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14일 가족역사 사업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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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역사 사업

서선교부 회장이신 링우드 회장님은 제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선교부회장님보다 한국말을 가장 잘 하시는 분은 아니지만, 그분은 한국말로 주님의 영을 전달하는데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갖고 계십니다.  링우드 회장님께서 간증하실 때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특별한 영을 지니신 분입니다.  링우드 회장님은 한국을 사랑하고 선교사업을 사랑하며 선교사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오늘 새로 부름 받으신 상호부조회 회장단께 스테이크의 상호부조회원들 앞에서 3가지 목표를 드리고 싶습니다.

1.  시온의 자매님들, 시온의 어머니들께서 자녀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주님의 표준대로 지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구약명기에 보면 ‘몰렉’ 이라는 이방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을 피워놓고 자녀들을 그 불 가운데로 걸어가게 하는 사악한 일들을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날 자녀 교육과 관련하여 혼란스러운 이 세상이, 마치 우리의 자녀들을 불길 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시온의 자매님들께서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주님의 종들이 가르친 우선 순위를 지키도록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2.  시온의 자매님들께서 자매 상호간에 서로 존중하고 명예를 지켜주며, 서로 다툼이 없고 분쟁이 없도록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3.  시온의 자매님들께서 남편과 신권 소유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군인에게 있어 가장 기쁜 일은 편지도 아니고 휴가 및 외출 외박도 아닙니다.  그것은 면회 입니다.  제가 해군에서 복무하던 중에 있던 일입니다.  제대를 3개월여 앞둔 어느 토요일 오후 부대 정문 초소에서 연락이 와서 나가봤더니, 그곳에 목포 와드의 독신 형제 자매님들이 면회를 와 있었습니다.  저에게 함께 독신모임에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외박을 나와서 그들과 함께 토요일 독신 모임에 즐겁게 참여하고, 일요일에 주일 모임까지 참석하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말에 이르러서 갑자기 태풍경보가 발령이 되었습니다. 해군에서는 태풍이 오면 부대 사령관을 비롯하여 모든 장교와 하사관 및 사병들의 외출, 외박이 금지됩니다.  안식일 오전 새벽에 저는 교회 모임에 몹시 가고 싶었습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일 모임 약 2시간 전쯤, 용기를 내어 부대의 직속 상관인 소령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으며 교회 모임만 참석하고 곧바로 부대로 돌아오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부대장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목포시내 앞 영산강 건너편에 위치한 부대에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저는 그날 안식일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또다시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연속해서 두 주 교회 모임에 참석한 저는 조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주 저는 상급자들을 바꿔가며, 저의 직속상관들에게 여러 가지로 방법을 달리하면서 허락을 받아 교회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결국 제대하기까지 약 3개월 동안, 저는 한 주도 빠짐없이 매주 교회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휴가를 받아 저의 소속와드 감독님과 접견하는 가운데, 저는 선교사업에 지원할 수 있었고 제대 후 두 달 만에 선교사업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의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저의 선교사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제가 그러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 제대 전에 참석한 교회 모임이 큰 영향을 미쳤고, 무엇보다도 그때 독신들이 저를 찾아 면회를 와 준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에게 사랑을 보여주었고 그로인해 교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소망을 불어넣어 주었고, 신앙의 결심을 하게 해준 그때 그 독신 형제 자매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그때가 1985년 10월경 이었습니다.  제대하고 선교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어느 날 감독님께서 성찬식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이제 곧 서울 성전이 헌납될 예정이니, 회원들은 단 한 장이라도 가족 기록서를 제출해 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독님의 말씀에 따라 외갓집을 방문하고 조사하여 저의 조상들의 가족 기록서를 제출하였고, 저는 곧 선교사업을 떠났습니다.  선교사업을 한지 약 1년쯤 된 어느 날, 성전에서 편지가 한 통 왔는데, 제가 제출한 가족기록서가 ‘가족철’로 되어 있는데 이를 성전철로 바꾸어 성전에서 의식을 대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편지였습니다.

‘가족철’이란 기록 제출자가 직접 의식을 대행하겠다는 것이고, ‘성전철’이란 성전에 자주 방문할 수 없을 경우, 성전에서 지명한 대리인에 의해 의식을 대행해 달라고 하면서 기록을 제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선교사업 중이었기 때문에 '성전철로 해서 조속히 의식을 집행해 달라'고 성전에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2년이 지나 귀환하는 날이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 성전에 도착하여 의식을 마치고 하룻밤을 성전 숙소에서 묵었습니다.  다음날인 수요일 아침에 집인 천안으로 출발하기 전에, 저는 선교사업 전에 제출했던 저의 조상의 기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성전 사무실로 가서 '조상들의 의식이 다 집행되었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1년 전에 의식을 대행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으니 이미 다 끝났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확인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1주일이 지나 다시 성전을 찾았을 때, 저는 그 기록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제가 일주일 전에 확인하려던 그 수요일에 저의 조상들인 돌아가신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조상들의 대리 침례가 이미 집행된 것을 알았습니다.

다행히도 대리 침례 의식 이외에는 다른 의식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는 그 후 몇 달 동안 성전을 방문하면서 저의 조상들의 나머지 의식을 모두 직접 대신해 드렸습니다.

 

저는 왜 제가 일년 전에 의식을 허락했는데 성전 의식이 진행되지 않고 지연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성전 사무실에 가서 기록을 확인해 보았더니 제가 제출했던 기록가운데 선교사업 중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출생 날짜가 사망 날짜와 출생날짜 사이의 줄이 그어진 부분에 걸쳐서 기록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성전 사무실에서는 그 날짜가 불명확하여 제가 제출한 기록을 성전철로 진행하지 않고 보류하다가, 그 날짜를 확인하여 바로 제가 귀환한 다음날 대리 침례가 집행되기로 예정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귀환한 다음날 아침 성전 숙소에서 그 영의 속삭임에 순종하여 기록을 확인했더라면, 저는 저의 조상들의 대리 침례부터 제가 직접 모든 의식을 대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선교사업 중에 성전에 편지를 보내어, 성전에서 아무나 지명하여 의식을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아마도 저의 조상님들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제가 직접 의식을 대행해 주기를 기대하셨던 모양입니다.  이 일로 저는 '주님의 영의 속삭임이 왔을 때 즉시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성전 사업에 주님의 특별한 영이 함께 한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돌아가신 우리의 조상들과 사랑하는 친지들께서 우리가 성전 의식을 대행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간증 드립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막이 매우 얇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간증 드립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참된 교회임을 간증 드립니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계신 회원들께 주님의 위안과 화평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고 삶의 평안을 찾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06년 5월 14일, 전반기 수원 스테이크 대회 일요 총회에서, 스테이크 회장구승훈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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