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4월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토마스 에스 몬슨)]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He Is Risen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
   
제일회장단 제1보좌

 (토마스 에스 몬슨,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리아호나 2003 4월호 3-7)

 얼마 전에 한 방문자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체류하는 동안 구경할 만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템플 스퀘어를 방문하고, 근교에 있는 협곡까지 드라이브하고, 빙엄 구리 광산을 견학하고 솔트레이크 호수에서 수영을 하도록 제언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해 받을까 봐“공동 묘지에 가서 한두 시간 지내는 것은 어떨까요?”라는 제안은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 그곳의 공동 묘지를 꼭 방문하고자 한다는 것을 결코 말하지 못했습니다. 공동 묘지를 방문하는 시간은 인생의 의미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명상의 시간입니다.

 

더 큰 사랑

나는 유타 주 산타 클라라라는 한 작은 마을에 있는 묘지에서 비바람에 시달려 온 묘비에 새겨진 스위스 이름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시온으로 오라”는 외침에 응하여 푸른 숲이 우거진 스위스에 집과 가족을 남겨 두고 지금 그들이“편안히 휴식”하고 있는 이 마을로 와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봄에는 홍수와, 여름에는 한발과 적은 수확과 고된 노동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들은 희생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큰 묘지와 여러 가지 면에서 조국의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하는 것들 중에는 군복을 입고 전쟁이라는 격전장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안식처로서 성역화된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산산이 부서진 꿈과 이루지 못한 소망과 비탄에 젖은 마음과 전쟁이라는 날카로운 낫에 의해서 끊겨진 생에 관해 생각하게 됩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여러 도시에 세워진 희고 아담한 수많은 십자가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엄청난 수의 희생을 대변해 주는 듯합니다. 프랑스의 베르덩이란 지방은 그곳 자체가 엄청나게 큰 묘지입니다. 봄이 되어 농부들이 땅을 갈 때면 녹슨 철모와 총을 발견합니다. 그것들은 문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로 땅을 얼룩지게 한 것을 생각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스버그와 그 외의 남북 전쟁의 격전지를 여행하면 형제끼리 싸웠던 한 전쟁을 연상케 됩니다. 어떤 가족은 농장을 잃었고 어떤 가족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리디아 빅스비 여사에게 보냈던 유명한 편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빅스비 여사께,

“저는 육군성 기록에서 당신이 전쟁터에서 영광스럽게 전사한 다섯 아들의 어머니라는 매사추세츠 주 방위 사령관의 진술서를 읽었습니다. 다섯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을 위로하려는 저의 마음은 얼마나 쓸데없고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인의 아들들이 목숨을 바쳐 구한 이 공화국이 드리는 감사로 위로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별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부인이 사랑했던 아들들에 대한 소중한 추억과 자유의 제단에 바쳐진 그 고귀한 희생에 대해 숭고한 자부심을 갖게 해 주시도록 기원합니다.

“진실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에이브러햄 링컨”1

하와이 호놀루루의 펀치보울 묘지나 필리핀의 마닐라에 있는 태평양 기념 묘지를 거닐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사망한 사람이 모두 이 조용하고 푸른 지대에 묻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항해 도중 대양의 푸른 파도 밑으로 잠겼습니다.

진주만 공격 때 사망한 수천 명 가운데 아이오와 주 프레데릭스버그 출신의 윌리엄 볼이라는 수병이 있었습니다. 그가 1941년 같은 날에 사망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어떤 특별한 영웅적인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망으로 인하여 그의 가정에 비극적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윌리엄의 소년 시절 친구이자 이웃 워터루 마을에 사는 5명의 설리반 형제가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해군에 지원했습니다. 설리반 형제들은 친구의 원수를 갚겠다며 함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으므로 해군 당국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1942년 11월 14일 그 형제들이 근무했던 순양함 유 에스 에스 주니아호(USS Juneau)는 솔로몬 군도 구아달커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포격에 맞아 침몰되었습니다.

그의 부친인 토마스 설리반씨가 이 소식을 들은 것은 거의 두 달이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보통 전보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특사에 의해서 전해졌습니다. 그는 다섯 아들이 남태평양 전투에서 실종되었으며 아마 사망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만이 가장 적합한 비문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2

 

“비통이 아니라 감사”

다른 사람의 생애에 영향을 미친 사실이 한 번도 이야기되지 않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상호 향상 모임의 꿀벌반에서 12세 소녀들을 맡았던 한 교사의 체험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자녀를 갖기를 몹시 원했으나 갖지 못했습니다. 이 특별한 소녀들에게 영원한 진리와 인생의 교훈을 가르쳤던 그녀의 사랑은 그들에 대한 헌신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는 27세였습니다.

그 소녀들은 매년 현충일(미국 현충일 5 30)에 그 교사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7, 그 다음에는 4, 그 다음에는 2, 결국은 단 한 명만이 해마다 무덤을 찾아가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상징인 붓꽃 꽃다발을 놓고 왔습니다. 그 마지막 소녀는 훗날 소녀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성공하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그 스승의 영상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 넣었습니다. 그 교사의 생애와 그녀가 가르친 교훈은 무덤 속에 묻히지 않았으며 그녀가 다듬어 주었던 사람들의 인격과 그토록 사심없이 풍요롭게 해 주었던 사람들의 삶속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선생님이신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번은 그분이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3 세월의 바람이 그분이 적으신 글자를 영원히 지워 버렸으나 그분이 살았던 생애를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톤턴 와일러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다가 잃은 자들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더 강력하게 인식하고 기억해 주기를 그들이 원하리라는 것뿐이다. … 죽은 자에 대한 최대의 경의는 비통이 아니라 감사이다.

 

켈러 가문의 아들들

여러 해 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부에 있는 아름다운 히버 계곡에 사는 자애로운 한 어머니와 헌신적인 아버지가 귀가해 보니 세 아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은 몹시 춥고 사나운 바람이 불어 내리는 눈이 굴뚝을 막아 버렸으므로 치명적인 일산화탄소가 온 집 안에 꽉 찼던 것입니다.

켈러 가문의 세 아들의 합동 장례식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제쳐놓았으며 어린이들은 학교를 쉬었고 모든 사람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예배당으로 모였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나의 기억력이 쇠퇴하지 않는 한, 그 세 개의 빛나는 관이 슬픔에 젖은 부모와 조부모가 따르는 가운데 건물 앞으로 지나가던 광경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첫번째 연사는 지방 고등학교의 레슬링 코치였습니다. 그는 맏형인 루이스에게 조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루이스가 그 팀에서 가장 뛰어난 레슬링 선수는 아니었지만“아무도 그보다 더 노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기교에서 부족한 점을 굳센 의지로써 보충하려고 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후 한 청소년 지도자가 트래비스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트래비스가 어떻게 소년단 활동과 아론 신권 활동에서 뛰어났으며 그의 친구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모범을 보였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뛰어난 미모에 유능해 보이는 초등학교 교사가 이 셋 가운데 가장 어린 제이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그가 조용하고 부끄럼을 잘 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린 소년의 서투른 글씨로 씌어졌지만 이때까지 받아 본 적이 없는 가장 귀엽고 다정한 편지를 제이슨으로부터 받았다고 서슴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 편지는“전 선생님을 사랑해요.”라는 짧은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감정에 북받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특별한 날의 눈물과 슬픔을 통하여 이 지상에서의 삶은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소년들이 준 영원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이제 그 레슬링 코치는 운동에서의 소질보다는 각 소년들의 마음을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 청소년 지도자는 모든 소년 소녀가 교회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엄숙하게 약속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는 제이슨의 친구인 어린 꼬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의 눈에는 어떤 결심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심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나는 모든 어린이를 사랑할 것입니다. 모든 어린이는 진리를 찾고 재능을 개발하고 놀라운 봉사의 세계로 인도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청중은 모두 인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세주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을 향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슬픔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난 소년들의 삶과, 주님께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심을 알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믿고 자신의 명철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주님께 의지하는 부모들의 불굴의 의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4

이 세 아들의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는 세 아들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엔가에 압도되어 밤낮을 지내고 있습니다. 가정 생활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 가족의 절반이 줄어들었고 요리와 세탁과 장보는 일까지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떠들고 소란을 피우며 성가시게 굴고 함께 뛰노는 것을 보지 못해 섭섭합니다. 그와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요일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우리는 우리 애들이 성찬을 축복하고 전달하는 것을 보지 못해 섭섭합니다. 일요일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교 사업도, 결혼도, 손자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돌아오도록 부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쉽게 잊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교회에서 맡은 임무와 가정에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켈러 가족이 영원한 가족이 될 수 있도록 생활하는 것입니다.

켈러 가족과 설리반 가족과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혼의 확신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증과 생활에서 실제로 겪었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죽음, 삶의 새로운 장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함께 영의 세계에 살았음을 압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배우고 생활하고 완전을 향한 영원한 여행에서 발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상에 오래 머물러 있으나 어떤 사람은 잠시 동안만 머물고 떠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머물러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게 되면 새로운 삶의 장이 다시 열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장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합니까?

수년 전에 나는 사경에서 헤매고 있는 두 자녀의 아버지인 젊은이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나의 눈을 바라보면서 애원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독님, 나는 곧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영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대답하기 전에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 나는 그의 침대 옆의 탁자에 놓여 있는 몰몬경에 눈길이 갔습니다 내가 그 책을 들었을 때 나를 인도하기라도 하듯 앨마서 40장이 펼쳐졌습니다. 나는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아들아, 네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있으니,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하여 네가 마음으로 염려하고 있는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죽음과 부활 사이의 영혼의 상태에 관하여 내가 아는 바는 이러하니, 보라 천사가 내게 일러 주셨으되 모든 사람의 영이 그의 죽어야 하는 육신을 떠나면 그 모든 영들이 착하든지 악하든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의로운 영들은 안식과 평화의 처소인 낙원이라 하는 행복한 곳으로 영접되어, 고난과 근심과 슬픔을 잊고 편히 쉴 것이나”5

그 젊은 친구는 눈을 감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하면서 조용히 우리가 말하고 있던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

그러나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이 오면, 영과 육이 다시 결합되어 결코 분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7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8

이 약속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단 한 분밖에 계시지 않은 무덤에 갔을 때 실현되었습니다. 의사인 누가는 그들의 경험을 이와 같이 묘사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9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 살아나셨느니라”10

이것은 기독교계의 분명한 외침입니다. 부활은 개인과 모든 인류에게 상상할 수 없는 화평을 가져다줍니다.11 이것은 프랜더스 들판에 누워 있거나 바다 속에 수장되었거나 산타 클라라에서 쉬고 있거나, 평화로운 히버 계곡에서 잠들어 있는 고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저는 그분의 가장 작은 종으로서 그분이 죽음을 극복하시고 무덤을 깨뜨리셨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이 일을 이루신 분이 하신 성스러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산 지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고 소중히 아끼고 존중하십시오. 그가 살아나셨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리아호나 2003 4월호 3-7)

1. 에이브러햄 링컨의 서한, 연설, 국가 문서 선집에서 인용, 이다 엠 타벨 편, 보스턴: 진 앤드 컴파니(1911) 109.
2.
요한복음 15:13 참조.
3.
요한복음 8:6 참조.
4.
잠언 3: 5~6 참조.
5.
앨마서 40:1, 11~12.
6.
요한복음 11:25~26.
7.
요한복음 14:27.
8.
요한복은 14:2~3.
9.
누가복음 24:1~5.
10.
마태복음 28:6.
11.
빌립보서 4:7 참조.

 

가정 복음 교사를 위한 제언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후에,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이 메시지를 전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가족과 함께 이 메시지의 처음 부분을 읽는다. 묘지나 장례식에서 그들이 경험한 것에 대해 말하도록 권유한다. 부활과 마지막 두 단락에 있는 몬슨 부대관장의 간증에 관한 여러분의 느낌을 나눈다.

2. 죽음, 삶의 새로운 장이라는 표제 아래에 있는 첫번째 두 단락을 읽는다. 가족들에게 죽어가는 사람의 질문에 대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지 묻는다. 그들에게 앨마서 40 1, 11~12, 요한복음 11 25~26, 14 2~3, 27절에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게 한다.

3. 각 사람에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질문을 적어 보게 한다. 그들의 질문을 토론하고 메시지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얻도록 도움을 주는 생각을 나눈다.