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31일 "부름과 속죄" (수원 스테이크 송년 지도자와의 모임)]

우리의 부름과 그리스도의 속죄와의 관계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그냥 내버려 두면 무질서 하게 되고 맙니다.  이러한 법칙을 열역학 제 2법칙 또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 합니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온 우주 만물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도 마찬가지 입니다.  조금만 소홀하게 되면 우리의 집이나 회사의 책상 위 같은 것이 곧 어지럽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무질서와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질서를 부여하는 사업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신권을 부여하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질서를 가져다 주는 도구로 쓰고 계십니다.  우리가 받은 신권과 그 신권에 따르는 부름의 본질은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신권의 정확한 명칭은 하나님의 아들의 반차를 따른 성스러운 신권 입니다.  여기서 반차라고 번역된 영어의 Order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경전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데, 몰몬경 앨마서 13장에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초역 몰몬경에서는 이 단어가 반차, 질서(니삼6:4), 순리(모사4:27) 절차(앨13:9), 뜻(앨13:13), 가르침(앨14:16), 명령(앨24:28), 방법(앨41:2),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초역 교리와 성약에서는 이 단어가 이 외에도 하늘의 규율(129:7), 왕국(130:9~10) 제도(78:3~4), 등으로 번역되었고, 초역 값진 진주에서는 계통(아브3:9), 하나님께서 명하시다(아브4:18), 등으로 번역되었고, 성경에서는 순서(대하29:35), 차례(고전15:23), 규모(골2:5), 반열(대상6:32), 구별(욥10:22), 정하다(시37:23), 굳게 세우다(시119:133), 바로 잡다(딛1:5)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마 경전에 사용된 영어 단어 가운데, 가장 여러 가지로 번역된 단어 중에 하나가 Order일 것입니다. 이상 언급된 단어들의 특징을 보면 신권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신권의 첫번째 속성은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성 88:119) 너희 자신을 조직하라. 모든 요긴한 것을 준비하라.

IMF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는 구조 조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구조 조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완전한 조직이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교회에서 교육 및 훈련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왕국과 이 복음은 제도를 바꾸고 구조를 바꾸기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신권의 두 번째 속성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난1959년 4월 연차 대회에서 당시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회원은 선교사다’라고 우리들의 의무를 분명히 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지도자 여러분들에게 ‘모든 부름 받은 역원은 교사다’ 라는 말씀을 감히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삶에 관여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성취감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한 때 사악했던 니파이인 변호사였던 지에즈롬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완전히 개심하였습니다.

(힐라맨서5:41) 이에 아미나답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반드시 회개하고, 그 음성에게 부르짖기를, 곧 앨마와, 앰율레크와, 지에즈롬이 너희에게 가르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너희가 갖게 될 때까지 하여야 하나니, 너희가 이렇게 할진대 너희를 뒤덮은 암흑의 구름이 걷히리라. 

지에즈롬이 개심한 때가 기원전 82년경인데, 아마나답이 지에즈롬의 가르침을 언급한 이 때는 그로부터 50 여년이 지난 기원전 30년경입니다.  지에즈롬은 이때 이미 사망하였거나 나이가 매우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한 때 간악하기만 했던 그를 이처럼 후세에 그의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그의 남은 생을 온통 바꾸어 놓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앨마와 앰율레크의 영과 권세에 의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모든 교회의 역원은 훌륭한 교사가 되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르칠 때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레이맨인 들에게 14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하여 수 천명을 개심케 한 모사이야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몰몬경에 나옵니다. 이들의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앨마서 17:2~3) 그뿐 아니라 그들은 진리의 지식에 있어 강해져 있었나니, 이는 그들이 온전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부지런히 경전을 상고하였음이더라. 그러나 이것이 모두가 아니니, 그들은 많은 기도와 금식에 힘썼었고 그리하여 예언의 영과 계시의 영을 지니게 되어, 가르칠 때는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가르쳤더라.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열심으로 경전을 연구하고, 둘째, 열심으로 금식하고, 셋째, 열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암몬과 그 형제들은 자신들이 개종 시킨 이 레이맨인 들을 지극히 사랑하였고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신권 부름의 세 번째 본질은 돌보는 것 즉, 보살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랑이 반드시 포함됩니다.  1) 우리 주변에 질서를 세우고, 2) 영과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3)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부름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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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의 또 하나의 목적은 (앨마서13:3)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에 이것이 그들이 성임된 방식이니라 - 곧 처음에는 선이나 악을 택하도록 버려 둔 바 되었으나, 그들의 지극한 신앙과 선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좇아 세상의 기초가 놓이던 때로부터 부름을 받고 예비되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선을 택하고 나서, 심히 큰 신앙을 행사하므로, 거룩한 부름, 곧 그러한 자들을 위한 예비적인 구속을 따라, 이와 함께 예비된 저 거룩한 부름으로 부름 받은 것이라.

우리의 부름은 우리 자신의 온전한 속죄와 죄 사함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부름을 수행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피와 죄로부터 온전히 깨끗해지게 될 것입니다. (교리와 성약 62:3)에서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복이 있나니, 이는 너희가 증거한 증언이 천사들이 보도록 하늘에 기록되었고 그들이 너희로 인하여 기뻐하며, 너희 죄는 사하여졌음이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름과 그리스도의 대속, 즉 속죄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건축용어사전에서 Order는 기둥의 종류를 뜻하기도 합니다.  부름 받은 신권 역원들은 모두 이 교회를 떠받히고 있는 기둥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기둥의 기초가 되며 반석이 되시는 이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부름은 또, 마치 예술가가 깎는 조각 작품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깎는 도중에는 미완성이지만 언젠가는 온전히 완성될 작품인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의 완성에 대한 책임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 부름에 임하는 태도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 중, 미 시카고 대학의 한 심리 학자가 쓴 몰입의 즐거움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시각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집중력이야 말로 모든 사고의 원동력이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스케이트를 때에는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동작 등에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딪히거나 넘어지고 말게 됩니다.  그러한 순간에 생각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활동에 완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테니스, 바둑 같은 게임을 몰입하기 쉬운 이유는, 목표와 규칙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참여할 있기 때문입니다.  몰입이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어떤 과제를 극복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 부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도표: 과제와 실력의 함수 관계에 따른 경험의 ,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 도서출판 해냄, 47페이지 도표 참조)

 실력과 기회사이에 조화가 이루어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제가 너무 힘겨우면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가 제풀에 포기하고 맙니다.  과제와 실력의 수준이 낮으면, 아무리 경험을 해도 덤덤하며 미지 뿐입니다.  그러나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 이루어지게 됩니다.  대개의 겨우 보통 사람의 하루일과는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우리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강렬한 삶을 얻을 있도록 해줍니다.

목표가 명확할 , 그리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날 , 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룰 ,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있게 됩니다.  이때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오게 됩니다.  시간이 분처럼 금방 흘러갑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사용할 ,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간에 상관없이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입니다.  사실 몰입하고 있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들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경험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실감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돌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라고 것입니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우리는 행복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TV프로에 빠져들 느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행복감은 우리의 형편이 좋아지면 눈이 녹듯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행복감입니다.  진정한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키며 영속적으로 지속됩니다.  여러분은 일을 하다가 거기에 빠져들어 시간 감각조차 잃어 버리는 경험을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부름에 온 마음과 정성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임하게 될 때, 우리는 이러한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세월이 흐른 뒤에, 우리의 삶을 뒤 돌아 보며 참으로 크나큰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이 참으로 위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신권과 그 직분은 더욱 위대한 것임을 간증 드립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대속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가 지금 이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저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부름 받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1999년 12월 31일, 2000년을 맞이하기 위한 수원 스테이크 지도자 훈련 모임에서

스테이크 회장단 제2보좌, 구승훈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