation as much as she made a conscious decision to partake; and (3) Eve had the power to move when Adam was too satisfied with the situation (pp. 109-110).

From the scriptures and other sources we learn that:

  1. Adam was the first to be tempted to partake. He steadfastly refused, not because he was "too satisfied," but because he was determined to be obedient. When he saw that he could not remain with Eve if he did not partake, he did partook [sic] in order that "men might be" (2 Nephi 2:25).
  2. The specific reasons Eve partook were that she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became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make her wise" (Moses 4:12).
  3. The apostle Paul says Eve was beguiled by Satan (see 2 Corinthians 11:3 and also Moses 4:6) and that she was deceived (see 1 Timothy 2:13-15).

Consideration #9:

The author indicates that the return to her mortal body was a very negative experience. She says she was "filled with revulsion," and that if she had had to think about it "one second longer" she "would lose courage and flee" (p. 123). She found the body "abhorrent" and became "inconsolably depressed" (p. 124) once her spirit returned to it. She had become "trapped" and "a prisoner to the flesh" again (p. 124).

The Lord revealed to Joseph Smith that only when the elements (our physical bodies) are inseparably connected to our spirits do we have a fulness of joy (D&C 93:33-35). We are also told specifically that spirits view the separation from their physical bodies as a loss, not a blessing. Christ told the Twelve who lived with him during his ministry that they would look upon the long absence of their spirits from their bodies as a bondage" (D&C 45:17). When Christ visited the spirit world after the crucifixion, even the righteous Saints eagerly awaited "their redemption from the bands of death" and their "deliverance from the chains of death" so their bodies and spirits could be "united never again to be divided, that they might receive a fulness of joy" (D&C 138:16-18)

Consideration #10:

Recently, a member of the Quorum of the Twelve had an experience that the world might choose to label a "near death" or "out of the body experience," though he used neither of these terms. Elder David B. Haight later felt impressed to share that experience in a General Conference.

His full talk is attached here so the readers may compare the experience of an apostle with that of the author of Embraced by the Light, in terms of what was experienced, the context in which the experience is shared, and the purposes for sharing it.

[As noted in the introduction, this address is not included with this text due to copyright restrictions, but it is available in the November 1989 Ensign, pp. 59-61.]


Added: 22 July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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