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선교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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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선교사 일지

1987년 10월 2일 금요일.  맑음.

간절한 기도에는 반드시 주님의 영이 따른다. 마산에 도착 모임이 시작 되었다.  split하여 한국인은 모두 활동실에 모였다.  이번에도 선교부장님께서 참석하셨다.  그분은 나의 말씀을 모두 네 번째 듣는 셈이다.  최성현 장로의 말씀에 이어 어제 동반자와 함께 돌아오며 서로 말씀을 가르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번 대회들을 준비하면서 부장님이나 동반자와 사전 협의는 있었지만 어떤 말씀을 준비할 것인지 구체적인 협의는 없었는데 세 사람의 말씀이 모두 같은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주제는 회개이다.  말씀을 하는 동안 내내 영에 인도됨을 느낄 수 있었다. 

영의 인도를 받아 말씀을 전할 때는 나의 말이 참으로 조리 있고 강하게 변화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해야 할 말이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그리고 매우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침례식을 통하여 구도자를 찾음이란 제목의 workshop을 할 때 나와, 동반자, 그리고 선교부장님이 함께 모두에게 시범을 보인다.  작은 연극을 발표하는데 마음이 몹시 편안하다.  주님의 영이 함께 하실 때는 여러 사람 앞에 선다 할지라도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주님께서 나의 경험과 간증을 모두에게 나눌 것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고, 또 내가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 항상 함께 하셔서 격려해 주심을 느낀다.  피터슨 자매님의 말씀대로 야렛의 동생과 같은 신앙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 동안 몸이 아파 아침에 제대로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회복되었으니 지혜롭게 현명하게 주변을 개선 해야겠음을 느낀다.  옛날의 시현과 지식과 경험을 회복하여 주님의 뜻대로 주위환경을 극복해 나가리라.

 

1987년 10월 4일 일요일.  맑음.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 가운데 특별한 것 한가지는 세상을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시려는 뜻이리라.  그분의 뜻을 펴기 위한 도구로서 그의 자녀들을 준비하시기 위함이리라.  몸이 아플 때 하나님의 뜻을 많이 생각게 된다.  선교부장단 1보좌이신 김치원 형제님이 김해 전도소에 방문해 주셨다.  간증시간에 그분의 간증을 들으며 참으로 학식이 많은 자(그분은 경남 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님이시다) 이지만 눈빛과 태도에서 조그만 치의 교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복음으로 순수해진 사람, 겸손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임해일 형제가 오늘 교회에 나왔다.  너무나 기뻤다.  가가호호 하면서 동반자에게 나의 간증을 전하니 좋다.  저녁시간에 가가호호 할 때 항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1987년 10월 6일 (화) 맑음.

일어나면서부터 찬송가 249장 평화의 길에서 멀리 떠난 너희가 마음에서 울린다. peterson 부장님께서는 말하기를 좋아하시고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미소와 함께 편안함을 주신다.  그분의 그러한 성품을 닮고 싶다.  성도의 벗 10월호를 읽으니 파우스트 사도님의 생애가 실려 있었다.  그분은 내가 만약 다시 감독이 된다면 보고서와 서류정리와 모임에 대하여서는 신경을 덜 쓰고, 과거보다 더 사람들의 생활에 관여하겠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일지를 쓰는데 방금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래 역으로 배를 세 박스나 부치셨단다.  집안에 모두 잘 계시고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음이 편안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사사기 6-7장을 읽으며 감명을 받는다.  요즘은 구약에서 영감 어린 말씀들을 많이 발견한다.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전덕민 형제.. 포항에 있을 때 세 번째로 침례를 주었고 나로서는 첫 번째 침례의식을 집행했던 형제였다.  지금 한양대 공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반월지부에 나가면서 OOO 형제로부터 나의 주소를 받았고 바로 그날 밤 편지를 쓴 것이다.  받은 후부터 전도하러 6시에 나갈 때까지 네 번이나 거듭 읽었다.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말을 읽을 때, 아니 편지 전체를 읽으면서 계속 감동을 받았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옛 일기장을 펼쳐 그 형제를 만날 때 상황을 읽으며, 그때의 고통과 시련을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이 큰 기쁨으로 모두 보상해 주셨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벅찬 하루이다.

가가호호를 재미있게 했고 몰몬경을 전하고 나왔다. 봉고를 타고 돌아오며 즐거웠다.  김해로 갈 때 어떤 봉고트럭이 우리 차의 뒷 범퍼를 들이 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차를 세우고 가보니 운전기사(유리상회에서 일하는)'예종일' 이라는 사람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피곤해서 그만 깜박 졸았다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주며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사고는 처음이지만 종이에 사건 경위를 그의 글씨로 써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함을 받고 내일부터 추석이니 이 사고로 걱정 마시고 추석 지낸 후에 만나 해결하자고 말했다.  고마워 하는 그를 보내고 차에 올라타며 아주 좋은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나의 선교사업 사상 가장 기쁜 날이다.  침례 준 전덕민 형제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차 사고가 났지만 무사히 좋게 해결되었고, 김해에서 가가호호 하며 좋은 구도자를 찾았고, 돌아오니 아버님으로부터 집안 모두 평안하다는 전화를 받았으니, 이것보다 더 마음 편안한 날이 어디에 있을까? 전덕민 형제의 편지를 여기에 붙인다.  그의 글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쁨은 며칠 전에 기도하며 나의 성약과 헌신에 대한 증거로서 이종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한 간구의 응답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연약한 종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구승훈 장로님께.

장로님 안녕하세요?

편지의 서문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거의 2년 전에 장로님으로부터 복음을 배우고, 또한 침례를 받아 말일성도가 된 전덕민 형제입니다.  그간 장로님을 줄곧 생각은 해왔지만 저의 바쁜 상황과 장로님의 정확한 주소를 몰라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장로님께서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시기를 진정 바랍니다.  사실 장로님께서 이다음에 저를 만나셔서 그간 무관심했던 나의 불찰을 꾸짖으신다 하더라도 그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정말 저의 진실되고 참된 마음으로 장로님께 그간 무관심에 대한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간청할 뿐입니다.

제가 침례를 받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에 올라와서 반월지부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 교회라는 글씨가 창문에 붙여있는 전세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간 지 2주가 되자마자 지부장님은 저에게 세미나리 교사라는 부름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내가 과연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스럽고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장로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 -장로님도 침례를 받고 곧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으셨으며, 그 부름은 교회에 나간 시기가 오래된 자라야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성실의 미덕을 갖춘 자라면 능히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잘 행해나갈 수 있다고 저에게 말씀해주셨지요-을 상고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한다 하더라도 굳게 해나가리라고 마음먹고 임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지금은 거의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진정 이 복음 속에서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나로써, 하나의 존재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이 땅 위에 서서 호흡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 교회의 복음을 통해서 저는 가슴속으로 뜨겁게 느꼈습니다.  정말로 장로님을 만나게 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진정 제가 교회에 속해 생활해온 그 기간 동안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 그러한 변화는 평범한 한 소년을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한 세계에로의 시야를 띄어주었습니다.  그 세계는 온통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환희의 세계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또 현재를 어떻게 보내야 하며,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구승훈 장로님!  장로님으로 인해 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께서, 그리고 여러 교회 형제, 자매님들이 저에게 저를 위해 보여주신 사랑을 비롯한 그 모든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저의 보다 나은 단계로의 발전을 위해서 저는 장로님처럼 선교사업을 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저의 뜻을 잘 헤아려 주셨고, 이제는 예비선교사로써 선교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장로님!  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찬 기쁨과 환희를 지금 느끼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단지 행복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더라 하는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제가 어떻게 장로님의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사실은 10월 4일 날 서울 노량진 와드에 축복사 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으러 갔다가 OOO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그 형제님으로부터 구승훈 장로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장로님의 주소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저는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그때의 제 기분은 마치 이러하였습니다.

몰몬경 앨마서 27장 16절 암몬이 제이라헤믈라 땅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그와 그의 형제들이 앨마를 만났으니 바로 그곳이 앞에서 말한 바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라, 보라 기쁨에 넘친 대면이었느니라.  17절 암몬의 기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큼 커서 넘치는지라 하나님께로 향한 그 기쁨으로 인해 힘이 다하여 또 다시 땅에 쓰러졌으니, 18절 이것이 참으로 큰 기쁨이 아니겠느냐?  보라 이것이 바로 진실로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행복을 구하는 자 외의 그 누구도 얻지 못할 기쁨이니라.  장로님 저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기뻤었다는 그 말로서 외에는 저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함을 용서 하십시요

장로님 저는 여러 선교사님들을 보아와서 선교사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 거듭 수고하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장로님과 저희 모든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이 드리는 수고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다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때엔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했던 축복이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장로님, 부디 귀환 시까지 몸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그대로 선교사업을 해 나가렵니다.  언제나 인내와 참음으로써 모든 일을 대하고, 언제나 천사의 미소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항상 주님의 영으로 가득 차 온유함과 현명함을 지닌 말일성도의 표본대로 생을 살아나가렵니다. 

장로님, 부디 건강에 유의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음에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1987년 10월 4일 밤에

전 덕 민 형제 올림.

P.S 다음에 편지 쓸 때는 엄청나게 길게 쓰겠습니다.

 

1987년 10월 7일 수

[편지]

존경하는 부장님.  지난 대구 Zone conference 는 모든 참석한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영적인 모임이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부장님의 훌륭한 말씀을 들으며 회개했다고 생각합니다.  방어진의 Jaster 장로와 김해에서 봉사하면서, 그를 볼 때마다 저의 교만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나 착하고 순진하고 겸손한 장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주님께서 저의 경험과 간증을 모두에게 나눌 것을 요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고, 또 제가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 항상 함께 하셔서 격려해 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 가운데 특별한 것 한 가지는, 세상을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시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아플 때 하나님의 뜻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은 Topham 장로와 함께 저녁에 가가호호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부장님께서 허락해 주신 한국인 선교사 대회는 아주 훌륭하게 끝났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주신 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장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시는 특별한 은사를 지니고 계십니다. 

성도의 벗 10월 호를 읽으니 제임스 이 파우스트 사도님의 말씀 가운데 내가 만약 다시 감독이 된다면, 보고서와 서류 정리와 모임에 대하여서는 신경을 덜 쓰고 과거보다 더 사람들의 생활에 관여하겠습니다. 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다시 선교사업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도 그 말씀처럼, 또 부장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미소와 편안함을 주며 그들의 생활에 관여하겠습니다.

약 2년 전에 침례를 준 한 형제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 2년 동안 세미나리 교사로 봉사했고 이제 곧 선교사로 나가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을 때, 너무나 기뻐서 편지를 네 번이나 읽었습니다.  옛 일기장을 펼쳐 그 형제를 만날 때 상황을 읽으며, 그 때의 고통과 시련을 주님께서 오늘 저에게 이 큰 기쁨으로 모두 보상해 주셨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 사업은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벅찬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는 하나님의 사업(주님의 전장)의 최 일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1987년 10월12일 (월) 화창함.

가정의 밤에 참석하다가 동반자와 함께 나섰고 가가호호 방문을 했다.  어떤 형제님을 만나 몰몬경을 전해 줄 수 있었다.  가가호호는 즐겁다.

[편지]

존경하는 부장님.  지난 주는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을 준 한 주간 이었습니다. 침례 준 한 형제님으로부터 선교사업을 하겠다는 편지를 받았고, 지난 주 금요일 부산 서 스테이크 체육대회에서는 1년 전에 봉사했던 충무 지부 회원들과 기쁨의 재회를 했었습니다.  몇몇 형제 자매들이 아직도 복음 안에서 활동적인 회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뻤습니다.

김해 전도소는 지부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있는 몇몇 신권 형제들(아론 신권)을 위해서 신권회 모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신권 소유자로서 의무를 배우고 선교사들과 함께 지부의 일을 할 때 김해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예배당이 커다란 방 하나로서 분반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Hosler 장로님이 김해에 있을 때부터 알았던 구도자인 김정부 형제님의 가족에게 4토론 구원의 계획에 관해 가르치며 매우 좋은 토론이 되었습니다.  아주 잘 준비된 구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반자는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항상 탄복합니다. 제가 건강해야 부장님께서 걱정을 더시리라 생각합니다.  많이 먹고 살찌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87년 10월15일 (목) 흐림.

요 근래 들어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고 질서가 사라진 것을 느낀다.  동반자 기도, 동반자 모임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TOPHAM 장로의 온유함 때문인가?  이렇게 훌륭한 동반자가 주어졌는데도 안일한 태도로 지내는 것은 왜 일까?  경전을 읽을 때도 요즘은 영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금식하며 김정부 형제님의 댁에 방문했다.  구원의 계획에 관한 그들의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영어로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에(약속했었음)처음에는 영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질문에 끼어들어 내가 그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승영에 관해 계속 이야기하면서 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진리를 증거할 때는 언제나 영을 느낄 수 있다.  자매님이 말하기를 몰몬교와 우리 장로교가 비슷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완전히 다르다.라고 한다.  그들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87년 10월 21일 수

[편지]

바쁜 일과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알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봉사했던 장로님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아쉬움을 느낍니다.  제주도에 다녀온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서귀포에서 이틀 동안 보내면서 그곳에 대해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교사마다 특별한 재능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선교 본부 사무실의 분위기가 Driggs 장로와 Scott 장로가 오면서 새롭게 바뀌게 될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가 부장님과 많은 분들의 신뢰를 받고 있음을 항상 황송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모든 한국인 선교사들이 부장님께 감사의 편지를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형식적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추석 때와 자매 선교사 대회에서 모든 선교사들이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입니다.  저희들은 김해에서 한 가족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제 내일 (4)토론을 계속 가르칠 예정입니다.  동반자의 온유함과 겸손함은 늘 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몸 건강한 것이 최상의 컨디션입니다.  집에 부모님께서도 잘 계시니 걱정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저의 부족함을 제외하고   저에게 직접 간접으로 보여주시는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사랑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자매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1987년 10월22일 (목) 맑음.

Greeny 들을 보내고 김정부 형제님의 집에 갔다.  침례에 대하여 질문하는 그에게 여러 가지로 답을 해주었고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다시 토론하면서 죽은 자의 구원에 관해 이야기 했다.  자매님은 지난번 방문했을 때의 우리의 말씀이었던 인생의 목적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에 대해 듣고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하며 토론을 피하려 한다.  권유하며 함께 앉도록 해놓고 그들에게 말일성도가 이해하는 구원 관에 대해 말해 주었다.

김정부 형제는 말하기를 말일성도에서 해석하는 교리는 신학적이 아니라 참 인간적인 것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 신학이 인간적으로 우리 생활에 힘과 동기와 소망을 주지 못한다면, 그 신학은 성경책을 가지고 탁상 공론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자매님은 나에게 선교사님들이 해 주는 설교는 목사님 말씀보다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동반자와 함께 그 집을 나오면서 우리의 신앙의 부족함과 함께 그 가족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해야 될 일에 대해 의논했고 다시 새로운 각오로 우리의 주변을 정리하기로 했다.

 

1987년 10월25일 (일) 맑음.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김해 예배당에 도착하니 김병희 부장님의 모습이 보인다.  김해가 고향인데 숙모님께서 돌아가셔서 잠시 내려 오셨단다.  성찬식이 시작되었고 김부장님이 마지막으로 말씀을 해주셨다. 일반기독교의 크고 가증한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우리교회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훌륭한 말씀을 해 주셨다. 

서울에 있는 어떤 신학대학의 교수님 한 분이 우리교회로 개종하셨다.  그분은 25년간 다른 한 교회의 목사님으로 있으면서 대학에서 비교 종교학을 가르치시는 집안 모두 목사 집안인 학식이 많은 분이시다.  5개 국어에 능통하시고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비교 종교학을 가르치기 위해 많은 교회를 비교 연구하는 가운데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 그대로 가르치고 행하는 교회는,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또한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던 차에, 교수직과 신학박사 학위를 대학에 반납하고 목사 직에 사표를 내고 스스로 걸어 우리교회로 찾아 오셨다.  가족의 큰 반대로 부모 형제간의 모든 인연 조차 끊고 선교사와 공부를 마친 후에 이호남 형제님에 의해 침례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B.Y.U로 건너가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다가 잠시 B.Y.U학생들에게 비교 종교학을 가르친 것이 발단이 되어 모든 교수와 학생들의 인정을 받고 특별히 교수 자격 대우로서 지금 현재 비교종교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다른 전공으로 박사학위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시다.

 

1987년 10월27일 (화) 맑음.

경전을 읽고 기도하는 것 이외에 좀더 아침 공부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Zone Leaders Council이 열렸다.  주제는 용기이다.   Porter 장로님이 어린 시절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급류에 휩쓸려 내려 가다가 어떤 막대기를 잡았다.  곧 아버지가 달려와 그에게 가까이 왔지만 손을 뻗쳐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네가 나의 손을 잡으려면 그 막대기를 놓아야 한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아버지의 말대로 선뜻 그 막대기를 놓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강한 팔을 신뢰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Topham 장로의 말씀가운데 그는 고등학교시절 Cross country 경기를 즐겼었다 한다.  그 경기는 약 5km의 들과 산을 달리는 경기인데 Team 별로 순위를 매긴다.  1위부터 5위까지의 등수를 종합하여 가장 점수가 적은 팀이 이기는 것이다. Team의 코치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은 다섯 번째 사람이 하는 만큼만 잘할 수 있다.

나는 잠을 자면서 인생이 기쁨인 것을 꿈으로 보았네. 잠에서 깨어나 인생이 의무인 것을 알았네. 나는 행하였으며 의무가 기쁨인 것을 알았네.

Peterson 부장님은 교리와 성약 128:22절의 말씀 용기를 내라 라는 주제로 훌륭한 말씀을 주셨다.  폐회 순서에서 내가 갑자기 기도를 맡았다.  134장 우리의 본향에 또다시 모일 때를 부르며 기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비록 이 선교사업을 통하여 얻은 기쁨을 오늘 우리가 온전히 표현치는 못했으나, 아버지시여 마지막 날에 우리가 당신 앞에 설 때, 우리의 모든 수고가 기쁨으로 변할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드문 일이다. 

 

1987년 10월 28일 수

[편지]

존경하는 선교 부장님.  이 사업에 전념하는 가운데 저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다른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도울 수 있을 때일 것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광안 와드의 서정희 자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광안 와드에서 봉사할 때 해운대에 나가 전시회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해운대에서 어느 날 어떤 한 자매님에게 몰몬경에 대해 소개 했고 간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지난 토요일 침례를 받게 되었고 저에게 안수례를 부탁한 것입니다.  토요일은 김천, 구미 장로들과 Split 하기로 계획된 터라 안수를 집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김천에서 장로들과 Split을 하여 그들에게 간증을 전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그들이 변화에 대한 결심을 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해에서 저희들은 한 가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에 대해 전했을 때 그들은 이 복음의 위대함에 놀라는 것 같이 보입니다.  김해가 지부로 승격되었다는 소식에 기쁩니다. 부장님의 훌륭하신 성품과 가르침을 존경하며 감사드립니다. 저의 지지와 성원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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