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25일 (곡반정) "가장 숭고한 언어로 글을 쓴 사도 베드로" (조셉 스미스)]

"가장 숭고한 언어로 글을 쓴 사도 베드로" (조셉 스미스)

제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행한 말씀 가운데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말씀들이, 바로 이곳 곡반정 와드와 이전 조직인 매탄 와드에서 행한 말씀들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하여 어떤 성도들에게 특별한 주제와 패턴의 말씀을 반복하게 하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해 주시기를 겸손히 간구 드립니다.

 

경전을 공부하는 세 가지 방법

십이사도 정원회의 베드나 장로님은 경전을 공부하는 세 가지 방법을 언급하셨습니다.  첫째,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주제에 맞추어 경전을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셋째 방법은 경전 구절의 상호 연관 관계, 패턴, 주제 등에 따라 경전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베드로가 다른 어떠한 사도들보다 가장 숭고한언어로(the most sublime language) 글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1843 5 17,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교회사 5:392)

영어로는 발음이 다르지만 우리말로는 베드로베드나가 글자 하나만 다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베드나 장로의 경전 공부 방법에 따라, 사도 베드로의 말씀 일부를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베드로 전서를 주의 깊게 읽어나가는 가운데 2 16절에서 의문을 품고 멈추었습니다.  (벧전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As free, and not using your liberty for a cloke of maliciousness, but as the servants of God.”)

 자유로 악을 가린다가 무슨 뜻일까요?  앞의 자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어 단어 ‘Free’ 입니다.  뒤의 자유는 영어로 ‘Liberty’ 라는 단어로, 일반적인 자유보다는 특권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악을 가린다고 번역된 ‘cloke of maliciousness’ 라는 부분에서 ‘cloke’망토와 같이 두르는 겉옷을 말하는 데, 군인들이 은폐할 때 사용하는 판초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Maliciousness’ 라는 단어를 그냥 단순히 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단어는 고의로 악한 생각을 품는다는 의미로서, 보통 악의고의또는 악한 의도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이 구절을 기록하며 아마도 이사야의 다음 말씀을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29:13) “…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베드로의 자유로 악한 의도를 감추지 말라는 말씀은 바로 신앙인이 신앙이 있는 체 하면서 위선을 행하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위선이란 겉으로는 선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 구절을 좀더 명확히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나, 특권의식을 핑계 삼아 자신의 악한 의도를 사람들 앞에서 숨기는 위선을 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과 같이 행동하라.

즉 간단히 말하면, 신앙인으로써 위선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 하나님의 종이면 종과 같이 행동하라고 권고했는데, 그 바로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습니다.  (벧전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베드로는 당시 교회 회원간에 옳지 못한 태도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성도들이 지녀야 할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바로 이 두 구절에서 고상한 말로 지적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 결혼한 자매님들을 아내들이라고 부르면서 자매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 3절입니다.  아내들아, …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But let it be the hidden man of the heart, in that which is not corruptible, even the ornament of a meek and quiet spirit, which is in the sight of God of great price.”)

그는 4절에서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권고했는데, 저는 이 뜻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하고 연구해 보았습니다.

바로 앞 구절에서 외모로 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마음에 숨은 사람이 무슨 뜻인지는 바로 짐작이 가능합니다.  바로 내면의 아름다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존재인 영혼을 뜻하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은 무슨 뜻일까요?  영어로는 안정한 심령‘quiet spirit’ 조용한 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온유하고 조용한 영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 됩니다.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번역된 영어 단어 ‘Corruptible’ 에는 와전되다또는 잘못 전달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이 구절에는 킹제임스 역에는 있는데 우리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Ornament’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장식품’, ‘장신구 라는 의미와 함께, 영어 전치사 ‘of’ 를 붙여서, 이러한 장신구를 만드는 사람 즉 광채를 더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오직 마음에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는 것 즉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으로 할지니 라고 장식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성경 벧전3:3, 그리스도 예수안에)

영영 사전에서는 ‘Ornament’ 의 의미에, 자신이 속한 그룹이나 동료들의 명예와 명성을 더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좀더 명확하게 우리말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인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감추어진 사람인 생각과 영혼으로 하되, 결코 와전되거나 잘못 전달되지 않는 것, 온유하고 조용한 영광채를 더하는 사람으로 할지니, 그것은 하나님의 눈 앞에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

그렇다면 온유하고 조용한 영에 아름다운 광채 즉 빛을 내는 사람이 된다는 무슨 뜻일까요?

베드로는 주님께서 직접 성역을 베푸실 때, 그분과 함께 3년 간 생활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직접 옆에서 들었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기록하면서 아마도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던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23:25~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베드로 후서 3장의 가르침은 주님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니,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 외모를 꾸미는 것 보다는,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내면에 광채를 더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 값진 것이라는 교훈을, 교회의 자매님들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베드로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입니다.  사람은 그가 남긴 말과 글을 보게 되면 어느 정도 그의 인품과 덕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했고 자만했으며, 우유부단하며 사람을 두려워했으므로 타락한 지도자였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베드로가 남긴 이 서신을 연구하면서 그의 고상하고 품위 있는 가르침을 볼 때,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 때 주님과의 관계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연약한 모습도 보였었지만, 후에 회개하고 돌이킨 후에 주님의 어린 양들을 먹이는 위대한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저는 베드로서를 연구하면서 그의 위대한 가르침과 신앙과 성품의 면모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베드로가 복음 안에서 그와 같이 변화할 수 있었다면, 우리 모두도 우리의 연약함을 베드로처럼 극복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에서 이처럼 모든 성도들에게, 그 내면의 성품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 1장 편지 첫 머리말에서,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벧후1: 3~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divine nature)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성한 성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름다운 옷을 입음

주님께서는 교리와 성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82:14) “무릇 시온은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더해져야 하며, 그 경계가 넓어져야 하고, 그 스테이크가 강화되어야 하나니, 그러하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시온은 반드시 일어나 그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하느니라.”

시온이 반드시 입어야 할 아름다운 옷은 무엇입니까? 교리와 성약 1137절 입니다.  (교성113:7) (일라이어스 히그비의 질문). 이사야서 52 1절에 시온이여, 네 힘을 입을지어다 한 명령은 무엇을 뜻하며, 이사야는 어떠한 백성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선지자 조셉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교성113:8) 이사야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자들을 가리켜 말하였나니, 그들은 시온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이스라엘의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신권의 권능을 지닐 자요, 그 힘을 입는다 함은 신권의 권세를 지닌다 함이[니라].”

형제님들이 입어야 할 은 선지자 조셉의 말씀처럼 바로 신권의 권세입니다.

반면에 자매님들이 입어야 할 옷은, 베드로가 세상의 모든 아내들에게 권고한 것처럼, 온유하고 조용한 영에 광채를 더하는 것 즉 사랑의 옷 입니다.

사랑으로 옷을 입는다는 표현은 주님께서 로버트 디 포스터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에서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교리와 성약 124 116절입니다.

(교성124:116) 그리고 그는 자기의 모든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사랑으로 옷 입으며, 악행을 그치고, 자기의 모든 거친 말을 버릴지어다.”

만일 사랑제일 마지막에 입는 겉옷이라면, ‘회개라는 속옷을 입고, ‘악행을 그치고 거친 말을 버리는 셔츠를 갖춰 입은 후에야, 그제서야 제대로 사랑의 외투로 몸을 감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성88:125)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투와 같이 사랑의 띠로 몸을 두르라. 이는 완전과 평화의 띠니라.”

...  (간증)

2007 03 25, 곡반정와드 대회에서, 스테이크 회장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