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06일 선교사업 중 가장 기뻤던 날(부산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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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일지 1987년 10월 6일 (화) 맑음, 부산 선교부

일어나면서부터 찬송가 249장 "평화의 길에서 멀리 떠난 너희"가 마음에서 울린다.  PETERSON (피터슨) 부장님은 말하기를 좋아하시고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미소와 함께 편안함을 주신다.  그분의 그러한 성품을 닮고 싶다.  성도의 벗 10월 호를 읽으니 파우스트 사도님의 생애가 실려있었다. 

그분은 "내가 만약 다시 감독이 된다면 보고서와 서류정리와 모임에 대하여서는 신경을 덜 쓰고 과거보다 더 사람들의 생활에 관여하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일지를 쓰는데 방금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래역으로 배를 세 박스나 부치셨단다.  집안에 모두 잘 계시고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음이 편안하다.

사사기 6-7장을 읽으며 감명을 받는다.  요즘은 구약에서 영감어린 말씀들을 많이 발견한다.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전덕민 형제, 포항에 있을 때 세 번째로 침례를 주었고 나로서는 첫 번째 침례의식을 집행했던 형제였다.  지금 한양대 공대 3학년에 재학중이다.  반월지부에 나가면서 OOO 형제로부터 나의 주소를 받았고 바로 그날 밤 편지를 쓴 것이다.  받은 후부터 전도하러 6시에 나갈 때까지 네 번이나 거듭 읽었다.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말을 읽을 때 아니 편지 전체를 읽으면서 계속 감동을 받았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옛 일기장을 펼쳐 그 형제를 만날 때 상황을 읽으며 그때의 고통과 시련을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이 큰 기쁨으로 모두 보상해 주셨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벅찬 하루이다.  저녁에 ‘김해’에 가니 김 장로가 집으로 돌아온다.  나에게 질문하는 그에게 "가가호호를 하겠다"라고 대답했고 그가 나에게 "오늘 저녁에?"라고 반문하기에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저녁에 가가호호는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예전에는 그러했다. 

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려는 주님의 뜻인지 몇 집 두드리다가 대입 준비를 하는 晩學徒- 정수철 형제와 이재민 형제를 만났다.  가가호호를 재미있게 했고 몰몬경을 전하고 나왔다.- 돌아오며 즐거웠다. 오늘은 나의 선교사업 사상 가장 기쁜 날이다.  침례 준 전덕민 형제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김해에서 가가호호 하며 좋은 구도자를 찾았고 돌아오니 아버님으로부터 집안 모두 평안하다는 전화를 받았으니 이것보다 더 마음 편안한 날이 어디에 있을까?  전덕민 형제의 편지를 여기에 붙인다.  그의 글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쁨은 며칠 전에 기도하며 "나의 성약과 헌신에 대한 증거로서 이종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간구의 응답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연약한 종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구승훈 장로님께.

장로님 안녕하세요?

편지의 서문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거의 2년 전에 장로님으로부터 복음을 배우고, 또한 침례를 받아 말일성도가 된 전덕민 형제입니다.  그간 장로님을 줄곧 생각은 해왔지만, 저의 바쁜 상황과 장로님의 정확한 주소를 몰라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장로님께서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시기를 진정 바랍니다.  사실 장로님께서 이다음에 저를 만나셔셔 그간 무관심했던 나의 불찰을 꾸짖으신다 하더라도 그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정말 저의 진실되고 참된 마음으로 장로님께 그간 무관심에 대한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간청할 뿐입니다. 

제가 침례를 받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 올라와서 반월지부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는 글씨가 창문에 붙어 있는 전세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간 지 2주가 되자마자 지부장님은 저에게 세미나리 교사라는 부름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내가 과연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스럽고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장로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 –“장로님도 침례를 받고 곧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으셨으며, 그 부름은 교회에 나간 시기가 오래된 자라야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성실의 미덕을 갖춘 자라면 능히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잘 행해나갈 수 있다고 저에게 말씀해주셨지요”-을 상고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한다 하더라도 굳게 해 나가리라’고 마음먹고 임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지금은 거의 2년이라는 기간동안 그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진정 이 복음 속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나로써, 하나의 존재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이 땅 위에 서서 호흡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 교회와 복음을 통해서 저는 가슴속으로 뜨겁게 느꼈습니다.  정말로 장로님을 만나게 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진정 제가 교회에 속해 생활해온 그 기간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러한 변화는 평범한 한 소년을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한 세계에로의 시야를 띄어주었습니다.  그 세계는 온통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찬 환희의 세계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또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하며,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구승훈 장로님!  장로님으로 인해 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께서, 그리고 여러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저에게, 저를 위해 보여주신 사랑을 비롯한 그 모든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저의 보다 나은 단계로의 발전을 위해서, 저는 장로님처럼 선교사업을 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저의 뜻을 잘 헤아려 주셨고, 이제는 예비선교사로써 선교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장로님!  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찬 기쁨과 환희를 지금 느끼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단지 행복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더라" 하는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제가 어떻게 장로님의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사실은 10월4일 날 서울 노량진 와드에 축복사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러 갔다가 OOO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그 형제님으로부터 구승훈 장로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장로님의 주소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저는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때의 제 기분은 마치 이러하였습니다.  (몰몬경 앨마서 27장 16절) “암몬이 제이라헤믈라 땅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그와 그의 형제들이 앨마를 만났으니, 바로 그곳이 앞에서 말한 바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라, 보라 기쁨에 넘친 대면이었느니라.  (17절) 암몬의 기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큼 커서 넘치는지라, 하나님께로 향한 그 기쁨으로 인해 힘이 다하여 또 다시 땅에 쓰러졌으니, (18절) 이것이 참으로 큰 기쁨이 아니겠느냐?  보라 이것이 바로 진실로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행복을 구하는 자 외의, 그 누구도 얻지 못할 기쁨이니라”.  장로님 저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기뻤었다는 그 말로서 외에는 저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장로님 저는 여러 선교사님들을 보아와서 선교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 거듭 수고하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장로님과 저희 모든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이 드리는 수고가, 바로 지금 이순간에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다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때엔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했던 축복이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장로님, 부디 귀환시까지 몸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그대로 선교사업을 해 나가렵니다.  언제나 인내와 참음으로서 모든 일을 대하고, 언제나 천사의 미소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항상 주님의 영으로 가득차, 온유함과 현명함을 지닌 말일성도의 표본대로 생을 살아나가렵니다. 장로님, 부디 건강에 유의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음에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87년 10월 4일 밤에 전덕민 형제 올림.

P.S 다음에 편지 쓸 때는 엄청나게 길게 쓰겠습니다.

(후기) 전덕민 형제는 내가 귀환하고 한달 뒤인 4개월 후, 선교사 훈련원에 교사로 봉사하기 위해서 갔을 때 선교사가 되어 앉아 있었다.  이 복음은 그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많은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선교사 시절에 카메라가 없어 구도자들의 침례식 사진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 했지만, 주님은 나에게 그러한 물질적인 것 보다 훨씬 중요한 이러한 기록들을 지닐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나는 나의 선교사업과 인생의 기록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뒤 돌아 볼 때 행복을 느낀다. 나의 자녀들과 교회 회원들에게 기록으로도 간증을 남길 수 있기를 원한다. 이러한 기록과 경험, 그리고 만남들을 허락하신 주님께, 그리고 전덕민 형제에게 감사드린다.

1999년 12월 4일 구승훈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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