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1월 29일 일곱 번째 질문 (영동 스테이크 수지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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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1월 29일 일곱 번째 질문 (영동 스테이크 수지와드)

 

지금은 부산컴퓨터과학 고등학교로 학교명칭이 바뀌었지만, 1999년 이전에 이 학교의 이름은 부산 선화여자상업 고등학교였습니다.  이 학교 생물 선생님이 당시 1학년 여학생들에게 어떤 과제를 내주었는데, 그것은 다음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하여 각 종교단체에 직접 방문조사를 하여 그 답을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곱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풍족한 환경에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끼니도 못 때울 정도로 가난하게 태어나는가?

2.     모든 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3.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무엇인가?

4.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은 무엇인가?

5.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6.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7.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교회 회원이었던 한 자매가 자기 반 친구 14명을 데리고 이 숙제를 하기 위해 부산 광안와드로 찾아왔습니다.  당시 선교사였던 저는 우리 교회를 대표해서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주기 위해 학생들을 공과반에 앉혀놓고 구원의 계획부터 가르쳤습니다.  칠판에 도표 등을 그려가며 구원의 계획, 전세와 천국회의, 창조, 아담과 이브, 타락과 속죄 및 구원 등의 원리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런 후에 영의 인도에 따라 학생들의 숙제인 이 질문들에 대해 하나씩 차례대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오늘 수지 와드 회원 여러분과 나눌 저의 말씀 주제는 이 학교 생물 선생님이 내준 일곱 가지 질문 가운데 마지막 일곱 번째 질문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이 질문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혹시 이 선생님이 학생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종교적인 고민을 해결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의 여섯 가지 질문은 구도자의 마음으로 던지는 질문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을 곰곰이 살펴보면 이 선생님의 당시의 고민과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것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이 선생님의 견해인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자신에게 던지는 의문이자 딜레마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거나 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를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하게 됩니다. 이 “일곱 번째 질문”이 오늘 저의 말씀 주제입니다.

 

이제 잠시 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1982년에 개종하여 이제 신앙생활을 한지 약 30년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약 10년 동안 영동 스테이크에 있으면서 성남중앙지부회장 및 스테이크 집행서기로 몇 년간 봉사했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 때인 1981년 가을 어느 날 서울 삼선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데 어떤 사람이 저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니 한 사람은 큰 키에 하얀 피부의 미국인 선교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빛의 한국인 선교사였습니다.  당시 다니던 대학을 휴학 중이었던 저는 특별히 바쁘지도 않고 해서 그들을 따라가 전도소에서 잠시 토론을 했고 헤어지며 몰몬경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선교사와 연락이 끊어진 몇 개월 뒤 어느 날 저는 자취방에서 몰몬경이라고 금박 글씨로 표지가 된 이 책을 발견했고 그 때까지도 선교사와 약속한대로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한 후 책상에 앉아 몰몬경을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 책이 소설책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저는 이 책의 내용에 푹 빠져 들었습니다.  그 날 저는 밤이 새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몰몬경을 읽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읽다가 허리가 아파 누워서 읽었는데도 전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니파이 전, 후서를 다 읽고 나니 새벽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눈물과 깨달음을 준 이 책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제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침례 받기 전 바로 이 날 이미 몰몬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예전에 선교사를 만났던 그 전도소로 다시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어떤 아주머니가 나와 선교사들이 이사를 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주 뒤 어느 날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맥주 몇 잔을 기울이고 헤어져 술에 약간 취해 고개를 숙인 채 자취방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눌한 한국말로 제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선교사입니다.  잠깐 시간이 있습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예전에 만났던 장로들은 아니었지만 제가 만나기를 원했던 이 교회의 미국인 선교사였습니다.  제가 반가운 마음에 “시간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니까 이 미국 장로님이 갑자기 당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반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동반자는 한국인 선교사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미국 장로님은 한국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았고 그의 동반자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할 바로 그 말만 외우게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시간이 있다고 하자 더 이상 아는 한국말이 없어 당황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 몇 주간 토론을 마쳤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1982년 3월 28일 서울 동 스테이크 삼선지부 소속이었고 침례는 현재 동대문 스테이크 용두와드인 당시 1와드에서 받았습니다.

처음 버스 정류장에서 저를 만나 몰몬경을 전해 준 한국인 장로는 현재 강서 스테이크 회장단에서 봉사하고 있는 이인호 회장입니다.  골목에서 어눌한 한국말로 저를 붙잡았고 후에 저에게 침례를 베풀어준 M 패트릭 그린 장로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안틸로페 스테이크의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 복음 토론을 주로 가르쳐주고 개종하고 회개하도록 도와 준 그린 장로의 동반자인 한국인 선교사는 여수 와드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기용 형제입니다.

저에게 다음 네 분의 선교사의 이름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이름입니다.  이인호 장로, 앨마 Q 해일 장로, 김기용 장로, M 패트릭 그린 장로.

 

제가 침례를 받은 지 약 6개월 만에 해군에 입대 했고, 3년 후 제대하고 약 2개월 만에 선교사업을 떠나 부산 선교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업을 한지 약 1년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위 선화여상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개종한 지 약 5년 정도 되었을 무렵입니다. 여러 종파들 가운데 우리 교회를 대표한 선교사로서 이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면서 약간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약 두어 시간 내외의 그 시간 동안 주님의 영이 저에게 강하게 임재하심을 느꼈으며, 그 학생들에게 간증을 하면서 온 몸을 떨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가르친 후 그들에게 간증을 하면서, 몰몬경을 빌려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니까 친구인 교회 회원으로부터 이미 받은 두 명을 제외한 12명 가운데 9명이 몰몬경을 빌려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임 선교사에게는 주님의 특별한 영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께 간증 드립니다.  젊은 선교사 시절의 여러 경험은 저의 간증을 풍성하게 해 주었으며 이 후 제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임 선교사로서의 선교사업은 젊은이들의 특권입니다.  모든 청남들에게 선교사업을 나갈 것을 권고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 가장 놀라운 축복의 근원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제 말씀 주제로 다시 돌아 오겠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저는 이 질문은 조금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은 조금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을 참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행동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참되게 아는 사람은,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인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되게 사물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증할 때 “알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을 안다고 말하려면 그 일에 대하여 실천과 경험을 통한 간증을 지녀야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여러분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1.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유명한 결혼식 축가 노래가사 표현처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일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사랑입니다.

2.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저는 ‘믿음’을 꼽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3.     그렇다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소망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가장 좋은 것이 사랑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면, 저는 소망은 우리가 가장 먼저 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가장 먼저 품어야 할 것은 소망입니다.

 

제가 약 10년 전 성찬식 말씀 도중에 소망에 관해 이와 같은 표현으로 말씀한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소망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제가 신앙도 부족하고 사랑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소망하나 만큼은 넘치도록 지닌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교회 회원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제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한 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훌륭한 경지에 이른 분들을 항상 부러워하며 닮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더 훌륭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닌 소망으로 인해 이 [스테이크 회장]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제가 회원들에게 신앙을 강조하기 이전에 소망을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모로나이가 소망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모로7:40~41) “그리고 또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아, 내가 소망에 관하여 너희에게 말하고자 하노라. 너희가 소망을 갖지 아니하고 어찌 신앙에 이를 수 있느냐? 또 너희가 바라야 할 바는 무엇이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으로 일으키심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할지니, 이는 약속대로 그를 믿는 너희의 신앙으로 인한 것이니라.”

“제 간증의 기초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제가 온전해 지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저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개선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만약 제가 변화할 수 없다면 저는 오래 전에 교회 다니기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2002년 03월 10일 수원 스테이크 신풍와드 대회 말씀 중)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망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 훌륭한 일에 대한 열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해서 추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원리를 “소망”이라고 말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 원리를 “목표”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훌륭한 사업과 계획의 추진 원리는 바로 “목표” 즉 온전한 “소망”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온갖 근심과 걱정이 온 세상에 흩어졌을 때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소망” 이라고 합니다.  “소망”은 모든 낙담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치료제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니파이가 기록한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니후31:20) “그런즉 너희는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과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느니라. 그런즉 만일 너희가 힘써 앞으로 나아가되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며 끝까지 견딜진대, 보라, 이같이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하시느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강한 소망을 지닐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우리의 소망, 즉 목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매일 우리의 목표를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자 마자 쳐다 볼 수 있도록 천장에 목표를 붙여 놓을까요?  아니면 손바닥에 사인펜으로 적어놓고 수시로 쳐다볼까요?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할 일을 볼펜으로 손바닥에 적어 놓는 것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집의 책상 위 혹은 회사 책상 위에 가족 사진을 올려 놓듯이 수시로 쳐다 볼 수 있도록 목표를 붙여 놓을까요?

강한 소망을 지녔다는 것은 강한 목표를 지녔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목표는 종이에 적어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이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종이에 기록하는 이유는 목표를 우리의 마음에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종이를 나누어 주고 여러분 인생의 열 가지 목표를 적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 곤혹스러우실 것입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동기부여 강사가 자신의 책(“한 가지로 승부하라”, 브라이언 트레이시 저, 권문구 옮김, 21세기북스)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아침 일찍 자신의 인생의 열 가지 목표를 약 3~5분 정도 시간을 들여 종이나 워드에 적되, 100일 동안 매일 현재시제로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매일 10가지 목표를 적되 어제 적은 10가지 목표를 컨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10가지 목표를 다 적은 뒤에 어제와 비교해 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다 적기 전에는 비교해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약 8년 전에 그의 권고대로 100일, 정확히 98일 동안 저의 삶의 10가지 목표를 매일 아침마다 기록해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10가지까지 적는 것조차 곤혹스러울 정도로 저의 삶의 목표가 잘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나는 ~ 한다”라고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4글자나 2글자로 된 단어로도 적어보고, 영어로도 해보고, 때로는 생각나는 모든 단어를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적어나가다 보니 발견한 사실은 어제 적은 목표와 비교해보니 어제는 가족에 대한 목표가 다섯 번째에 있었는데 오늘 비교해 보니 10번째에 있는 등 목표의 순위조차도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처음 약 한 달 간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나의 삶의 목표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해서 매일 목표를 적었습니다.  한 50여일쯤 지나자 서서히 저의 삶의 우선순위가 목표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100일에 다가가면서 저는 마치 저의 사명선언서 같이 표현된 아름다운 저의 삶의 목표를 거의 매일같이 적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004년 2월 6일 두 번째 목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잘 기록한다.  이 기록들과 간증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쓰이리라.  몰몬경의 주석을 완성한다.  이는 이 기록의 출현에 관계된 모든 분들과 하나님께 대한 나의 감사의 표시이자, 주님의 사업에서 선한 도구로 쓰이게 하겠다는 나의 소망의 결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2005년 7월 개역한글판 몰몬경이 나오자마자 저는 약 6개월 동안 매일 약 한 시간 정도씩 직접 타이핑하여 몰몬경 합본을 인터넷 파일로 올렸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몰몬경의 주석을 정리했으며,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에서도 몰몬경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정리해서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검색 사이트에서 “주석 몰몬경”이라고 검색하면 제 홈페이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2004년 2월 11일 열 번째 목표 “시간이 된다면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을 비롯하여 교회의 훌륭한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인터넷 매체에 올리고 싶다.  또한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번역하여 정리하고 싶다.”

작년 3월 출간된 힝클리 회장님의 저서인 “위대한 원칙”의 출판사업에 제가 관여하게 된 것도, 제 마음 속 어딘가에 이러한 소망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4년 3월 21일 일곱 번째 목표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주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하늘에 재물을 쌓는다.  썩어 없어지지 않을 재물은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하늘의 천사들과 지상의 인간들과의 돈독해 지는 관계가 아닐까?”

교회의 부름에 대하여 제 마음속에 갖고 있는 이와 같은 생각이, 그 부름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도록 저를 지탱해 준 것이 아닐까요?

 

약 3년 전 수원 스테이크 회장 부름에서 해임되자마자 곧바로 와드 세미나리 교사와 스테이크 세미나리 책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저의 두 자녀를 포함하여 와드의 약 9명의 청소년들을 매일 새벽 세미나리 반에서 가르친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북 아시아 지역 회장단의 승인으로 대전 선교부 지역을 담당하시는 지역칠십인인 오희근 장로님의 집행서기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현재 저는 LDS비즈니스 클럽의 회장단에서 재정을 맡아 봉사하면서 교회의 양서를 번역 출판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2010년 가을부터는 매주 토요일 오전 성전 봉사자 및 코디네이터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수원 스테이크 역사전문가로도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회와 관련하여 제가 현재 개인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은, 선지자의 말씀이 실린 리아호나 및 성도의 벗 약 46년 치가 한국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데, 모두 PDF포맷이라 말씀 주제와 연사 별로 검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검색할 수 있도록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약 8천개 정도의 말씀 목록이 정리되면 모든 회원들이 선지자와 사도별로 색인을 통해 말씀을 찾아 볼 수 있게 됩니다. 2차로는 리아호나의 모든 말씀을 타이핑하여 전산화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한국교회 역사위원회, 공보위원회 및 관리본부와 함께 이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약 25년 전 생물 선생님이 질문한 이 일곱 가지 질문에 제가 했던 답변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이 자매들이 당시 16세 정도였다면 25년이 지난 지금쯤 이들 모두가 40대 초반의 중년 주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일곱 번째 질문에 대하여 다시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왜 그럴까?”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드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부름은 무겁고 모임이 힘들며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도, 우리의 ‘소망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짐을 지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망을 키워야’ 합니다.

훌륭한 일을 우리가 추진하려면 먼저 그 일에 대하여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여 내가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 즉 목표를 온전히 지녀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일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동기와 소망 및 목표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그 일을 실천하거나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 즉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화여상 학생들과의 그 경험을 기록한 제 선교사 일지에 주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을 기록한 뒤에, 왜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지에 대하여 제 자신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글이 일지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모든 답변을 다 전한 후 가방을 챙겨 공과교실을 나가려고 할 때, 그들 가운데 반장이 학생들에게 “차렷, 경례!” 라고 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함께 맞절을 했다 …… 바로 그 전 주에 선교사로써 합당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나에게 성찬축복을 부탁하셨다.  부족함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안되겠다고 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감독님께 곧바로 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성찬을 집행하였다.  그런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찬을 축복하는 데 주님의 권세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온전치 못한 나에게 이러한 의식에 참여하도록 기회가 부여된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나 주 하나님은 그대를 불러 더 훌륭한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느니라. 너는 너의 손을 정결히 씻고 내가 너를 불러 시킬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주님의 거룩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청결해야만 한다.  지난 주일 애통하는 마음으로 성찬을 취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기억하고자 노력한 것이, 어제 있었던 놀라운 영적인 일의 기초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1987년 5월 20일 수요일, 부산선교부 광안와드 선교사 숙소에서 구승훈 장로 일지 중)

 

제 글씨체가 맞으며 제가 스스로 기록한 것이 분명하지만, 제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저의 손을 빌려 말씀하신 것처럼 느껴지는 바로 이 문장, 약 25년 전인 1987년 5월 20일 이날 기록한 저의 일지에 기록된 바로 이 문장,

‘나 주 하나님은 그대를 불러 더 훌륭한 일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느니라. 너는 너의 손을 정결히 씻고 내가 너를 불러 시킬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저는 지난 25년 간 이 문장을 선교사업 이후 저의 삶에 대한 주님의 명령이자 저의 사명선언서 및 개인적인 계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것이 저의 내면에 자리한 가장 강력한 목표이자 저의 근본적인 소망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어떤 부름으로 저를 부르실 지 모르지만, 또 제가 언제 주님 면전으로 가게 될 지 모르지만, 저는 주님께서 저를 불러 시키실 일에 온전하고 합당하게 임할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온전히 준비하고 싶습니다.

단순한 소망, 작은 소망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원대한 꿈과 목표와 비전을 지닐 수 있습니다.  소망은 신앙과 마찬가지로 은혜에 은혜를 더해가면서 계속하여 커질 수 있습니다.  신앙도 커질 수 있고, 소망도 커질 수 있으며, 사랑도 커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지닌 신앙이 보잘것없을 지라도, 우리의 현재의 성품이 우리를 슬프게 할 지라도, 우리는 한 가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소망만큼은 아주 크게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나약하거나 성품에 좌절하더라도 소망만큼은 누구나 크게 품을 수 있습니다.  이 생에서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는 성신의 은사이며, 내생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는 영생의 은사이지만,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쉽게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는 바로 ‘소망의 은사’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께서 계획하고 계신 모든 선한 일에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복음은 참됩니다.  몰몬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조셉 스미스는 이 경륜의 시대를 연 하나님의 참된 종이자 선지자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저의 개인적인 구속주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며 우리를 지켜보며 사랑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2012년 1월 29일, 영동 스테이크 수지와드 성찬식에서, 구승훈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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