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2월 선교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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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12월 선교사 일지

1985년 12월 2일 월

주님께서 이 곳 포항에 나를 보내신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고 나의 능력과 재능을 재 본 결과 주님께서 나에게 알맞은 곳으로 나를 보내주셨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준비일인 오늘 내가 할 일은 다음 한 주를 잘 계획하고 집에 쌓인 일거리들을 해 치우고 편지를 쓰는 것이다.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나의 평생에 함께 하시기를 ...

준비일인 오늘 청소와 기타 다른 모든 것을 하려 했으나 별로 진전이 없었다. 오늘 류상석 자매님에게 두 번째 토론을 전하고 침례를 계획했다. 주 하나님께서 나에게 알아두면 도움이 될 많은 방법들을 가르쳐 주신다.

[편지]

선교부장님께. 안녕하십니까. 부장님과 접견을 마치고 이곳 포항에 도착 봉사한 지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몇 명의 구도자를 만났고 그들을 가르치며 이 사업이 참으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특별히 많은 시간을 주시는 것은 저의 건강과 전도를 위한 준비를 더 잘하라는 채찍이라 여기고 싶습니다. 이곳으로 보내 주신 부장님께 감사 드리며 좀 더 열심히 생활하는 가운데 포항 사람들과 친숙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가족과 부장님의 안녕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5년 12월 3일 화

처음으로 가가호호를 했다.  한 집도 들어가지 못했다. 좀더 많이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1985년 12월 5일 목

Street Board를 대구은행 앞에서 했다.  소책자는 모두 배포했으나 한가지 간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토론 6가지의 그림을 모두 플립차트로 만들었다.  앞으로 토론시의 시각 보조자료는 당분간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오늘 하루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림을 준비한 것뿐인 것 같다.  교회에서 옛 구도자인 형제 한 분과 자매 한 분을 만났다.  오늘 새벽에 너무 기침이 심해서 당분간 다시 규정대로 6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잠시 몸이 건강해진 것으로 착각을 했었다.

 

1985년 12월 6일 금

목욕탕에 다녀오니 기침 콧물이 너무 심해져서 고생을 했다.  아침 공부를 전연 하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생각하며 기도하며 생각하며 또 기도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이러한 모든 육체적 시련이 주께서 나에게 주시는 축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다.

보일러 순환펌프가 고장 나 그것을 수리 중이다.  하지만 잘 안되어 오늘도 냉방에서 자야만 할 것 같다.  교회에서 영어회화 모임이 있었다.  나의 태도와 말에서 전혀 영을 느낄 수 없는 것을 알았다. 회원들도 그런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개인 점검표 라는 것을 Zone meeting때 받았으나 그것이 일반 회원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작성하여 책상 옆에 붙여 놓았다. 

 

1985년 12월 8일 일요일

콧물이 멈추었다.  약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것이 이것이 마지막이다.  기도하였으므로 반드시 건강하게 되리라 믿는다.  다만 나에게 건강의 법을 잘 지킬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잠언에서 첫 부분, 지혜의 말씀을 읽고 있다.

오늘 아니, 어제 국민 은행 앞에서 Street board를 했다.  처음에는 구도자를 찾을 수 없었지만 마칠 즈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큰 소리로 그들에게 설명해야만 했다. 소책자도 부족하고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으므로 챙겨서 교회에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 후 교회에서 이채화 형제님의 침례접견이 D.L.인 Glass장로님과 있었고 김경동, 류상석 자매님과 토론이 있었다.  류 자매님과 토론할 때는 언제나 특별한 느낌이 든다.  즐거움과 화평의 소리가 마음속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토론을 끝낼 무렵에는 성찬에 대해 간증을 할 때, 그녀의 눈물짓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동반자인 Ortolani장로님은 머리가 아프다 해서 내가 모든 토론을 진행했다. 

보일러 고장 수리가 잘 안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동반자와 문제가 생겼으니, 나의 입이 말썽이다.  경건하다 자처하면서 스스로 그 입에 재갈을 물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라는 야고보의 말씀을 읽었다.

성찬식에서 성찬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며 취한 후 말씀을 들었다.  이종한(MTC동기인 이종찬 형제님의 형님)형제님의 신앙에 대한 말씀 하루를 시작할 때 충실히 기도하지 않으면 곧 그날이 평소보다 더 많은 신앙의 갈등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초에의 투자가 게으르면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한인상 장로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신앙과 회개에 대해 기초복음반 교재를 사용하여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설명했다. 

모든 모임 후 침례식이 있었다.  이채화 형제님이 지부장님에게 침례를 받고 내가 안수를 했다. 지금부터 3년 전 내가 안수를 받던 것을 기억할 때 정말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안수할 때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1985년 12월 9일 월

복음전도 생명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두고 영으로 가르침이라는 공과를 공부했다.  경전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D/C 1편 37절의 이 여러 계명을 상고하라는 말씀을 되새긴다.  신앙의 기도는 어떤 일의 분명한 의미는 알지 못하나 그것을 수행하며 성령의 권세를 구하는 것이다.  주님의 도움과 함께 일주일의 목표를 세웠다.  아침에 잠언을 읽으며 또한 복음전도를 공부하며 느낀 영의 임재 하심은 참으로 훌륭한 느낌이었다.

 

1985년 12월 10일 화

5시에 일어나 잠언을 읽으며 지혜의 귀중함을 깨닫는다.  얼마나 훌륭한 축복인가. 운동을 하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였다.  Street board를 조금했다.  간증을 하지 않고 소책자를 전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들의 특별한 구도자인 류상석 자매님을 만났다.  토론을 전하기에 급급하기만 했던 토론이었다.  복음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는 자매님의 준비된 태도를 볼 때 잘 준비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동반자는 모든 토론을 나에게 맡긴다.  나에게 발전할 수 있는 큰 기회이지만 너무 힘이 든다.  토론을 준비하며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  선교사업을 나와 전도를 많이 해서 다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허리가 아프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나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축복이리라.  동반자와의 관계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니 느낀다.

 

1985년 12월 12일 목

울산에서 강형래 장로님을 비롯한 Zoney들이 오셨다. 나는 강형래 장로님과 split해서 아파트를 가가호호하고 비활동 회원들을 찾아 나섰다.  2시 반쯤 집으로 돌아와 계획 작성과 전도시간 기입 표준(구도자를 가르치러 가는 시간 및 영어회화 시간은 전도시간이 아님)에 대해 배웠다.  부장님께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방진율이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Nowlen장로님이 전도하다가 장거리 전화 박스 위에 몰몬경 한 권을 전화번호와 함께 올려 놓은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우리를 축복해 주심을 알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였다.  Zone모임(어제 Glass장로님과 Davis장로님이 갔다 왔다)의 지시사항을 7시에 이곳 선교사 숙소에서 열린 District모임에서 들었다. 

하퍼 부장님이 어제 말씀에서 선교사들이 성전 헌납식에 참석하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하신 말씀을 하셨다 한다.  대관장단에서 허락이 없다가 어렵게 내려진 허락이란다.  조셉 필딩 스미스 대관장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한국땅이 헌납된 이래 (1955년 9월 2일 화요일) 두 번째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라 하셨다. 모든 선교사들은 성전에서 영의 임재 하심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특히 D/C133:13~14절을 읽고 깊이 생각 해 봐야 한다고 하셨다.  성전 주위의 반대자들을 경찰이 잡아 유치장에 넣을 것을 제안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들의 방해를 의식하는 것이 되므로 거절했다고 한다.  성전은 영감과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곳이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성전에 참여해서 느낀 영적인 느낌과 세상에서의 느낌의 차이를 민감하게 구별하여 깊이 생각 할 줄 알아야 한다.

 

1985년 12월 13일 금

아침에 경전을 읽으며 주님의 영의 임재 하심을 강하게 느낀다.  동반자로부터 그의 한국말을 교정해 주지 말 것과 어떤 일을 할 때 그의 의견을 존중해 줄 것을 (너무 나서지 말 것) 부탁 받았다.  한마디의 말이 그 동안의 쌓인 모든 감정을 풀 수 있었다.

 

1985년 12월 17일 화

14일 토요일부터 16일 월요일 밤 10시까지 성전 헌납식에 참석하기 위한 여행이 계속 되었었다.  육신은 피곤했지만 영혼은 배부른 여행이었다. 대구 내당동(대명 와드 담당)선교사 집에 도착했다. 고급 맨션 5층이었다.  경주, 김천 등지에서 올라온 장로님들과 마루에서 전기담요 한 장을 덮고 모두 뭉쳐서 잠을 잤다. 12시 반쯤 서울에 도착 성전으로 올라갔다.

정문근처에 방해자 헌납식 때는 세계 어디라도 쫓아 다니며 유언비어와 삐라를 살포하며, 때때로 교회회원들에게 무력행사까지도 한다고 한다. - 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10시 반에 입장한 성도들이 1시쯤 성전 문을 나선다.

식사 후 성전에 들어갔다.  탈의실 옆에 마련된 폐쇄회로 TV앞에 앉았다.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배치 되었다.  4시 정각에 제5 반복의식이 시작되었다.  힝클리 부대관장님의 감리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여러 훌륭하신 분들이 말씀을 하시는데 도저히 영을 느낄 수가 없었고, 몹시 피곤하여 자꾸만 졸음이 왔다.  정신을 차리며 조금 전에 규칙을 어긴 것을 후회하며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두 번 했다.  힝클리 부대관장님께서 성도들이 조는 것을 보셨는지 모두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자리에 앉았다.  힝클리 자매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때부터 주님의 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헌납기도문을 한인상 장로님이 낭독 기도할 때는 가슴이 복 받혀 올라왔다.  주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한량없으신지! ......

헌납식이 끝난 후 선교사 특별대회가 있었다.  역대 한국 선교부장님 내외와 한인상, 이호남 장로님, 힝클리 부대관장님 내외, 십이사도 대리회장 하워드 W. 헌터 장로님, 아시아 지역 회장단 모두와 서울, 서울서, 부산 선교부장님 내외, 기타 역원들을 모시고 열렸다.  과거 한국에서 선교사업이 행해지고 있던 초창기의 일들을 회상하며 간증들을 하셨다.  박제암 부장님이 서울 성전장님의 제2보좌로 부름을 받으셨다.  이호남 장로님의 회상의 말씀 중, 박제암 부장님과 함께 1960년대 중반 어느 날 미국에서 힝클리 사도님과 만나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박 부장님이 힝클리 사도님께 언제 한국에 성전에 세워지느냐고 노골적으로 질문을 하셨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그 일이 있은 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박제암 부장님이 성전장단 제2보좌로 부름 받으실 줄을 꿈에나 생각 했으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는 말씀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귀결지어졌다. 

  [편지]

하퍼 부장님께. 지난 한 주는 몹시 바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성전 여행 등으로 지금 저희들도 피곤한 상태이나 이제 임지인 포항으로 돌아왔으니 심기일전하여 전도에 힘쓸 것을 약속 드립니다. 지난 토요일에 두 분의 형제님에게 첫 번째 토론을 전했는데 너무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이 복음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며 저희들도 몹시 기뻤습니다. 성전여행 때 얻었던 영적인 감명을 오래 간직하여 그 힘을 전도 사업에 쏟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준비하는 자에게 주님께서 그분의 영을 불러 보내 주시리라고 믿으며 기다립니다. 부장님과 가족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멀리서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5년 12월 18일 수

Davis장로님에 이어 Ortolani장로님까지 아프단다.  감기가 들었기 때문에 4:30까지 밖에 나가지 않겠다 한다.  나는 한달 동안 지독한 감기가 들었어도 참고 나가 전도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하고 싶어서 D.L.인 Glass장로님과 Split해서 Street board를 했다.

5시 약속은 바람을 맞고 대신 전덕민 형제라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한양대 1년생인데 교회에 관심이 있다.  기타 토론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론 후 탁구를 쳤다. Glass장로님과 동반자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도움이 조금 되었다.  교리와 성약에서 주신 주님의 말씀이 자꾸만 떠오른다.

너희는 먼저 기도하기 전에 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깊이 생각한 후에 기도하라.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할지니 주께서 너희를 선으로 인도하시겠음이라.

 

1985년 12월 20일 금

계획을 세우기 위해 신권 지도자 지도서를 들추어 보니 시간관리의 순서와 모든 일의 우선순위라는 제목의 요긴한 글을 발견했다.  첫째. 자신의 영적인 힘과 육체적인 힘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둘째로 가정, 교회, 직장 순으로 시간과 중요성을 배정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이미 여러 가지 경험으로 영적인 영양을 위해 경전을 읽는 중요성과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매일 실시하고 있는 지금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해롤드 비 리 대관장님의 말씀을 읽고 주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에 놀랐다.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배려이신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우선 알게 하시고 이제 2차적인 것들을 깨닫도록 지혜와 영감과 모든 필요한 것들을 주시니 정말, 영원토록 주의 이름을 칭송한다 하더라도 부족하리라.  이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책상에 필요한 것들을 펼쳐 놓았다.  이미 매일 1시간씩 경전읽기와 30분 정도의 운동 시간을 갖고 있으니, 2차적인 일(선교사업 - 토론, 경전주제별 공부, 일지 작성 등)을 계획 실천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1985년 12월 25일 수

1년 전의 오늘을 되새겨 본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주님께 용서를 구한 후 체험했던 놀라운 일들 -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목포에서의 군생활 역시 기적의 연속이었다. 이제 일년 후 오늘 내가 처한 상황을 돌이켜 본다. 선교사업을 떠나 포항에 도착한지도 한 달이 지났다. 처음 어리둥절 하기만 했던 나에게 보이는 선교사들의 생활의 실상이란 실망을 금치 못할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중에서 한가지 한 가지 주님의 배려와 지혜로 풀어나가며 많은 영적인 경험을 했다. 포항에 오게 된 것도 몸이 아팠던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된다. 전화위복이었다.

전덕민 형제님과 (2)토론을 마쳤다. 함께 새 교회로 가서 저녁에 연극을 보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었다.

신권의식에 대해 공부하며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번 몸이 아팠을 때 - 선교사업 전에 - 감독님께 병자 축복을 부탁 드렸었다. 조기창 형제님이 기름을 부어주시고 감독님께서 축복(신권축복3)을 해 주셨는데 감독님의 말씀 중에 인봉한다는 말이 빠졌었다. 그 후 MTC에서 기침으로 고생하며 있다가 최동일 교수님에게 축복을 부탁했을 때 기름이 없어 그냥 손을 얹고 축복만 받았었다. 이제 선교사업을 나와 한 달간 기침과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며 건강의 법에 대해 큰 깨달음과 지혜를 얻고 실천하며 건강을 회복한 후에 그때 일을 돌이켜 보니 그렇게 된 것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 얼마나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인가!

또 한가지, 군 입대하며 축복사의 축복(신권축복1)을 받았으나 군대에 관한 것이 없어 휴가를 나와 최부장님으로부터 축복(신권축복2)을 받았었다. 그리고 선교사업을 나올 때 병자 축복을 받으려 했으나 기름이 없어 그냥 위안과 권고의 축복(신권축복4)을 받았다. 이제 내가 지금 이처럼 큰 축복을 받는 것이 모두 신권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축복의 영향이라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다!

 

1985년 12월 27일 금

이종한 형제님과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분의 집으로 갔을 때 그분이 나에게 83년 5월호 성도의 벗을 주시며 그 중 34p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 진 알 쿡 장로님 - 이라는 부분이 나에게 - 선교사에게 - 좋을 것이라며 읽기를 권하신다.  처음 읽으며 막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잠시 책을 놓고 침실에 가서 잠을 자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잠을 쫓기로 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읽어 나갔다. 읽는 도중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다.  나의 신앙과 행동 및 기도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사탄이 성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것들을 성도들이 섭취하려 하는 것을 방해하려 잠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를 유혹함을 알았다.

결국 선교사업은 이 사업을 방해하려 애쓰는 사탄과 그의 영향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사업의 최일선이라는 것임을 알았다. 

 

1985년 12월 28일 토

류 자매님의 침례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누구에게 침례 받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제 저녁에 동반자가 나에게 와서 침례를 누가 할 것인가를 계획하자고 한다.  그 자신이 침례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류 자매님의 모든 토론을 내가 진행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며 이상한 마음이 되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과연 내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릴 마음의 태세가 되어있는가'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말라기서를 읽고 - 이것은 주님의 섭리인지 모른다. - '하나님의 것을 어찌 사람이 도적질할 것인가' 라는 주제의 성구를 읽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영광을 오직 주님께로 돌리겠다. 동반자에게 침례를 줄 것을 부탁하고 나는 안수를 맡는다면 족할 것이다.

1시간 동안 외환은행 앞에서 Street boarding을 했다. 어떤 아저씨 한 분에게 간증을 하는데 마음이 몹시 뜨거움을 느꼈다. - Street board를 하고 난 후 이렇게 강하게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 소책자를 드리고 헤어졌다.  3시에 전 형제님과 (5)토론을 마쳤다. 그 분은 1월 5일에 침례 받기로 결심했다.  훌륭한 형제님이다.  동반자와 함께 다음 한달 - 86년 1월 - 계획을 했다. 일요일 저녁에 주례계획 모임을 했다. - 모임 후 즐거운 느낌이 왔다.

 

1985년 12월 29일 일

아침에 복음전도를 공부하며 성신의 은사와 여러 가지 영적인 말씀을 배웠다.  기초 복음반에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참석해서 공과를 진행했다.  12시쯤 열쇠를 받아 새 교회로 왔다.  보일러를 가동시켜 물을 받아 놓으니 형제 자매님들이 도착했다.  침례식이 시작되었다.  류상석 자매님이 먼저 다음에 이동춘 자매님이 침례 받았다.  안수를 할 때 두 분 자매님 모두에게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안수가 끝났을 때 잠깐 현기증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폐회찬송을 하는데 온 몸이 심히 떨렸다.

 

1985년 12월 30일 월

[편지]

존경하는 하퍼 부장님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어제 한 분의 자매님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곳 포항에서 선교사업을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시련과 고난을 통해 제 주위를 돌이켜 보며 주님께 기도 드리며 많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노력하며 기도하면 모든 상황이 변하며 향상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거듭 부장님과 가족의 수고하심에 감사 드리며 이곳 포항에서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 봉사하겠다는 저의 다짐을 전해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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